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필집(미셀러니)

엘리엇 킴의 수필편: 칫솔질[Brushing Teeth]-작성 중

imaginerNZ 2007. 5. 17. 19:40
 

칫솔질[Brushing Teeth] -작성 중


사람은 직립동물이다.

사람의 눈과 코와 귀와 입이 달려있는 머리 부분은 잠 자는 때를 제외하고 거의 언제나 목을 똑바로 가눈 상태에서 몸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그 일직선은 사람의 물리적인 정체성과 고정성을 드러낸다.

그 일직선은 중력을 이겨내고 버티어 신체를 가누는 자세로 일면 당당하고 꿋꿋해 보이면서도 달리 보면 너무 뻣뻣하여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에 언제부터인가 이를 닦고 살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를 닦는 숱한 방법과 재료가 사용되었다.

칫솔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칫솔머리, 칫솔목, 칫솔대가 그것이다.

 

[1]칫솔대 

치솔모가 촘촘이 박혀 있는 칫솔대의 한가지 공통점은 일회용 칫솔이든 아니든 간에 칫솔대는 탄력이 있으면서 가장 흔한 재료인 플라스틱제이다. 다른 일상도구에 달린 손잡이의 경우에도 나무나 금속으로 된 약간의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플라스틱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유독 칫솔대의 경우 99.999...%가 플라스틱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경화 플라스틱이 탄력성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원래 플래스틱(Plastic)이라는 말은 '가소성_주물럭-이 있는(주물럭 거릴 수 있는, 빚을 수 있는 혹은 그런 물질'의 뜻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뽑아낸 원료인 플라스틱을 원하는 모양으로 틀에 찍어 낸 성형 플라스틱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칫솔은 그 재료와 모양이 무척 다양하다.

1. 손잡이 끝부분이 도톰하면서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까끌하거나 오돌토돌한 요철 또는 돌기가 나있다.

2. 과거에는 자루에서부터 두께가 일정한 일직선 모양이 칫솔대의 주를 이루었으나, 요즘에는 목부분이 대체로 몸통보다 가늘어진 형태를 이룬다.

가는 목을 한 칫솔 중에는 약간 구부정한 형태, 목 자체에 주름이 져 있는 형태도 있다. 목이 가늘고 때로 구부정한 칫솔은 그것을 입 안에 넣었을 때 뺨 안쪽 부분과 치아 사이에 맞는 각도를 유지하여 원활한 청소운동을 하기 위함인 듯하다.

3.심지어 둥근 머리에 둥근 형태의 솔이 달려 있고 자루는 기둥모양인 치솔도 등장하였다. 사람의 힘으로 귀찮게 치솔질하지 않아도 전기의 힘이 알아서 치아를 대신 닦아주는 전동치솔이 그것이다.  

3.칫솔질은 신체의 일부인 치아와 구강의 내부를 깨끗하고 튼튼하게 유지하기 위한 청소행위다. 그래서 최대한 구강과 치아의 청소를 원활히 하려면 개인별 구강구조에 맞는 형태와 기능을 수행하는 치솔을 찾기 위하여 여러 가지 치솔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구강구조에 가장 잘 맞는 칫솔을 고르는 것이 필요하다. 치솔의 색깔과 형태가 자신의 마음에 맞다고 그 치솔을 사용하는 것은 다소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치솔질은 청결을 위한 행위이지 취향이나 여가활용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2]칫솔머리

 칫솔모가 심겨져 있는 칫솔의 머리부분은 칫솔의 다른 부분 못지않게 형태가 다양하다.

칫솔의 모양은 대, 중, 소의 크기를 바탕으로 칫솔모의 끝이 들뿍날뿍한 것, 가지런한 것, 끝이 톱니모양이면서 한 쪽 또는 양쪽 끝이 두드러진 것,

칫솔의 머리 부분이 직사각형인 것, 타원형인 것, 뱀의 머리모양을 한 것, 전동칫솔로 쓰이는 둥근 원형, 등과 이런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형태의 다양하면서 세밀한 조합형과 변형들이 있다.


4]칫솔의 사용법에 대해

사람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며 칫솔은 치아의 위생을 담당하는 도구이다.

칫솔은 치아 사이, 치아와 잇몸 사이, 혹은 치아의 표면에 끼거나 묻어 있는 각종 음식 부스러기들을 쓸고 빼고 닦아내어 청소하는 일종의 청소용 솔이다. 사람들은 과학적인 이론을 원용하여 형태상의 온갖 과학적인 조합을 하여 칫솔제품을 생상하고 있다. 물론 칫솔머리+목+칫솔대, 이 세 가지의 개별적인 다양성에 상호조합을 추가하면 무한한 형태의 칫솔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람들은 어떤 칫솔이든 자신에 맞는 칫솔을 단박에 고르지 못하는 듯하다. 자신의 치아 및 구강구조에 맞는 칫솔을 고르는 일은 피치 못할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게 마련이다.


   칫솔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고집스러워 보이게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이를 닦는다. 어느 날 어쩌다 거울을 보며 칫솔질을 하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사람들은 항상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이를 닦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그것이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이를 닦으면 청소하는데 훨씬 효과가 좋을 텐데...

