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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귀화 `克日 전도사' 호사카 교수

imaginerNZ 2008. 11. 13. 04:27

<연합초대석> 한국귀화 `克日 전도사' 호사카 교수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6.06.27 09:05



유교문화-무사문화 차이가 `불행한 한일역사' 잉태
"일본에 지지않으려면 일본을 먼저 제대로 연구해야"
"일본의 힘은 손자병법서..팽창주의 본질 이해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용수 편집위원 = 일본에서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이 터져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에는 `극일(克日)'의 구호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역사 왜곡이나 독도 침탈 기도 등의 되풀이를 막으려면 힘을 키워 일본이 한국을 업신여기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렇다면 일본에 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극일의 첫걸음은 어디서 시작해야 하고 `묘책'은 없는 것인지. 극일을 그렇게 외쳐왔으면서 왜 우리는 아직도 일본의 `도발'에 앉아서 분개만 하는가.

7월로 예정된 한국의 독도 주변 해류조사를 앞두고 한일 간에 자칫 `힘 겨루기'가 다시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도문제로 험악해진 한일관계를 보면서 떠오른 이런 생각들을 호사카 유지(保坂祐二.50) 세종대 교수에게 물어봤다.

호사카 교수는 한국에서 한일 역사를 연구하며 일본의 황국사상과 침략주의적 정신구조를 고발해온 일본인 학자다. 한일 관계사를 공부하러 한국에 왔다가 조국의 치부인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행위들을 파헤치는 고발자가 된 그는 3년 전 한국에 귀화했다. 올해로 한국 체류 19년째다.

그가 말하는 극일론의 요체는 바로 손자병법이다. 일본이 손자병법을 잘 활용해 오늘의 일본이 된 만큼 일본인의 이런 정신을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일 역사문제를 보는 호사카 교수의 시각은 지극히 `일본적'이고 실증적이다. 하지만 일본적인 방법에 충실한 그의 분석과 진단은 한국과 일본 양쪽에 경종을 울리는 논리와 설득력으로 가득 차 있다.

◇ 한국은 왜 일본에 당해왔나 = 호사카 교수는 과거 역사를 볼 때 한국은 침략사상으로 무장된 일본에 당하기만 했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분석한다. 일본이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과 일본문화 개방으로 우호를 기대했던 한국을 배신하고 역사 교과서 문제를 태연히 일으킨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일본인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한국은 일본에 계속 당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인의 본질은 팽창주의인 데 반해 한국인은 평화주의를 기본 시책으로 하기 때문에 언제나 일본은 선수를 치고 한국은 늑장 대응을 해왔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유교사상인데 이것은 인간중심의 사상입니다. 이른바 `양반정신'이 강합니다. 반면 일본은 유교를 유학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무사적인 생각이 행동을 결정합니다. 항상 싸워서 적을 이기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지요. 유교문화와 무사문화, 이것이 한국인과 일본인에서 크게 다른 점입니다."

"보편적인 인간 중심의 원리를 중시하는 유교는 `외부'를 보지 않는 약점이 있습니다. 반면 무사들은 항상 외부 침략에 대비하는 사고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일본이 외부 시각을 먼저 생각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반면 한국은 외부 변수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민족과 같은 내부 문제에 더 민감한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니 팽창주의적인 나라가 옆에 있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읽으려 하지 않고 한국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은 외부의 시각을 중시해 독도문제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고 호사카 교수는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독도는 한국땅인데 무슨 가당찮은 소리냐'는 입장에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해온 데 비해 일본측은 한국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재비판하면서 국제사회에 `한국의 불법점거'를 알리는 선전 공세를 적극 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일본은 상대방을 철저히 연구해 어떻게든 이기는 싸움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도 한국이 동북아재단 같은 기구를 만들어 독도문제 등에 체계적으로 대처키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입니다."

도쿄 태생인 호사카 교수는 1979년 도쿄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뒤 고려대에 편입학, `일본의 한국침략 배경 연구',`일본 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 분석' 논문으로 각각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호사카 교수의 한국 인연은 생각보다 엉뚱하게 시작됐다. 그는 중학교 시절 세계 격투기에서 `가라테'(일본 태권도)로 700전 무패의 신화를 만들었던 `신의 손' 최배달, 일본 프로 레슬링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역도산 등을 동경했다. 당시 기라성 같은 이들 스포츠 스타가 한국계라는 사실을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고 결국은 한국 유학, 한국여성과의 결혼, 귀화로 이어졌다.

