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필집(미셀러니)

앨리엇 킴의 뉴질랜드 수필+시편: 랭기토토 섬

imaginerNZ 2007. 5. 19. 05:35

랭기토토 섬(Island of Rangitoto)


   뉴질랜드의 최대도시인 오클랜드는 북섬 중부의 잘록한 부분 오른쪽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이자 상공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우리로 치면 광역시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런지 온갖 외국인이 거리에서 눈에 많이 띄고 온갖 나라의 음식점이 여기저기에서 성업 중이다.

 

   이 큰 항구 도시를 상징하는 인공물이 있다면 둥근 원통형의 기다란 몸체에 끝으로 갈수록 길고 뾰족해지는 첨탑을 가진 Sky Tower를 들 수 있다. 1980년대 중반에 세워져 지금은 이 도시의 상징물이 된 이 탑은 도시의 고층빌딩군 중에서 군계일학으로 높이 솟아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중심과 균형의 아름다움을 주고 있다. 인간의 역사 속에 바벨탑을 시점으로 왜 사람들이 높은 탑을 쌓아 왔는지 스카이타워를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도시의 초점이자 상징으로 창공을 찌르듯이 서있는 스카이타워가 없으면 이 도시의 야경이 어땠을까 하고 상상을 해 본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딘지 모르게 침체되고 풀죽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 밤이면 은은한 푸른 빛과 붉은 빛의 보색대비로 테를 두르고 상향조명이 몸체의 윤곽을 비추는 스카이타워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동화 속 환상의 궁전에 구름위로 솟아 있는 뾰족탑 같다고나 할까 ?

 

   그러면 스카이타워가 생기기 훨씬 전인 아득한 먼 옛날부터 이 지역을 상징해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 이 곳 사람들은 별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바로 랭기토토섬이라고. 이 섬은 세계의 온갖 배들이 드나드는 항구의 길목에 저만치 떠 있다. 그 긴 나래를 수평선에 잔잔히 드리우고 있는 삿갓모양의  화산도인 랭기토토는 화산 분출시 약간 솟아오른 중심의 용출부에 둘러싸인 분화구가 있고 서서히 산세가 온 방향의 바다 쪽으로 낮아진다. 가파르지 않게 서서히 낮아지는 아스피데식의 둥근 해안선을 가진 작은 화산섬인 것이다. (우리의 섬 제주도도 아스피데식의 화산섬이다.) 이 섬은 태어난 이후로 고요한 침묵 속에 모든 것 - 사람들의 역사와 대자연이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의 과정 - 을 지켜봐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켜볼 것이다. 물론 언젠가 더 커질 수도 있겠지만... 이 섬은 공중을 나는 여객기, 제트전투기, 수상구조헬기며 우람한 화물선들과 화려한 대형유람선에서부터 크고 작은 요트들과 모터보트들과 윈드서핑하는 사람들,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 그리고 맞은 편 육지에 집들이 하나 둘 들어서는 것들을 지켜봐 왔다. 오랜 세월동안에 걸쳐 아득한 시원(始原)의 시간부터 영겁을 꿈꾸며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것이다.

 

   그러면 흥미로운 비교선택의 게임을 해 보도록 하자. 만일 스카이타워와 랭기토토섬 중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무작위로 키위(뉴질랜드인)들에게 물어 본다면 그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젊은이들은 대체적으로 현대적인 스카이타워를 선택하고 비교적 나이가 든 사람들은 랭기토토를 선택할까? 아니면 도시중심가에서 사업을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바다전망이 없는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스카이타워를 선호하고 랭기토토섬이 잘 보이는 해안주택가에 살거나 요트를 가졌거나, 아니면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랭기토토를 선호할까? 랭기토토해협을 지나갈 때마다 물밑바위에 좌초할까 염려하는 화물선 또는 유람선의 선장이나 선원들은 랭기토토섬을 차버리고 마치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항구 초입인 파로스의 등대처럼 아주 멀리서도 거대한 등대 역할(이처럼 거대한 등대는 세계에 몇 개 없다)을 대신하는 스카이타워를 선호할까 ? 어린이들은 활공하는 독수리처럼 너무 멋진 전방향의 조망을 제공해 주며 망원경에 더구나 바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유리바닥판까지 깔려 있는 전망대의 몸체인 스카이타워를 더 사랑할까?

 

   그럴 수도 있다. 아직 자연에 대해 경험이 부족한 생각을 가진 도시의 어린이들이나 신변의 안전과 이익을 추구하는 어른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 그들이 어머니자연이 무엇이고 그 자연의 구성물들 하나 하나가 지구라는 둥근 구근을 뿌리로 하고 있다는 것, 있는 제자리에서 온갖 기후와 천재 속에서 생명을 태동시키고 부양하고 식물과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이 순환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것, 사람들의 존립의 역사를 지탱해 주었다는 것, 그것들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한 선택의 영역을 넘어서 있으며 어떤 목적 하에 인간 또는 그 이외의 것을 선택하지 않으며 한없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는 것 , 끝없는 진화의 젖줄이 되어 왔다는 것, 인간만이 신이 선택한 유일한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 인간이 품고 있는 그리움의 근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등등을 깨달은 후에 선택을 한다면, 날렵하고 아름다운 철근콘크리트 구조물과, 변함 없이 있는 그 자리에 머물러 왔고 앞으로도 변함 없을 랭기토토섬 중에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그 결과의 통계수치는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 아니면 그저 청우계의 수치 정도에 불과한 것일까?

