꿈에 부푼 돛을 단 요트의 턴 장면
나는 이방인-1[I am a Stranger-1] -엘리엇 킴 고국을 떠나 낯설고 물 설은 이 곳 뉴질랜드에 도착하기 직전 하늘 위에서 본 풍경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뉴질랜드에 관한 책자 한 권을 사서 목적지로 향하기 전에 여행자의 마음으로 실감 없이 읽은 적이 있었을 뿐이다. KAL기가 중간 기착지인 피지제도의 중심도시인 나디에서 열대의 무더위 속에 1시간 여 머물다 그 곳을 떠나 세 시간 가까이, 때로는 구름바다 위를 때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몇 개의 작은 섬들과 외로이 항해하는 선박들을 앞지르며 망망대해를 비행하다 멀리 하얗고 길게 떠 있는 뭉실구름을 향해 서서히 뉴질랜드의 북섬 왼쪽의 바다 위로 진입하고 있었을 때, 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아하, 이 곳이 바로 아오테아로아(원주민인 마오리의 말로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는 뜻)로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1000여 년 전 멀리 중부 태평양에 살던 마오리족의 선조가 머나먼 항해 끝에 처음 뉴질랜드 북단에 도착했을 때 그 일족의 지도자였던 ‘쿠페’가 했다는 전설적인 말 ‘Aotearoa(아오테아로아)!’, 그 말 그대로 하얀 구름이 길게 이어져 있으면서 대지와 근처 섬과 바다 위를 덮고 있는 모습은 신비로우면서 장엄하기까지 했다. 내 마음은 날아가면서 그 구름에 젖은 채 그지없는 평화로움에 잠겨 고공의 고독이 주는 정신적인 양식과 그 의미를 음미해 볼 수 있었다. 마치 자양분의 위치를 감지하고 그것을 향해 서서히 뻗어 흡수하는 뿌리처럼 구름에 젖은 마음의 평화가 무엇인지 다가오는 아오테아로아에 대한 설레임 속에 예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비행기는 안개인 듯 구름인 듯 무엇인가 연한 솜뭉치 같은 것을 뚫고 뉴질랜드의 북섬 바다와 해안, 그리고 온통 그린색인 대지 위에 군데군데 자리한 목가(木家)들이며 조그만 직사각형모양의 코티지들(통나무집)과 마치 성채처럼 커다랗고 긴 집들과 거기 속한 목장들 위에 점점이 하얀 양떼들이며 얼룩백이 젖소떼들은 마치 짙푸른 양탄자에 흩어놓은 장난감들 같았다. 푸르름의 천국, 대지의 축복 속에 축복 받은 사람들이 사는 땅에 마침내 나는 도착하고 있는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마중 나온 안경을 낀 말쑥한 한국인 가이드 청년과 함께 공항터미널을 나서는 순간에 불어오는 첫바람은 언뜻 느끼기에 나의 고향바람과 너무도 흡사하여 ‘아, 이 곳은 나의 제 2의 고향 같은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오클랜드 시내로 향하는 차안에서 본 식생은 종려나무와 야자수와 소철 그리고 그래스펀(grassfern:소철나무의 일종), 팔손이나무, 동백나무(Camillia:커밀리어), 무궁화나무(Hibiscus:하이비스쿠스), 집울에 뻗어있는 분홍빛 넝쿨장미 등등이 어쩌면 저렇듯 내가 자란 제주도의 식생과 비슷할까 하고 놀라운 반가움이 일었다. 난생 처음으로 밟은 이 땅과 고독한 나그네의 자아 사이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 기후와 식생이 유사해서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클랜드는 City of Sails로 불릴 만큼 각 해안가 동네별로 요트클럽이 있고 화창한 휴일이면 항구 앞에 저만치 떠있는 아스피데식 화산도(제주도처럼 능선이 완만한 넓은 삿갓모양에 해안선이 둥근 섬)인 랑기토토(’하늘천국‘ 또는 ’이상향의 나라‘라는 뜻)섬과 올곧은 수평선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요트들이 유람을 한다. 내가 묵었던 아파트는 항구북단에 위치한 페리터미널 바로 옆에 바다 쪽으로 돌출한 부분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옛 하역창고건물을 헐고 지은 신형아파트라 그 유래를 살려 이름이 ’Shed Apartment(창고아파트)‘이다. 며칠 후에 그 곳에서 페리를 타고 근처 해안과 섬을 유람했는데 모든 것들이 조용히 제자리에 위치하면서 마치 자신의 입지에 만족한 듯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늘어서 있는 �경이 정겹고, 자연경관을 해치는 어떤 돌출적인 인공물의 흔적도 없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이 곳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를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은 한여름이지만 이 곳은 그다지 춥지 않고 약간 싸늘한 겨울철인데 우기라서 비가 무척 많이 내린다. 온통 비, 비, 비인 것이다. 가끔 화창한 날이면 교외로 나들이 가는 사람, 공원벤치나 노천카페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거리가 제법 분주해진다. 온갖 인종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스치고 지나가거나 느긋하게 약속한 사람들을 기다리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질랜드의 총인구는 400만에 못 미치고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 광역시의 인구가 100만에 가깝다고는 하나 도심은 매우 제한적으로 고층빌딩이 밀집되어 있고 그 둘레는 상업지역, 카페지역, 대학가, 음식점가 등으로 특성화되어 있어 편리하다. 그 너머 외곽의 매우 넓은 지역은 정원이 있는 주택들이 아득히 멀리까지 빼곡이 들어 차 있다. 