◇ "일본의 힘은 손자병법에서 나온다"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인의 의식 기저에는 바로 이같은 손자병법의 정신이 깔려 있다고 단언한다. 무사시대가 700년이나 지속된 일본으로서는 싸우는 법, 다시 말해 이기는 법을 우선적으로 배워야 했기 때문에 손자병법의 기본적인 사상이 일본인의 의식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는 말을 영원한 진리로 생각한다.특히 일본의 정계와 재계는 이 원리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도자들은 손자병법에 관한 책을 반드시 곁에 두고 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인들의 강점인 계획성과 치밀성도 다름아닌 손자병법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일본인들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미리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준비한 다음 세워놓은 계획에 맞추어 순서대로 일을 진행한다. 이길 것이라는 계산이 서지 않으면 절대로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런 반면 먼저 상대방을 상세히 연구해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선제공격을 한다. 태평양 전쟁의 발단이 된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이같이 선제공격을 중시하는 일본의 병학정신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어떤가. 그는 유교사상에 기본적인 사고의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인에게 선제공격이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상대를 깊이 연구하는 것은 선비로서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강해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고 상대방을 연구하는 데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어떤 면에서 많이 발전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상대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약점을 잡아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는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는 일본인이면서 왜 하필이면 일제 침략행위를 속속 파헤치는 `이단'의 길을 택했을까. 호사카 교수는 한일 역사 연구를 통해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 진상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서 "내 조국이 남의 나라를 짓밟고 그토록 잔인해야 했던 이유들을 찾아내서 밝혀내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과거를 알지 못하면 미래도 알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 "일본에 안 지려면 일본을 먼저 그것도 제대로 연구하라" = 호사카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있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영유권의 허구성을 일본에,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논리를 개발하는 데 그야말로 `헌신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싸움에서 앞으로 일본이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이 호사카 교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호사카 교수는 별로 실질적이지 못한 한국의 공허한 극일론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국은 남의 나라 연구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으며 특히 일본 연구가 소홀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50년 전, 100년 전의 일본 문서를 해독할 인력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한일역사 문제는 일본에 많은 정보와 자료가 있는데 이러다 보니 일본 주도로 연구가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대에 일본어과가 없는 것이 일본을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하려는 자세가 결여돼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특히 일제의 침략 이데올로기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한국에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하면 교과서 왜곡 문제가 단지 과거의 역사를 왜곡, 은폐하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황국사상과 군국주의를 부활시켜 옛 일본을 다시 만들겠다는 면밀한 목적과 계획 아래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우경화를 "군대 부활로 연결되는 모든 움직임"으로 정의한다.

"현재처럼 단순한 침략 사실을 나열하고 찾아내는 연구에서 벗어나 일본인 의식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연구가 한국에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부지런하고 정직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일본인의 `침략성'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이중성 등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독도 대응에는 특별히 할 말이 많다.
"독도 영유권의 근거와 자료는 한국이 풍부하지만, 자료를 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해 논리를 세우는 연구는 취약합니다. 반면 일본은 연구기반은 약하지만 특유의 집요함으로 한국 주장을 하나씩 논파해 왜곡된 정보라도 정교하게 논리를 구성합니다. 대부분 한국이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논리들이지만 제 3자가 볼 때 오히려 세련되고 객관적으로 보이게 꾸미는 것이지요."

일본은 언젠가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데한국인끼리만 독도를 우리땅이라고 외치고 있으면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라는 게 호사카 교수의 우려다.

◇ 극일의 시작, 한일 동반자 관계 구축은 이렇게 = 호사카 교수는 왜 한국 귀화라는 운명을 선택했을까. 그는 "일본이 나를 낳고 키워준 나라라면 한국은 내가 평생을 바쳐 해야 할 할 일을 제시해 주었고 내가 누구인가를 찾게 해준 나라"라고 말한다.

그는 21세기는 한일 양국이 절실한 동반자 관계가 되지 않으면 두 나라 모두에게 험난한 길이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

호사카 교수는 일본에서 손님이 오면 경복궁에 있는 명성황후 피살지를 자주 안내한다고 한다. 같이 간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일본인이 조선의 왕비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대부분 근대 한일 관계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 일본인은 그의 설명을 듣고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인솔하는 가이드가 경복궁을 안내하면서 일부러 명성황후 피살지를 피한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가해자가 자신들의 과거를 알아야 암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만약 경복궁내의 명성황후 피살지를 일본인 관광객들이 꼭 둘러본다면 어떨까. 굳이 가이드의 설명이 없더라도 그곳에 자세한 일본어 설명문이 있어 한 나라의 황후가 얼마나 처참하게 살해됐는지 접하게 된다면, 한국에 수학여행온 일본 청소년들이 반드시 이곳을 들러 무지했던 선대의 만행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학생들이 일본에 돌아간 후 머지 않은 장래에 제2, 제3의 호사카 교수가 돼 돌아오지 않을까.

"한일 두 나라는 이처럼 역사의 상처를 알고 치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미래로 가는 디딤돌을 하나씩 만들어가야 합니다. 일본인은 일단 납득하면 비교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편입니다."

호사카 교수는 유관순 기념관을 일본 청소년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르도록 역사 교육의 메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적이 나를 알면 적은 나를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