 

   과연 스카이타워는 랭기토토섬에서 보이는 한 쌍의 봄나비보다 더 아름답고 정겨운 것일까? 그 섬에 와 부딪는 서늘푸른 파도자락보다 더 생생하고 역동적일까?  랭기토토섬의 나래를 접은 그 청람빛 자태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스카이타워는 랭기토토처럼 온갖 물고기와 바닷새와 사람들의 친근한 벗, 말없는 벗이 되어줄 수 있을까 ? 정말 스카이타워는 랭기토토처럼 새벽녘에 온 세계를 환하게 밝혀 주는 해를 주문으로 떠오르게 할 수 있을까 ? 대답은 여러분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어머니자연을 닮아 아름다운 생명의 혼불 속에 이미 담겨 있다.

 

   이런 연유로 그 잠잠한 랭기토토섬의 자연 속에 담겨 있는 무언가에 대해 인간이 비로소 깨달음을 느끼게 될 그 시간을 상정하여 쓴 시 한 편과 그 섬을 마주하고 있는 밀포드 해변에서 밤을 지새는 한 마리 갈매기처럼 칠흑의 밤과 새벽의 어스름 지나 이 세상에 생명의 기운을 주는 해가 섬솟아 뜨기까지 느꼈던 또 다른 시 한 편도 함께 적는다.  



먼동이 트는 섬 랭기토토


먼동이 트는 섬, 랭기토토

*아오테아로아의 검은 구름

하루 중 가장 올곧은 수평선

바닷바람에 높이 나는 갈매기

잿빛 바다

물이 살아 숨쉬는 하얀 소리...

 

모든 색조

*섬솟아 오르는 해

*몸에 내리는 둥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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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이 길게 떠 있는 나라`라는 뜻의 마오리어로 설화에 의하면 태평양의 어느 섬에 살던 일족이 배를 타고 뉴질랜드 북섬 부근의 근해에 진입했을 때 그 섬이 길고 하얀 구름에 싸여 있는 것을 보고 한 말이라 전해진다. 뉴질랜드의 기후는 제주도와 비슷하며 굳이 제주도 기후의 위도를 남반구에 정한다면 뉴질랜드의 북섬과 남섬의 중간에 놓여 있는 쿡해협이나 남섬의 북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옛말 `섬(시마)`의 어쩔 수 없는 현대적 표현,  섬솟다 : 섬 근처에서 선듯 떠오르다.

*제주도 사투리로 몸과 마음을 동시에 뜻하는 말(아래아 음 포함) : the pronunciation of it is similar to `mom' which means both body and soul, but it is almost a dead word in the other parts of Korea except being used only in Cheju Island, the biggest aspide-style volcanic island in Korea about 100km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middle of it there is a lake called `white deer lake` surrounded by the highest peaks.


Σ. TRANSLATION


Dawning Island, Rangitoto


Dawning island, Rangitoto

Black clouds of Aotearoa

The horizon is clearest of the days

Floating gulls with the high winds of the sea

Grey seawater

White sounds of breathing water alive...

 

All tinges of colors

At last the sun rises onto my body an' soul

with round peace alighting.

(15 Feb, 2001 ; at dawn after nesting like a seagull through a whole night on Milford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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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기토토섬-2


온갖 풍상 속에서

아득히 들릴 듯 말 듯 부드러이 잠재하는 휴면의 호흡소리와

속 깊이 끓어오르는 열정에

은밀한 분출을 염원하는 너의 피안을

부푼 돛을 달고 꿈처럼 스쳐 가는 요트들을 바라보며

그 피안에 언젠가 네가 이루고자 하는 희원 속의 상상의 봉우리


이 평화와 안식의 차안(此岸)에

그 뜨거운 용트림이 뿜어 올리는 피안(彼岸)의 꽃가루가

우리의 머리와 정원의 꽃과 나무에 온누리에,

은사시나무의 화분처럼 흩날릴 때


사람들은 신비와 경외에 찬 눈빛으로 너를 향하고,

비로소 너의 지나간 나날들의 오랜 기품과 평정과 시간을 잊은 기다림,

그 고요한 인내의 침묵이 의미하는 참뜻을...


사람들이 지녀온 정감과 의지,

자연을 앞지르려는 문명의 분주하고 끊임없는 온갖 시도와

창조와 파괴, 그리고 소멸의 미학을...


너와 함께 받아 나누며,


언젠가 네가 이루고자하는 상상 속의 희원의 봉우리,

그 덧봉우리의 숭고한 이마를 꿈꾸며

아무도 없는 어스름 녘 먼동이 틀 때

움트는 광염과 열정의 고요한 회돌이의 벗,

너의 주문으로 뜨는 해와 나누는 묵상의 대화를

제사장처럼 누군가 엿듣고 있지는 않은가?


오클랜드의 살아 숨쉬는 아스피데식 자연신전,

랭기토토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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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olcanic island which is a natural symbol of Auckland, City of Sails.

*거리의 악사로 떠도는 어느 마오리인(자기 사촌이 한국여인과 결혼했다고 했음)의 얘기로는 랭기토토의 뜻이 `이상향의 나라`라고 했는데 언뜻 제주 사투리의 `이어도`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