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방인-2[I am a Stranger -2]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마주치는 사람들의 생김새와 의상, 제스처, 사고방식 등이 정말 이질적임을 느낄 때가 많다. 기원(origin)이 유럽인 사람들은 색깔부터가 다양하다. 그야말로 총천연색이다. 머리색깔부터 눈색깔에 얼굴의 형태하며 그 외모에 맞춰 입은 옷까지 갖가지 색깔과 모양이니 현기증이 날만도 하다. 거기에 마오리와 혼혈인 하프마오리(마오리인들은 백인과의 혼혈이 매우 많다.)에 태평양 각처의 섬에서 온 사람들인 퍼시픽 아일랜더(Pacific islanders)까지, 어디 그 뿐이랴? 피지(지배층의 다수가 식민지시대 인도에서 온 인도인들임)에서 정변을 피해 온 인도인들과 매부리코에 눈자위가 검고 부리부리한 눈매의 아랍인들과 북유럽에서 온 밀랍피부의 요한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며 분쟁이 잦은 옛 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의 동유럽출신들과 나냐나 보리스 같은 이름을 가진 러시아인들, 그리고 본토(mainland China)나 대만, 홍콩에서 건너 온 수다한 중국인들(뉴질랜드 총 인구인 400만 명중에 최근에 중국인의 급격한 유입으로 약 15만 이상)과 1만 5천 남짓의 한국인들에, 일본인에 동남아에서 온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말레이시아인에, 간혹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착해 보이는 아프리카인들(대부분이 대사관원이나 상사주재원 또는 학생들) 등등이 각자의 생활방식과 관습과 취향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저녁나절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술집이나 찻집 같은데 가면 그야말로 인종전시장이다.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잔하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인생체험과 직업도 가지각색이다. 미해병대 출신으로 월남전 참전과 한국과 독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퇴역노병에서부터 한국여인과 결혼한 그리이스 대사관원, 생활고로 폴란드에서 건너와 자그마한 바에서 바텐더로 있는 파트타임 여대 지원생, 러시아에서 왔다는 스트립댄서로 일하는 요조숙녀(스트립댄서는 다만 직업일 뿐이다.), 유고에서 마을이 불타고 사람들이 죽어서 난민으로 왔다는 택시기사, 피지에서 온 동네슈퍼(현지에서는 dairy shop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초기에 낙농제품을 취급한데서 생긴 이름인 듯하다.) 주인인 인도아저씨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이합집산이다. 특히 술집에서 눈에 많이 띄는 마오리들은 아주 인심 좋고 태평해서 대부분 퉁퉁한 체구에 옛날부터 전래된 고유의 원시사회적 공동체 의식이 워낙 뛰어나게 강해서 세워져 있는 시동 걸린 차를 타며 주인에게 `나 잠깐 차 좀 쓰고 돌려 주께`하고 휑하니 사라지거나(대체로 아는 사이로 되돌려 주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으면 어물쩡 접근해서 돈을 좀 달라거나 아니면 같이 먹고 마시고 쌩쓰 마잇(mate;friend)하고 훌쩍 자리를 뜨는 배짱에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곳 영국정착민의 후예로 Taupo(북섬 중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타우포호숫가에 위치한 간헐온천휴양지)인근의 시골에서 온 농부는 비뚤비뚤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며 꼭 놀러오라고 간곡히 권했고 남섬 끝에서 젖소만 해도 3000마리나 되는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며 Queenstown(남섬에 있는 뉴질랜드 최고의 산골호반 휴양관광지)에 스키를 타러 왔다는 30대 초반의 형제내외와 친구 일행은 바에서 당구를 함께 치며 사귀었는데 글을 쓰며 맘껏 지내다 가라고 명함을 주고 헤어져 갔다. 그들의 마음씨는 생활의 질곡에서 벗어나 격의 없이 소탈하고 인간미가 넘쳤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매우 인상 깊었던 사람은 어느 병원의 중환자실에 근무한다는 파스칼이라는 이름의 간호원이었는데 나이가 36세에 아마빛 머릿결과 연그린 푸른빛(내가 눈빛깔에 관해 물었을 때 빛의 양에 따라 눈색깔이 변한다고 했다.)