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필집(미셀러니)

뉴질랜드 수필+시편: 구름

imaginerNZ 2007. 5. 19. 05:45

구름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면, 둥근 심지의 태양은 정직하여 즐빗한 손끝으로 만물에 어루어 닿고, 숨겨진 설화처럼 너머 아득히 푸른 하늘은 모든 정신의 때를 씻은 듯 가셔준다. 이어 우리 마음에는 어린 시절의 푸르른 꿈의 고향이 남겨진다. 시간과 공간을 잊고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는 정적에 묻힌 어린 아이의 눈망울, `작은 샘물`에는 이처럼 구름 한 점 없는 아득히 푸른 하늘의 마음이 들어 있다. 티 없이 맑고 밝은 하늘은 모든 생명을 미망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 엉킨 속세의 타래를 마술처럼 절로 풀리게 한다.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은 하늘마음이 되고 그 끝에 열매의 아쉬움 없는 여운을 남긴다.

  한편으로 구름이 있는 하늘은 뭉실뭉실한 꿈에 젖은 형상의 잔치이다. 구름은 지구의 기후가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 온갖 형상을 이룬다. 실낱같은 구름, 깃털구름, 솜털구름, 양떼구름, 뭉게구름, 번개를 품은 무시무시한 잿빛구름 등등에, 시시각각 늘 새로운 모양, 무언가 닮은 듯한 모양, 괴물처럼 기이한 모양, 전혀 알 수 없어 이상하고 신기한 모양 등으로 오로지 생리와 경험에만 익숙한 우리의 눈동자에 구름이 드리워진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구름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그 구름을 화판에 그리고 있는 말없는 아이의 마음이 된다. 구름을 바라보는 젖은 눈길이 그지없이 순량한 마음의 꽃을 피우고 주위의 만상이 부드럽고 아늑한 화평의 베일에 한데 싸여 다 함께 침묵의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구름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이 세상살이의 온갖 자잘한 희로애락은 씻은 듯 사라진다. 옛어린 마음이 쑥쑥 자라나는 느낌에 가슴 가득 부푸는 풍선의 정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람들의 속 깊은 마음 하나하나가 기쁨과 정겨움에 넘치지 않는가? 번민과 고뇌,  슬픔과 애처로움에 상심한 마음을 달래려면 구름을 바라보라. 마음의 온갖 질병을 치유해 주는 만병통치의 구름, 꿈을 그리듯 아름다운 구름을 바라보며 갓 태어난 신선함으로 과거의 아픔은 까맣게 잊고 웅지의 나래를 펼쳐 새로운 미래의 목표를 향해 힘찬 첫걸음을 내딛어 보자.

  이처럼 구름은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과 화평을 어리게 한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Aotearoa(아오테아로아: 희고 긴 구름의 나라)라고 부르는 구름의 왕국인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근교 어느 바닷가 마을에 살 때의 일이다. Blue Sky(필자가 살 던 집에 붙인 이름)에서 어느 날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표현할 수 없는 기운처럼 구름인 듯 아닌 듯 무언가가 하늘 가득 어려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햇무리나 달무리 같은 구름의 무리가 하늘 가득 은은히 어려 있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그런 구름의 기운이 온 하늘에 은은히 맺혀 있었다. 그 느낌을 쓴 시 한 수를 소개한다.



서기 2001년 5월 11일 아침 7시 15분 경

                                   -밀포드의 `Blue Sky`에서


이 땅 위에 온 하늘을 덮은 두루 현현하는 기원(起源)의 아우라.

솜도 새털도 아닌

부연 듯 보드라운 듯

흐린 듯 맑은 듯

한 순간의 현상이 예술의 극을 넘어서는 광경.


그것은 그리움의 현현

그림자도 은두리도 없이

세속도 초탈도 없이

형상도 본색도 없이

그저 정체 없는 구름의 기운이

하늘바탕 위에 고루 스미어 함함이 어루는 고요한 높사위.


하늘 한 끝 없이 잔잔히

모든 구름의 형상을 잊은 아스라한 베일.

 

아! 저 단 몇 분 동안의 탈운(脫雲)의 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