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동북아민족사

킬 테긴 비석에 새겨진 고구려(발해) 이야기

imaginerNZ 2007. 12. 16. 23:53

Kül tegin 비석에 고구려(발해) 관련 이야기

돌궐 Kül tegin(호수의 왕자)  비석



3문단 쿨테긴의 죽음에 고구려(발해)를 비롯한 각국의 조문 사절 방문



욍레 : 퀴느 :토그시퀴다: 뵈클리: 최뤼그  이르
동쪽에(왼쪽) :  해 :  뜨는곳의  :  고구려 :  ? 나라




타브가츠: 튀퓌트 :  아파르 : 푸룸 : 키르키즈 : 우츠 쿠리칸 : 오투즈 타타르:
타브가츠(북위) : 토번(티벳) : 아바르(훈족):  푸룸(로마) : 키르기즈 : 3쿠리칸 :30 타타르



키타인  : 타타비 : 분차 : 부돈 : 케리펜 : 시그타미쉬 : 이오그라미쉬

거란(契丹): 해(奚): 매우 많은 : 백성이 : 찾아와 : 애도하거나 : 울거나 했다




9문단 ( 고구려 정벌을 위해 출정 )

일게뤼 : 퀴느 : 토그시퀴다 : 뵈클리 : 콰간카 : 테기 : 쉬레쥐  : 비르미쉬

동쪽으로 : 해 : 뜨는 곳의 : 고구려 : 카간(태왕)에 : 까지 :출정 : 하였다.




*참고
발해 사람이 고구려를 뜻하는 맥이(貊耳) ,박(狛) : 뵈클리로 계속 불리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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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제국의 성립(成立)

돌궐제국의 성립 역시 스텝제국의 전형적인 형태를 따라 지도력있는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돌궐제국은 부민(Bumin) 혹은 투멘(Tumen) 이라고 불리우는 고대 튀르크족 지도자에 의해 AD 545년경 건설되었는데, 그는 552년 서위(西魏)와 연합하여 연연을 멸망시킴으로 스텝지역의 지배자가 되었다.  553년 부민이 사망한 후에 아들 무칸(Muqan)과 동생 이스테미(Istemi)가 동부 스텝과 서부 스텝을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다. 동돌궐의 지배자는 전체 돌궐제국을 대표하는데 그의 왕호는 카간(Kagan)이며, 서돌궐은 형식상 동돌궐에 부속되어 있었는데 서돌궐의 통치자 관직명은 제 2의 통치자의 뜻으로 야부그(Yabgu)였다.

한편, 돌궐은 초기에 중국 사회가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세력을 키우며 침략을 통해 경제적인 부를 축척했다. 그러나 583년 통일된 수(髓)나라와의 충돌에서 패배하게 되고, 이미 내부분열로 인해 동서로 나뉘어져 있던 돌궐은 수나라에 의해 이용당하기 시작하였다. 612년,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다가 실패함으로써 나라가 멸망하게 되면서 이 시기를 이용하여 돌궐이 잠깐 부흥하였으나,  곧이어 등장한 당(唐)나라에 의해 반 세기 동안 지배를 받게 되었다.

683년에 이르러 쿠툴루그 일테리쉬(Kutlug Ilterish)에 의해 돌궐제국은 당나라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독립하여 제 2의 돌궐제국, 즉 후돌궐을 세웠다. 돌궐비문에 나타난 빌게카간, 큘테킨 등은 바로 이 후돌궐의 집권자들이다. 일테리쉬는 독립 후 10년만에 동부 스텝을 장악하고 제국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스텝 지역의 반복되는 역사에서 보여지듯이 돌궐의 통치 영역은 얼마 되지 않아 각종 유목민족 부족들의 세력 쟁탈전의 전장으로 변하여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742년에 바스밀(Basmil)부족이 우이구르, 카를룩 부족과 세력을 합하여 어린 나이에 카간이 된 돌궐의 마지막 왕 텡그리(Tengri)를 제거함으로써 돌궐제국은 공식적으로 끝이났다. 그 후 바스밀과 카를룩, 그리고 우이구르 사이의 세력 다툼에서 우이구르의 일테베르가 정권을 장악하여 자신을 카간으로 선포함으로 우이구르(Uygur)제국이 출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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