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낯선 세상 -엘리엇 M 킴
세계의 시야가 트이기 전, 어느 잠결의 어리목에 어렴풋한 영혼이 시간관념을 상실하고 공간관념을 상실하고 모호한 현실 속에서 목판에 새기듯 무엇인가를 읊조린다.
육신의 피로에 젖어 시도 때도 없이 쓰러지듯 잠이 들고 어느덧 잠결에 눈을 뜨기 직전, 몽롱하고 아득한 의식 속에서 아득한 느낌에 다가오는 것. 적멸의 어둠 속에 뿌연 구름의 노래 -낯선 나, 온통 낯선 사물들, 아득한 그리움에 젖어들게 하는 대자연과 현상들. 느린 번개의 절규처럼 눈을 뜨면 나는 전혀 낯선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사용하던 펜, 밖을 바라보던 창문과 가르마를 탄 커튼, 무시로 마시던 녹차의 김을 피우는 연꽃무늬 찻잔, 변함없이 제자리에서 일정한 형체와 거기 깃든 무늬들, 부모형제자매와 처자식들의 맴도는 서정, 동일한 이목구비의 타자들과 그 속 심사들, 체감의 극한과 극열의 사이 일정한 범위에 출몰하는 날씨와 기후들, 논과 밭, 들녘과 숲, 강과 산, 바다와 하늘, 그 사이 어느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과 도시들, 이 세상의 어느 한 구석에서 바라보며 듣는 해와 달과 별들의 괴괴한 저음의 합창, 공간 속에 구현되는 최저음의 무한미분인 빛의 살과 뼈,...
늘 과거 속의 꿈의 기억은 현재의 시공 속에 녹아 내리고 있고 어느 날 홀연히 그 바탕질마저 녹아 버린다. 녹을 것이 더 이상 없어지고 현재가 꿈인 듯 생시인 듯 파도처럼 연이어 밀려오고 밀려오며 기억의 자취 없이 아득히 영원조로 사라지고 마침내 현재는 증발한다. 남겨진 낯설음, 마음에 익었던 모든 주위의 것들이 제각기 무언가를 향해 기도하듯 외면한다. 모든 감각의 끝이 아연함에 물들고 지향과 작용을 상실한 ‘나`에게 그것들은 그저 각각의 기호로만 남아 있다. ’일‘은 더 이상 일어서지 않는 불구가 된다. 곤충이나 뭇 생명의 음향이나 자연의 소리들은 그저 기호의 무형질로 그 불가분의 일부일 뿐이다. 그 소리들은 아무 것도 의미하거나 표상하지 않는다.
언젠가 ‘나’는 멸할 것이고 그 때 ‘나’는 현재에 녹아 잊혀진 기호로 사라질 것이다. 영원이나 신이나 영혼이나 진리에 대하여 어리숙하고 유약한 정신은 그것들을 애써 느끼고 말하려 한다. 아이들은 철이 들기 시작하고 인간의 생물사를 익히며 무엇인가를 강변하기 시작한다. 그 철들음이, 어린 눈동자에 아련히 고인 눈물의 막을 거두고 각박한 각막을 드러낸다. 그리움의 작은 샘물은 영원히 메마르고 만다. 그 각박한 각막은 일과 일 사이에 가끔 메마른 우물을 들여다보며 어렴풋이 과거에 일렁이던 물기운을 떠올린다.
어느 예술의 전당에서 상형의 음향이 낯설음에 흔들리듯 그리움에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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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의 맞춤법은 제가 쓴 글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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