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편 소섬(우도)에서 바라본 일출봉
일출봉과 조랑말-일출봉 왼편에 성산읍내가 보이고 그 너머 소섬(우도)의 소머리 코지가 살짝 보인다.
상공에서 바라본 일출봉 -왼편 너머에 성산포항 방파제가 보이고 바다 너머에 소섬 전경과 섬 오른쪽 끝에 소머리 코지(곶)와 그 위에 등대가 미세하게 솟아 보인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 바다에 짙은 안개가 끼면 등대에서 나오는 소울음소리(무적;霧笛)가 잠결에 희미하게 들려오곤 했다. 주로 새벽에 짙은 안개가 끼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때면 이 반복적인 울음소리가 어김없이 들려 왔다. 어리디 여린 소라귓가에 그 소리는 알 수 없는 먼 세상에서 이 세상 속으로 들려오는 길게 울려 퍼지는 메아리 소리 같았다. 등대불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해안에 농무가 끼면 등대에서 나오는 소울음 소리로 선박의 뱃길이나 항구진입을 유도했다.
성산 일출봉
제주도에는 �산(靑山)이라는 말이 있다. 육지와 외줄기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육계도(陸繫島)인 성산 일출봉[城山 日出峯]을 인근 마을의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성산 일출봉의 별칭으로 혹간 부르시던 옛말이라 여겨진다. 적어도 필자의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성산오름을 그리 부르셨으나 성산포를 �산포라 부르지는 않으셨다. 아마도 멀리서 보면 푸르게 보여서 그렇게 불렀던 듯하다. 성산(城山)은 ‘성채 같은 산’이라는 뜻의 한자어다. 실제로 왜구의 침략이 심했던 시기에 그곳을 성으로 삼아 항전했던 역사기록이 있다. ‘성산’과 ‘일출봉’은 결국 같은 물상을 가리키는 같은 의미이나 성산이 그 지역의 명칭으로 쓰이다 보니 ‘성산지역에 있는 일출봉’이라는 뜻으로 ‘성산 일출봉’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성산 일출봉‘은 ‘성산오름’이나 ‘성산 일출암(성산포에 있는 일출암)’ 또는 ‘성산 일출거암‘이라 부르는 게 맞을 듯싶다. 일출봉은 지하 깊숙이 뿌리 붙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암석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성산 일출봉은 부드러운 흙으로 이루어진 산이 아니라 지구의 맨틀 속 깊이 맥이 닿아 있으리라. 또한, 한자에서 봉우리는 뾰죽한 형상 또는 산꼭대기인 산상봉(山上峰)을 뜻하는 말이라 성산 일출봉이라는 말은 내 개인적으로 썩 내키지 않는 표현이다. 일출봉은 그 형상이 봉우리 모양은 아니나, 제주도 사람들이 수많은 기생화산들의 이름을 ‘오름’, ‘모르(뫼의 원시어)’, ‘봉’, 또는 드물게 ‘~산’이라 부르던 관습을 따라 일출봉이라 부르는 듯하다. 성산 일출봉을 인근 주민들은 줄임말로 ‘일출봉’ 또는 ‘성산오름’이라 부른다.