의 홍채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 여자는 자잘한 은빛 반짝이로 수놓인 ,마치 인어의 비늘로 온몸을 휘감은 듯한, 반듯하면서도 몸매를 약간 살려 주는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었는데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차있는 모습이었다.. 차차 얘기를 나누다 아버지가 유태인이며 폴란드에 있는 어느 수용소에서 부친의 부모와 여덟 형제자매가 다 죽고 부친만 살아남아 호주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고 이어서 오늘 이 바에 오게 된 연유를 설명해 줬다. 자기가 오랫동안 중환자 병동에서 돌보던 마음 착한 할아버지가 암으로 오늘 오후에 사망하여 너무 슬픈 마음을 술로 달래려 왔다는 것이다. 마음 착한 그 여자는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며 가슴 아파하는 사람사랑 넘치는 백의의 천사였던 것이다. 그 날 밤에 그 바에서 그리고 근처의 바닷가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후로 그 단골술집이나 사람들이 흔히 모이는 이런 저런 장소에서 둘이서 혹은 여럿이서 몇 차례 만날 때마다 우리는 반가움으로 해후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렇듯 각국에서 온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느낀 점은 세계는 하나의 촌락이며 뉴질랜드 같은 시골의 읍내장터에서 사람들을 만나 각자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이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그리고 세상살이의 여러 가지 애환과 보람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일이 점차 일상화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국제인, 세계인. 지구촌 등등의 말들이, 교류 넘치며 자연스레 서로 돕고 이해하고 화합하는 보편적인 인류사회가 구현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다양한 체험이었다. 끝으로 그들과 만나고 기약 없이 헤어질 때 내가 항상 건네던 작별인사는 `Please, be happy with your family and friends in God you trust` 였다. 여러분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아래에 파스칼과의 추억을 쓴 시 한 수를 적는다.
아마빛 머릿결[Flaxen Hair]
흐트러질 듯
흐트러질 듯
힘찬 단정함
그대 이름은 Pascal !
그윽한 응시로
부드럽고 상냥한 태도로
말을 거는 샴고양이같은 자태로
나의 정신,
나의 정신의 계절을 바꾸는 greenish blue eyes!
이 순간
하늘이 서로에게 준 미소의 선물로
한 방울의 이슬이 맺 듯
우리가 가던 갈래의 두 길이
하나임을 함께 느낀다.
*그대의 손톱에 뜬 하얀 낮달이
우리의 걸음걸음을 비추고
이슥한 밤이 새도록 풀벌레소리에
유령처럼 희미한 사람들의 형체와 유쾌한 잔들이 부딪는 소리와
알 수 없는 지껄임과 중얼거림의 느린 물살들...
그 사이사이
모시나비같은 속삭임에
부드러운 마음의 촉수로 미리 느끼는 짐짓 한량없음에
먼 파도소리...
흐트러질 듯
흐트러질 듯
힘찬 단정함
그대 이름은 Pascal !
(13 Feb, 2001)
----------------------------------------------------------------
*어둠 속에 말을 하면서 희끗한 손끝으로 발걸음을 인도하듯 제스처를 취하다.
오클랜드의 카페거리 -파넬-
'엘리엇 킴 작품방 > 수필집(미셀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엇 킴 수필: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하여 (0) | 2007.05.22 |
---|---|
뉴질랜드 수필: 나는 이방인-1 (0) | 2007.05.22 |
백세주 예찬(수필+시) (0) | 2007.05.22 |
뉴질랜드 수필+시편: 구름 (0) | 2007.05.19 |
엘리엇 킴 수필선: 남녀의 사랑에 대하여 (0) | 2007.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