   

   사람들은 설거지할 때 세제를 풀어 거품이 이는 물에 그릇을 담그고 나서 세우고 눕히고 이리저리 돌리고 뒤집으며 닦고 물에 헹구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천으로 된 섬유류를 손빨래 할 때에는 안팎에 세제를 골고루 바른 후에 쥐었다 폈다 하며 문지르고 뒤집고 비틀었다 짰다 하면서 물에 헹구기를 역시 몇 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집안에 들여 놓은 각종 장식용 소품이나 화분, 이동이 가능한 가전용품을 닦을 때에, 청소하는 대상을 방향을 틀고 세우고 눕히고 이리저리 돌리고 뒤집으며 닦는다. 때로 사람들은 사람 스스로 신체의 일부 혹은 전부를 굽히고 앉히고 휘고 틀거나 어떤 경우에는 묘한 자세-네다리 자세로 상체를 바닥에 닿을 듯이 낮추거나 상체를 무릎에 깊이 묻은 자세나 목을 좌나 우로 한껏 뺀 채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 또는 자동차 정비공처럼 아예 바닥에 엎드리거나 드러누운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덩치가 큰 목가구나 가전제품은 사람이 직접 몸을 구부리거나 휘거나 이동하면서 닦으며 때로 벽에 거의 붙여 놓은 뒷부분이나 아래바닥 부분을 청소할 때에는 낑낑거리며 지그재그로 조금씩 움직여서 청소가 가능할 정도의 사이공간을 확보한 후에 닦는다. 심지어 장롱처럼 사람의 키보다 크고 무거워 움직이기 힘든 물건들을 청소할 때에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닦기도 한다.

   

   이런 갖가지 청소자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칫솔질을 할 때만은 목을 뻣뻣이 세운다. 머리와 목과 사지몸통이 거의 예외 없이 수직을 유지한다. 고개를 좌나 우로 알맞게 숙여 효율적인 각도를 유지하고 이를 닦으면 안성마춤이리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직립한 상태에서는 시중에 나와 있는 아무리 최효율적인 칫솔제품을 사용한다 해도 위와 아래 치아들이 짝말굽형태(겹U자형)인 치열에 낀 음식 부스러기나 묻은 찌끼 등을 원하는 만큼 깔끔하게 효율적으로 쓸고 빼고 문지르고 닦아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목을 곧추세운 상태에서는 입안의 위치에 따른 치아의 모양과 각도에 따라 칫솔질을 하기가 쉽지 않다. 유기체의 특성상, 사람이 직립한 상태에서는 사람의 손과 팔의 운동 영역이며 운동각도와 다양한 종류의 개별 칫솔의 모양과 각도를 일치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여러분이 키우는 네발짐승인 강아지나 고양이가 여러분이 뻣뻣한 자세로 이를 닦는 모습을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물론 유인원이나 원숭이는 흉내를 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애완동물들의 시선에 와 닿는 직립칫솔질은 너무 뻣뻣하고 일률적인 기계적 운동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이를 그런 자세로 닦을까?’ 그것은 인간이라는 직립동물이 중력의 법칙을 이겨내려 누대에 걸쳐 수직적 자세의 완성을 점차 부풀어 가는 두뇌가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명령하고 암시하며 성취한 자세의 경직성을 유지하려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해 본다. 자신을 진화시키고 타 생명체와 환경과 자연을 다스리게 하는 발원이자 근본인 머리를 신체의 맨 윗부분에 두고 유지하려는 고고함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진화의 생물학적인 풍선으로 지속적으로 부풀고 있는 뇌가 그 분주함에 이에 낀 때를 빼는 한갓 칫솔질 정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에 이를 닦을 때 좌나 우로 고개를 기울여서 닦아 보았다. 입안의 왼쪽에 나 있는 치열을 닦을 때에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여 닦고, 입안 오른쪽에 나 있는 치열을 닦을 때에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적당히 기울여 칫솔질을 해 보았다. 그 결과는 만족스러울 만큼 잘 닦였다. 특히 이런 식으로 이 사이를 닦고 나면 한결 더 시원하고 뒷느낌이 개운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하는 칫솔질이 치과학의 어떤 이론으로 제안된 적이 있는지 나는 확인한 적이 없고 알지도 못한다. 어떤 사람에게 물구나무를 서거나 엎드리거나 드러누워서 이를 닦으라고 한다면 그 불편함에 누구나 미리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그런데, 닦는 치아와 같은 방향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닦는 일은 그다지 심한 불편감이나 운동감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만물의 영장이자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중추가 들어 있는 고상한 머리를 좌나 우로 약간씩 기울여 이를 닦아 보자! 그러면 현존하는 최고의 칫솔과 최선의 방식으로 이를 닦는 것보다 못하지는 않고 거기에 이런 칫솔질을 보태면 적어도 금상첨화는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칫솔질을 하며 칫솔질에 대해 이런 저런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다, 입안에 들어 있는 침과 치약이 섞여 있는 거품에 물을 머금는다. 그렇게 부푼 두 뺨을 오므렸다 부풀렸다를 두어 번 반복한다. 이어서 ‘푸걱 푸걱 구르르’하고 내뱉는다. 이런 순서를 두어 번, 어쩌면 세 번 정도 반복을 한다. 그제야 그토록 하기 싫었던 칫솔질은 끝났다. 이제 ‘이~!’ 하며 거울을 본다. 내 치아는 약간 하얀 빛을 띠면서 누렇다. 말하자면 ‘화이트-골드’라고나 할까? 세월의 훈장은 눈부신 하얀 빛보다 약간 누런 금빛이 좋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안해 본다.

   

   마지막으로 거울 속에 도로 꼿꼿이 세운 머리를 곧추선 몸통과 두다리로 떠받들고 있는 반세기에 가까운 어떤 생명체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선다. 그 돌아서는 순간에 문득 느낀 한 가지 사실은 그가 우리와 동족인 생물체가 분명하다는 점과 그가 잠시 자본주의적인 현대인의 사고에서 벗어나 엉뚱한 안일에 젖어 있었다는 점이다.


[200704040517am-초안 작성/20070739추가 작성 중; 대치동 Blue Sky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