제주도에서 부르는 ‘오름’은 산의 토속어이다. 아마도 그 뜻은 ‘사람이 오르는 높은 곳’이 아니라 ‘스스로 솟아오른 봉우리’일 것으로 생각한다. 대체로 오름은 어머니산인 한라산이 단정히 앉아 드리운 치마폭의 굴곡으로 드솟아있는 기생화산들을 뜻하나 어머니산인 한라산을 ‘한라오름’이라고도 한다는 점에서 그 규모에 상관없이 산에 해당하는 자연스러운 옛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특히 경사면이 가파르고 높이 솟아 끝이 뾰족한 형상을 한 오름을 대체로 ‘~봉(峯)’이라 불렀다. 이 경우에 중요한 해안거점마을 가까이 솟아 있어 멀리서도 이정표로 삼을 수 있는 경우에는 거의 모두 봉이라 불렀다. 이러한 봉들은 대체로 불쑥 솟은 기상을 지녀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간혹 예외적으로, 가까이 형제섬이 보이고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희미하게 보이는 바닷가에 위치한 산방산처럼 ‘~산’이라 불렀던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 오름의 기슭에 많이 알려진 절이 있거나 규모가 크지 않다 해도 산세의 입체성이 비교적 넓어 장대미를 갖추고 있으면서 주변경관이 육지의 끝자락과 섬들을 거느린, 탁 트인 절경인 경우에 ‘~산’이라 불렀으리라고 필자 나름대로 추정해 본다. 인근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불공을 드리는 절이 있으면서 주위 경관이 광활한 기생화산을 오름이나 봉이라 부르기에는 어색한 느낌이 든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제주인들이 관청 또는 식자층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며 시행하려 했던 고유한 우리말 표현의 한자어화를 쉽게 받아들이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요즘말로 하면 ‘민의 주도’라고나 할까? 어머니산인 한라산의 자식들에 해당하는 수많은 오름의 이름을 개정하려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원래의 명칭을 고수하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거나, 아니면 어떤 기생화산을 두고 고유어와 한자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다만 사회적인 편리성을 고려했을 경우에는 한자식 명칭을 수용해서 고유어보다 한자어로 더 많이 불렀던 듯하다. 그 사례가 제주도에 있는 ‘~봉’이다. 제주도에서 ‘봉’은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던 해안마을 근처 또는 그곳 해안에서 시야의 범위 이내에 솟아 있어 예부터 원거리 이정표 구실을 했던 뾰족한 기생화산에 붙여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그렇게 뾰족하지 않거나 산세가 그다지 높지 않아도 해안가에 있는 산들은 두드러져 보이게 마련이라 소규모의 산들도 ‘~봉’이라 한 경우가 많다. 물론 해안가 마을에 살았던 한문께나 했던 외래 식자층들이 순우리말인 '-오름'을 천시하여 '-봉'이라 불렀을 개연성도 상당히 높다.
여러분들이 제주도 해안선을 따라 도보로 일주하는 여행을 할 기회가 있을 때에는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걷거나 말을 타고 왕래했던 해안가의 봉우리들을 이정표 삼아 바라보며 걷거나 자전거 하이킹을 하거나 차량운전을 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럴 경우에 ‘~봉’이라 붙여진 그 산의 우리말 명칭을 나이 지긋하신 노인분들께 여쭈어 보면 그곳의 땅과 사람들을 더 실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의 봉우리들 중에 제주공항 근처 바다 가까이 위치한 도두봉은 여객기 조종사들에게도 필수적인 이정표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두봉이 그 자리에 없다면 강우량이 많고 기후가 변덕스러운 해양성 기후인 섬의 특성상 날씨가 많이 흐리거나 비바람 또는 눈발이 날릴 때 비행기가 순회비행을 반복하다 출발지로 회항하는 비율이 꽤 상승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10여 년 전에 필자가 탔던 비행기의 조종사가 번개 치고 비가 쏟아지던 날씨에 몇 차례 요동과 순회비행을 반복하다 낮게 깔린 구름 아래로 기수를 내려 하향비행을 하며 열심히 도두봉을 찾고 있었다. 그때에 조종사뿐만 아니라 승객들도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모두 일제히 창밖을 바라보며 도두봉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승객 중에 누군가 “어, 저기 있네.”라고 반갑게 내지르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이 도두봉은 지금도 여전히 고마운 봉우리이자 현대의 하늘여행에서 자연스런 이정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제주 시가지 동쪽에 해를 어깨 너머로 떠오르게 하는 산과 그 뒤편에 곱상한 새색시처럼 조용히 들어앉아 있는 산이 또 하나 있다. 