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질서와 독창성에 대하여 -작성 중
-엘리엇 킴
사회적 질서는 오래된 역사의 페이지일수록 창의력을 끊임없이 억누르고 기회가 닿으면 말살시키려 해왔다. 역사상 숱한 독창성의 페이지들이 미연에 방지되거나, 찢기고 잘리고 불태워지는 등 가능한 온갖 고의와 지략이 동원된 방법으로 누락되고 훼손되고 멸실되고 무시되고 외면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책략이 문명을 지탱해 왔다.
어떤 사회질서가 그어놓은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법과 도덕성을 위반하는 언행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미시적인, 거시적인 혹은 더 나아가 중용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런저런 난관을 극복해 낸 후에 그 결과로 자리잡은 어떤 사회도 내부의 질서가 있게 마련이다. 상류지배계층에 의해 특정한 위계와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해온 사회에 보이지 않아 가장 큰 적은 외부의 침략이나 혼란을 부추기고 선동하는 질서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생하면서도 외성적인 것에 있다.
침략과 위반과 모반과 혼란은 질서를 흩트리나, 외부에서-신만이 아는 곳에서-예기치 않게 내려온 독창성은 상황에 따라 사회 전체를 마치 모래성인 듯이 일거에 무너뜨리거나 색다른 체제로 혁신할 수 있다. 사회가 그렇게 변하는 계기나 과정이나 결과가 너무 어처구니없게 극적일 수도 있다. 이미 잡혀있는 질서를 수용하고 준수하고 존중하며 순응하고 있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특히 지배계층은 기존의 질서를 방어하고 유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들이 형성한 질서가 질서형성의 역사서이자 현재 지닌 모든 것을 기록하여 쌓아놓은 자산목록(물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전에는 없었기에 그들이 대하기에 역사적으로 축적된 기성질서의 체계에 비해 때로 유치하고 때로 엉뚱한 어떤 존재가 나타나 아무런 생각없이 무심하게 무엇을 말하거나 행하게 되면 그것 자체가 질서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사회질서의 대격변을 알리는 효시(신호탄)이거나 엄중하게 유지해 온 질서의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그 엉뚱한 존재가 한 사소한 것 혹은 모든 것을 일말이라도 변호해 줄 것은 이 세상에는 거의 없는 셈이다. 그에게 남겨지는 것은 일반인의 내심의 동정표뿐이다. 현세에서 그에게 주어질 수 있는 삶의 가능성에서 1%의 불멸의 명예와 99%의 자멸이나, 자포자기하는 자기외면이나, 중용의 타협이나 아니면 백치의 희망 혹은 이것들과 유사한 여러 가지 처세방식 이외에 별다른 삶의 태도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진정한 독창성은, 말하자면, 사회와 그 사회를 지탱해 주는 중심기둥 역할을 하는 질서체계의 기둥과 벽과 지붕을 한방에 날려 버릴 위험성을 안고 있는 일종의 ‘수소폭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인류가 오랜 세월 숱한 세대를 계승하면서 이루지 못했던 '신기한 발견이나 발명'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신기원의 시작'이며 그러한 일을 해내는 이들은 창조적인 소수(Creative Minority)에 의해 발생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독창성은 자신 이전의 과거를 특정분야에서 무지몽매하고 지혜에 어두웠던 시대로 만들어 버릴 수 있고, 다가오는 미래사에 그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변화를 불러오게 할 수 있다. 이전 시대의 축적을 바탕으로 거기에 나름대로 의장을 입히거나 세부적인 마무리를 하고 있는 당대의 지성들은 이점을 심히 못마땅해 하거나 적어도 미덥지 않게 여기거나 불순하게 여긴다. 당대의 지성들은 끝없이 열린 정신성을 지닌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자신이 질서의 피라미드의 정점에 속한다는 자긍심을 결코 벗어던질 수 없다는 한 가지 이유로 질서라는 가장무도회의 가면을 벗어던지려 하지 않는다. 진정한 독창성은 그만큼의 용기를 필요로 하며 진정한 용기는 불멸을 꿈꾸며 죽음을 불사한다. 그런 점은 특히나 세속적 성공과는 거리가 먼 예술과 근대 이후의 과학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그것을 타고난 업이라고 할까? 사후의 사회적인 존경의 세례, 즉축복이라고 할까? 그의 삶을 불멸의 뒤안길이었노라고 할까? 아니면 궁극적인 그리움의 화신이라고 할까?
