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편지글(서한집)

2005년 12월 20일 화요일, 오후 23시 47분 00초

imaginerNZ 2007. 11. 27. 04:05
안녕하세요? 송선생님.

답메일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서울 대치동에 거주하고 있고 이름은 그냥 '엘리엇 킴'(줄여서 '엘킴')이라고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뉴질랜드에 거주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와 수필(경수필/철학에세이/우주론 등)을 썼습니다. 올해 워싱턴에 있는 국제시인협회에 제가 쓴 것들을 번역한 영시 몇 편을 제출했는데 수상후보에 올랐고 여름 세미나에 초청을 받았는데 사정상 가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글을 거의 쓰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이 통관상태라고나 할까요? 한국에서는 등단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분위기가 그래서요.

  정 지용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모시는 이유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시는 풍조상으로 논리적 서술성의 결여가 간과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작품을 꿰뚫고 흐르는 힘이 없다고 할까요?  자기 개성에 맞는 세계론과 우주론이 시 한 편 한 편에 초집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시적 견해입니다. '참'된 자기완성에 다다른 개성은 망망한 보편의 시공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의 시인들은 철학을 하든 안하든 우주론적인 자기확립의 과정이 소홀하거나 생략된 채, 재주나 재능으로 성급하게 등단을 하고 시인이라는 강박적 명함을 달고, 그 이후에는  자기서정을 맴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득도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허나 예술은 천성의 '오도송'입니다.   

  정 지용 선생님의 시(특히 '향수')는 논리와 고유감성의 아름다운 결합을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어른의 아버지인 동심을 아름다우면서도 자연스런 흐름 속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향수'는 동시대 한국인들이 예외없이 어린이가 되면서 시 속에 빠져들어 그 속에서 살게 하는, 살아 있는 정경의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말로 하면 스틸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라고 할까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는 평가에 공감합니다. 정 지용님께서 한국인 최초로 유려한 시적 논리[한국의 평자들이 '지나치게 서술적이다'라고 말하는]와 혼자연적인 감성을 표현하신 분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점은 한국의 한글시사에서 영구적인 기념비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세계문학사를 보면 창조의 시대와 비평의 시대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한국시단은 아직까지도 비평적 시대의 분위기가 강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하나의 강물에 흐르는 물살들처럼 느껴집니다. 이 물살들은 아직도 강에 머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바다에 도달하겠지요.] 한국적인 고유성만으로 이런 현상을 해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스승님으로 인해 진정한 한국시의 첫단추는 이미 끼워졌습니다. 그것은 후대의 진정한 시인들에게는 전설이자 희망이 될 것입니다.

 

추신:

저는 2000년 이후로 지금까지 몇 권 분량의 시집과 한두 권 정도의 수필을 썼습니다. 20여년 동안 글을 쓰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물론 창작에 대한 의식을 문득 문득 느끼면서요. 그 '의식'을 버린 적은 없었습니다. 뉴질랜드에 가고나서 글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쓰이지 않습니다. 그냥 가끔 퇴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초면에 너무 심각하고 재삼 보니 두서가 없습니다. 이 글을 쓴 처음 의도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종종 이메일을 나눴으면 합니다. 옥천에 좋은 소식이 있으면 알려 주시고요. 전 번에 보낸 메일에도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스승님 생가 복원공사 중에 그 안에서 달을 보고 스승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밤을 지냈던 때가 생각 납니다. 근처에 작은 다리가 있었고 조그만 가게(?)도 하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송 선생님, 건강하시고 '가화만사성'하시기를 대치동에서 빕니다. 좋은 교류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에 작품 몇 편 보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절대고독', '아리랑', '케이블 만', '두 빙하', 기타 입니다. 아래에 '절규'라는 글 한 수 적겠습니다.

 

 

절규

 

별안간 침입한

우주에 찬 주위에

고루 내뱉는 단말마.

 

그 부르짖음은

회자 되지 않는 순간 속에

하나 가득 멈추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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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궁극적인 우주의 시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