왼편에 제주항을 끼고 있으면서 일제치하에 미군의 공격에 대비한다고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징발하여 벌집 쑤시듯이 숱한 땅굴을 파놓은 사라봉과 그 뒤쪽에 내조하는 듯이 숨어있으면서도 예부터 낙하 자살터로 알려져 왔던 해안가 바위벼랑을 거느리고 있는 별도봉이 바로 그 두 봉우리이다. 어릴 적 그 자살바위에서 험상궂은 파도가 바위벼랑에 들이치며 이는 하얀 포말을 아찔히 바라보던 기억이 지금도 현재의 눈길에 생생하다. 별도봉에는 예전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시인이신 고 은 선생님께서 제주에 내려와 계시던 무렵에 그 공동묘지에서 잠을 잤던 적이 있다고 쓰신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한참을 가면 성산읍 경계 직전에 지미봉이라는 제법 가파른 산이 일주도로 왼편의 해안가에 해안의 파수꾼처럼 서 있다. 그곳에 있는 마을이 구좌읍 종달리이다. 가수 혜은이씨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매우 너른 갯벌과 제주에서는 드물게 벼를 재배하는 평야가 발달해 있고 성산포 앞바다에 떠 있는 소섬(牛島)이 코앞에 와 닿을 듯이 보이는 마을이다. 구좌읍 한동리의 중산간(中山間) 지역에 솟아있는 직산봉은 멀리에서 보아 매우 늠름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봉은 허리 아래 한쪽 부분이 수직에 가깝게 절개되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일제치하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늠름하여 대견스럽다. 육계도인 성산포만 건너 제주섬의 오조리 바닷가 근처에는 식산봉이라는 봉우리가 하나 솟아 있다. 도인의 고적한 풍모에 자그마한 체구를 하고 있으면서도 산숲이 울창하고 산세가 소담수려하다.
참고로 제주도에 있는 최소단위 행정구역인 마을(里)영역의 대부분은 섬의 특성상 한라산밑에서 시발하는 꼭지점이 가늘고 긴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해안마을의 영역이 한라산을 향해 가늘고 길게 뻗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 경계 안에 속하는 오름의 숫자도 제법 많을 수 있다. 한동리의 중산간에 있는 직산봉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해안지역에 마을(里)영역이 국한된 곳으로 이를테면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하는 구좌읍 하도리의 경우나, 혹은 해안선에서 격리되어 있는 중산간(中山間)에 마을이 있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사라봉과 그 뒷산인 별도봉을 지나 몇 km를 가면 닿는 검고운 모래해변이 있는 삼양리의 중산간에 있는 봉개리의 경우가 후자에 해당한다. 제주에 있는 아름다운 오름들은 대부분이 중산간에 솟아 자신만의 자태를 은근히 또는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제주시내에 살던 어린 시절에 설을 쇠러 제주 해안선을 두르고 있는 일주도로를 따라 고향마을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왼편으로 바다를 끼고 가던 중에 일출봉이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푸른 고개를 선연히 내밀며 서서히 떠오르곤 했다. 지금도 이 마음의 지평선에서 일출봉이 떠오를 때마다 그 푸르른 기운이 어린 시절 아름다웠던 정경의 선율에 실리어 심신에 가득 차오른다. 일출봉은 수십 년간을 타향살이로 살아온 이 사람에게 지금은 잊혀졌으나 마치 먼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즐겨 불렀던 옛민요를 다시 살려 듣는 느낌에 젖어 들게 해준다. 참으로 가슴 저리도록 정겹고 고마운 산, 우리네 조상님의 조상님의 또 조상님 같은 산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여 말한다면, 일출봉 근처에 숙박이나 위락시설이 무계획하게 들어서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또 하나의 난개발이 예부터 변함없었던 그곳의 고유한 전경(全景)이 영영 훼손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한 일이 없기만을 지방 행정당국에 마음으로 호소하며 간구한다. 평생 권력과 이재에 골몰하여 아무리 많은 권력을 누리고 재산을 거두어 들여도 이승을 떠날 때, 한 매듭의 권력이나 혹은 동전 한 푼도 지니고 가지 못하며 결국 이승에 영원불멸토록 남겨지는 것은 변함없는 대자연뿐이다. 게다가 있는 그대로 자연의 형상끼리 서로 어울려드는 그 형세의 아기자기한 조화와 장대한 윤곽이 주는 아름다움에 어떤 사람인들 심취하지 �을 수 있겠는가? 이런 저런 고향 생각과 타향살이의 와중에 표표한 심사로 이글을 써보았다.
[2006년 12월 20일 오전 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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