시티중심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기껏해야 3~4층 대체로 2층 이하의 목조주택들이 해안과 만 그리고 호수와 구릉을 끼고 광범위하게 널려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의 조망권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탁 트인 육지풍경이나 바다풍경을 확보하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여 집모양을 설계하고 건축을 하는데 그 형형색색의 모양들이 멀리서 보면 조화롭기 그지없다. 모든 집들이 하늘과 바다 그리고 널리 열린 대지를 향해 숨쉬기 시합이라도 하는 듯이 군데군데 빼곡이 들어차 있으면서 올망졸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보금자리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목조주택들이 전부 판자 또는 통나무의 외관을 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각목재로 뼈대를 구성한 후에 벽이나 지붕을 판자로 구축하거나 혹은 그 위에 회반죽, 시멘트, 여러 종류의 금속 또는 벽돌 등으로 외부마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나무가 아닌 마감재를 사용하면 외관의 다양성은 물론 주인의 취향에 맞춰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와 질감을 반영할 수 있다. 이런 수명이 100년 이상 가는 자연친화적인 목조주택의 장점은 나무 특유의 단열성과 탄력성이다. 그래서 일본의 고베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뉴질랜드의 어느 건축회사가 시공한 목조주택들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신화가 생겨나서 지금 일본에서는 목조주택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건설붐이 점차 확산되리라 생각한다. 이 곳에서의 나의 생활은 과거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가져온 책이 거의 없어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읽을거리를 접하며 많은 부분을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다. 마치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통신원이 된 듯한 기분이다. 아름다운 이 곳의 자연을 타전하는 자연통신원이라고나 할까? 어떤 기사문을 송고하게 될지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게 없다. 다만 그 기사문이 사람들의 근원적인 심성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에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린다. 세계의 모든 곳에 내리는 비는 어떤 면에서 하나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느낌을 쓴 시 한 수를 아래에 적는다. 비[Rain] 늘 하늘은 처음으로 열리고 비는 마지막에 내린다 남겨지는 걸음걸음에 배이는 정적과 고뇌 시간을 젓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리움을 터는 잎새와 가지들 잠든 아가의 꿈결 같은 술렁임으로 피고 지는 꽃들 빗속에 날개를 접은 새들이 응시하는 그 무엇 길잡이 외마디 소리가 알려주는 침묵이 탄 가마의 알 수 없는 나들이의 행렬 지나가는 망혼의 사랑 끝없이 번지는 마음의 하늘 잔잔한 내(川)의 미소 고요히 열리고 닫힐 제 우리에게 내리는 마지막 비의 노랫소리. ----------------------------------------------------------- ∑. translation Rain All the time the sky opens first an' it rains last. Silence an' agony is soaked into every footprint left behind. Whenever swayed in the time-stirring wind leaves and branches shake off *'grium.' Flowers bloom and wither bustling like in a baby's *REM-dream. Something a bird is staring folding wings in the rain. *Yelling sounds of a guide forecasting an unidentified '*gama' parade of silence. When a love of a soul is passing by, the sky of mind spreads endlessly, and a flowing stream of a smile is softly open and shut, the last song of rain is falling to us. -------------------------------------------------------------------------- * 'Grium' : a kind of missing feeling or nostalgia for the universe * REM : rapid eye movement * Yelling sounds of a guide : poems and arts * 'gama' : a ride for a Korean aristocrat carried by human power of two or four walking men, one kind for a lady is shut or half-shut like a small room and the other for gentleman is open-style. It is also used for a bride in Korean wedding ceremon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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