진인의 적극적인 사회화의 과정은 자파의 세력화와 구질서의 주류이며 이를 방어하려는 보수파 결집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역사에 점철되어 왔다. 그러나 결국 진인이 이끄는 자파세력은 구질서의 탄탄한 철옹성벽을 구축하고 있는 보수파에게 대부분 패퇴되고 배제되고 심지어 모살되었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흐름은 거의 언제나 보수적이다. 또한 이로 미루어 문명의 진보는 더디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두 갈래로 흐른다. 빛의 역사와 그늘의 역사, 지표의 역사와 지하의 역사, 이 두 흐름이 있다. 우리가 대대로 배우고 거울삼는 역사는 빛의 역사, 지표의 역사이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는 실현되지 않은 ‘역사의 정신성’, 즉 ‘순수와 양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픽션이 아니다. 그것은 미실현이나 당위적이어야 할 역사의 흐름이다. 역사가 갈등과 투쟁과 전쟁으로 이어져 온 것은 그 백일하에 드러난 빛의 역사가 순수와 양심의 역사를 파묻고 그 이후에 매장지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밟아 다지며, 새로운 창조의 진성을 드러나지 않게 암장해 왔기 때문이다. 빛의 역사가 발전한 것은 ‘고목나무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확률적으로 드물게 독창성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숱한 우연이 적지 않은 필연을 대부분 지배해온 형국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현대문명의 관점에서 과거사를 돌아보았을 때, 문명의 우열이 선명해지던 시기부터 문명이 정교하며 세련되고 안정화되어 상대적으로 발전한 선진문명국의 경우에 진정으로 독창적인 인물들을 가급적 많이 발견, 발굴하고 양성하려는 노력이 역사적으로 체계화 되어왔다. 그러한 과정에는 계급의식을 뛰어넘어 모든 분야의 인재발굴이 자체 문명발전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추진하려는 문명발전에 대한 연대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확실히 과거역사의 주된 흐름이었던 계급지배 사회를 최초로 뛰어넘은 현대로 다가서는 역사발전의 대전제였다고 할 수 있다. 계급의식조차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엔진의 필요성을 자각한 것, 그것은 바로 독창성의 발견과 양성과 존중과 권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계급과 독창적인 개체적 자아와의 갈등이 현대문명권역간의 선구와 종속을 낳았다는 점은 명확하다.
계급의식을 어느 정도 양보하여 명목화(명예화)하고 다소 낮추면서 사회구성원들의 독창성을 진작시키려 한 역사상 최초의 시도는 영국에서 일어났다. 명예혁명과 권리청원과 권리장전 등을 통해 왕권과 귀족들의 특권이 역사적으로 서서히 제한되고 시민의 의결권과 인간다운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역사상 선구적이라 할 수 있다. 왕이나 귀족과 같은 권력자들이 땅따먹기식 패권다툼으로 점철하던 유럽대륙의 통치체제가 시민의 개인적인 권리를 상대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동안, 영국은 왕과 국민 간에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정치사회적인 계약을 일찌기 이끌어내어 진일보한 역사발전,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역사상 초유의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었다.
영국민들의 이러한 권력층과 평민의 대등한 세력화는 개인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개별적인 독창성이 문명을 진보시키며 사회를 보다 나은 방식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의식의 태동과 지속적인 계승이 세계문명의 발전을 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러한 다양한 개인의 개별적인 독창성의 발현이 인류역사의 발전을 보다 진취적이고 가속적이게 한다는 사실도 경험적으로 깨달았고 나아가 독창성을 발견하고 진작시키는 것을 제도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회체제는 계급에 기초한 현실정치력과 사회내부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개별적인 독창성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발현시키려는 노력에 관심이 없거나, 정치적으로 개체성에 대한 한계의식의 고취를 통해 독창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왔다. 집권층과 사회기반계층의 메울 수 없는 균열의 고착화와 그것을 자의반 혹은 타의반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비통합적인 대립구조의 계급사회는 발전된 문명에 의한 문명종속을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하였다. 종속문명권의 정치지배층에게는 자위적으로나 생리적으로 독창성을 위험분자, 무정부주의자, 혁명주의자, 사회 부적응자, 허무주의자 또는 비사회적인 인격파탄자 등과 동류화하는 낙인을 찍어 사회로부터 일시적으로 또는 영구히 격리시키는 형벌을 가해왔다. 그들에게는 계급제도가 사회를 유지하는 엄격한 질서체계이자 무소불위의 이데올로기였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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