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편지글(서한집)

한국시평-2005년 4월 16일 토요일, 오후 21시 27분 31초 +0900

imaginerNZ 2007. 11. 19. 04:57
 

시작(詩作)은 비바람이나 뜬구름을 잡으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것들은 분위기이다.

선유불(仙儒佛)의 동양적 으뜸을 지향하는 정신으로 글을 짓는 전통이 한국시단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그러한 경향은 현대판 ‘고담준론’ 또는 ‘음?농월’이라고 한편으로 볼 수도 있다. 진보사관은 미숙한 싹에게는 필연적이다.

한국시에는 시 나름대로의 서술지향적 논리성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

‘농무’의 시인에게서 어느 정도 서술적인 시작태도를 읽는다.

한국현대시의 아버지인 정지용 선생이 쓰신, 아름다운 한반도의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노래한 ‘서사시’인 ‘향수’는 논리적 서술성과 감성의 아름다운 결합을 느끼게 한다.

그의 정신은 한국시에서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인 서술적 논리성의 희귀한 성취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시단에서 시작의 필수적 전제조건이 되어야 할 서술적 논리성이 외면되고 있다는 점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시인들은 시를 거꾸로 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서술 중시의 논리성을 시작입문자들이 시발점으로 삼고 그 후에 주관적 감성의 꽃을 피워야만 세계적으로 위대한 시인이 나올 수 있다.

지금의 젊은 시인들은 서술적 논리성이 거의 확립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주관적 감성의 테두리를 이미 마음의 전부인양 두르고 그 안에서만 시를 쓰고 있다.

그들은 시의 발생학의 교본 없이 자신의 감성에 홀리기 위해 자기최면술사가 되어 글을 쓰며 어린아이가 장난감에 집착하듯이 그 주관적 감성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고 집착하며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결정적 원인은 규격화되어 버린 학교교육에 있음을 성장과정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개인에게 진정한 정신의 자유를 발현시켜 주는 교육의 부재, 각 과목별 전문용어의 한자어뜻이 뭔지도 모르며 무작정 암기하는 학생들, 창의력 없는 대다수 교사들의 무기력하고 타성적인 강의,

여지껏 되뇌어온 교육입국이라는 말은 사어에 불과하다.

한국의 모든 분야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점은 아직도 우리의 몫으로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또한 지정학적인 경험의 제약이 시에 가하는 제약.

협소한 대상에 왕양한 정신의 폭과 깊이를 꾸겨 넣는 시작태도.

왜냐하면 보고 느끼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다양한 물질적 자연의 체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 전지역의 자연과 인간과 거기에 깃들인 다양한 문화의 비교체험이 시를 쓰려는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에 다가와야 한다.

한국시는 지나치게 정신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중시는 반드시 독단과 편견을 낳는다.

물질경시는 시의 비물질성을 조장한다. 물질이 결국에는 돌연변이적인 인간정신을 낳았음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