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학교에서 장차 나라의 근간이 될 학생들에게 한자어와 붓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지적 죄악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집이나 학교에서 한문을 배우며 지적 우주감을 체험했고 문자의 논리성을 통해 최초로 논리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고 사서를 대충 나름대로 독학하면서 세상살이의 처세와 격조, 사람의 품위와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이며 실천궁행이며 호연지기가 무슨 뜻인지를, 그리고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며 세계의 궁극적 이치와 언어의 애매성을 통해 세계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방법 등을 익히며 언어의 한계를 넘나드는 체험을 했다. 글을 그리듯 이루는 붓놀림새를 때로 직접 보거나 때로 감상하며 글씨의 예술성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일가(一家)의 실천은 내내 미루어졌고 상식과 도덕에 배치되는 점도 많았음을 인정한다. 세상 밖에서 살고자 한 때문이었으리라.
한문서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므로 언외로 하겠다. 순한글을 원하는 사람은 순한글만 사용하고 한글과 한자어를 함께 사용하길 원하는 사람은 함께 사용하면 되겠지만 자식이 한자어에 까막눈이 되길 원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실용성 면만 보더라도, 첫째, 중국은 머지않아 미국과 함께 세계의 양극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면 중국어가 세계의 공용어인 영어에 버금가는 언어가 될 것이다. 물론 중국 본토에서는 간자체가 쓰이고 있으나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서는 번자체(정자체)가 통용되고 있고 중국본토에서도 어원을 밝혀주는 번자체를 함께 쓰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과 영연방계 국가들이 형성하는 서양의 주요국들과 중국을 주축으로 한 중화권 및 유교권 국가들(한국, 일본, 베트남) 이 세계의 양대산맥이 될 것임은 손바닥을 펴 보듯이 명약관화하다. 둘째로, 중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일본에서는 학생들에게 한자어 습득이 필수이며 따라서 그들과의 친근한 교류에도 필수적이다. 한자문화권 내에서는 영어보다 차라리 한자식 필담이 동화적이다. 그런데 학교교육에서 순한글만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고루하고 폐쇄적이며 편향적이다. 그것은 비좁은 한국사회의 꺽기에 지난한 아집에서 나온 발상이다. 그것은 우직스런 편견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한국에 사는 외국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그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람직스러운 방식의 선택을 권유할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사대주의자는 아니며 이 다섯 글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한국적인 현실을 전부 수용하지도 않는다. 경제발전에 매진하다 보니 동방무례지국에 거의 다가섰다. 예절교육의 중요성은 허황되거나 비뚤어진 마음 또는 자기중심적인 마음 등등의 비상식적인 마음의 발상을 스스로 다잡아, 사회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훈육하여 실천에 옮기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
요즘 한국의 어른들은 남의 이목에만 어긋나지 않게 맞추는 눈치도덕과 형식적 예절에 급급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주위의 입방아에 오르지만 않으면 무사하며 그 정도만 되면 사회생활의 합격점은 된다는 비례적인 사고방식을 토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만일 이런 사람들을 하루 24시간 동안만 투명인간화 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남의 이목만 중시하는 그런 발상은 예절의 태(胎)에 해당하는 마음부터 비례적이다. 비례적인 회색빛의 마음은 개체의 보호색에 불과하며 결국은 비례를 낳는다. 예절의 기후에서는 낮과 밤이 뚜렷하다. 회색빛 여명에 숨을 수 있는 시간은 잠깐이며 뒤이어 낮 혹은 밤이 반드시 찾아들게 마련이다.
이러한 어른들은 둘째 치고 한국어린이들의 행동거지나 예절을 외국어린이들과 비교해 보면 30점~50점 수준이다. 집안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며 동시에 아이들은 집안 어른의 거울이다. 그 거울은 한국의 가정교육에 대해 모든 것을 비춰 보여준다. 가정에서도 지켜야 할 법도가 있고 두루뭉실한 `우리`의 덩어리가 아니라 `너`와 `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분명히 심어 주는 데서 가정교육은 출발한다. 아이들이 장래에 어른이 되어 이기적이거나 혹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일평생을 살게 되면 그게 과연 행복한 인생을 담보해 줄 수 있을까? 밖에 나가보면 청소년들이 경박한 언어나 엽기적인 언어를 의식없이 주고 받거나, 쓰레기가 거리에 넘치게 하는 행위에 동참하거나, 아무렇게나 아무데서나 취하여 함부로 소리 지르거나, 고맙다는 소리는 하지 않더라도 결례한 행위를 한 점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일상화 되어 가고 있음을 도처에서 심지어 매스컴에서조차도 목격한다.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의 선진문물에 대한 물신숭배는 도를 넘고 있다. 무작정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세칭 명품(Vintage)-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부 어른들과 그런 경향을 보고 배우며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들의 정신상태는 주체성과 정체성을 동시에 상실하는 수준에 이르르고 있다. 차세대의 인간형들이 사회에 무신경한 사람이 되거나 외국의 선진문물에 도취되는 사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무작정 귀여워하고 예뻐하기만 하면 아이는 영원히 예절을 상실하게 된다. 정(情)의 문화, 그 장단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며, 그 결점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서예와 한문교육을 통한 정신수양과 예절의 함양이 감수성을 호흡하고 있는 신세대들에게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불교의 참선과 다도도 여기에 권고의 덧말로 붙이며 다음에 구도의 필제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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