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필집(미셀러니)

[스크랩] 예술활동과 한국식 학벌중시 풍토에 대하여

imaginerNZ 2007. 9. 17. 02:07

예술활동과 한국식 학벌주의 풍토에 대하여

                                                                -엘리엇 M. 킴

 

한 마디로 예술은 학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완전히 생소한 비혈연관계이다.

예술의 혈액형은 X이니 그에 매치될 수 있는 혈액형은 오직 X일 뿐이고

학력은 인위적인 휴지조각에 불과하여

우주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예술적으로도 무의미하다.

그것은 무의미의 미학과는 다른 비내포적이어 단순한 무의미이다.

 

요즈음 매스컴에 나붙은 학력위조 운운하는 기사와 폭주하는 엉터리 댓글들도

역시나 예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예술과 무연한 문외한들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예술이 추구하는 인류의 심성과

있는 그대로의 대자연과

이 양자간의 관계성에 대한 아름다움의 기호화가

진리며 선(좁은 의미의 사회적인 선 즉, 도덕)과 관련이 있다거나

혹은 배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키게 마련이다.

진정한 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한 미적 기호가 아니라

진선미가 합일된 하나의 덩어리이며

그 덩어리는 아련한 메아리를

우주의 전방향에서 수신하고

우주의 전방향으로 발신하고 있는

접시형이 아닌 덩어리형의 안테나이다. 

 

'학력을 위조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40대 ~60대이며 거의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도 그들과 같은 동세대인이다.

그 당시에는 소위 세칭 명문대 출신들이

간판으로 먹고 살고 서로 밀어 주고 받고 하던 풍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만연했던 시대이다.

그 시대에는 아무리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나도 학력의 보도를 휘두르던 집단에 인정받기 힘들었다.

예술사의 관점에서 19세기말의 개화기 이후로 지금까지도

한국은 '개척과 비평의 시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진정한 창조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여기에서 분명히 밝힌다.)

현재까지도 비평이 대세인 시대이며 그 비평은 학문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점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독창적인 예술적 능력을 지니고 그것을 발현하려해도 

학문적 권위를 바탕으로 한 비평의 검에 베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설령 그 이후에 현실과 담을 쌓고

고독하고 불행한 삶을 담보로 자신의 예술을 추구한다 하여도

그것은 결국 자신의 현실적인 삶을 거의 포기한 이후에 얻어지는 참담하리만치 아름다운 댓가이다.

 

그들은 학력을 짐짓 위조했으나 예술을 위조하지 않았으며

나름대로 자기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족적을 남겼다.

당시의 정황상 그들은 자의반 타의반 떠밀리듯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예술인에 대해 학력위조라는 죄를 씌우고

장시간에 걸쳐 입질을 하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이 지구상에서 유일하지 않나 싶다.

일반인들이 지금까지 간과했고 지금 이후로 재삼 인식해야 하는 요점은

원초적인 감성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서 비롯되는 예술이

타 전문영역처럼 인간활동의 한 분야에 불과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술은 예술로만 말하면 된다.

그것이 예술을 이해하고 작품들을 비교하고 비평하는 안목이자

예술에 대해 나름대로 확정적인 관점을 갖추는 마음의 토대이다.

그것이 예술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자 태도이다.

 

지금 이렇게 벌떼처럼 일어나 도덕이라는 예리한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비신사적이다.

지금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일반인들이

예술에 대한 소양을 쌓아

진정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된다면

그 이후에는,  회자되고 있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예술적으로 해결하도록 두어야 한다.

그토록 짓찧어대는 예술의 문외한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을 살아온 예술인들에게

한갓 학력이라는 허위의식의 도장이 찍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두루뭉실하게 학력을 추기하고 분칠을 했다고  

멸시와 의분의 칼날을 들이댈 근거나 자격은 없다.

 

예술인을 가혹하게 비판하면 그 사람의 예술성은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어떤 시대현상에 구애됨이 없이

예술은 사회적인 관습과 법도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저만의 영토에 머무르고 있다.

학력은 예술인들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으며

본질적으로 그들이 학력을 허위기재하여

자신이 예술적으로 더 인정받고 출세하려 했다거나 한 근거는 없다.

다만 그들의 사회지향성이 이러한 일들을 초래했고

사회적 덕성의 결여를 낳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본인들이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예술은 묵묵한 구도행이지, 사회성의 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동의 와중에 연예인 및 연극인들의 일부가 연루되어 있다는 점은

되새겨볼만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연극은 관객과 호흡을 함께 하는 예술분야이다.

거기에서 사회성을 배제시키면

극중 배우가 스스로에게 '빨간 피터의 고백' 같은 독백을 하는 연극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이옥랑 씨의 경우에는 평생 예술을 사랑하여 사재를 털어가면서 극예술을 활성화하려 하였다.

적어도 그가 돈벌이 사업을 하였던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 

 

한국의 학벌학연은 반드시 사멸되어야 할 최후의 현대적인 족벌체제이며

한국사회의 지도층, 즉 상류층에 진입하는 신분증이자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이다.

그것은 지극히 단절적이며 배타적이다.

한국식 학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연적 파벌집단에 속한 사람의 지도적인 능력과 사상을 검증 불가능하게 하고

비파벌에 속하는 국민대다수를 무력화, 순응화하도록 암시적으로 강요한다.

그것은 참다운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 에 파고드는 암(CANCER)과 같으며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에 바이러스처럼 속속들이 침투하여 

삼부의 고유한 기능과 역할과 임무와 책임에 보이지 않는 큰손으로 작용하여

불치의 병을 조장할 가능성을 확장시키며

암암리에 법과 법치의식을 무력화하는 밀실의 야합을 지속적으로 낳게 되어 있다.

 

그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류사에서 벗어버릴 수 없는 그늘 중에 하나이다.

허나,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력사냥은 어딘지 모르게 집요하게 파고드는 위력과

반면교사적인 위압감을 대중에게 뿌리깊게 심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현대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정치, 경제, 언론계의 지도층이 보기에

예술인들의 학력오기재현상은 묵과할 수 없는 사회적인 범죄로 여겨진다.

 

철퇴를 든 그들 자신이 짓는 죄는 법의 테두리에서 맴돌거나 슬쩍 슬쩍 넘나들이 하면서 

일반국민이 보기에 하나의 시야에 명확히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규모이면서 동시에

비도덕적이긴하나 합법을 가장하고 주장하는 애매모호함 때문에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그들의 암의가 법망에 걸려들어도 실타래처럼 얽힌 학연과 지연에 의한 의리나 온정주의

또는 궁극적으로 나아가서 정치적 동지들의 우두머리인 통치권자의 사면과 복권이라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the last hidden card)가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예술인들은 천성이 현실에 비타협적이며 야합의 분위기에 예방주사와 같다.

그들은 사회적 관계에 대해 비면역적이어 합리적으로 타협하지 못한다.

그들은 쉽사리 권력과 일반인의 십자포화에 걸려들 수 있으며

스스로 열어 놓은 개활지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다.

 

한편으로, 정치계와 경제계의 지도자들은 누구보다도 능숙한 말의 연금술사들이며

그들은 말의 진실인 '금(gold)'을 만들기 위해

연금술을 익히고 지속적으로 실험을 하나

연금술은 원천적으로 '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들에게서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다져져 강직된 원칙고수주의와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중국식 유교풍의 냄새가 풍겨난다.

 

하루라도 빨리 성실한 땀방울로 이룩되는 능력위주의 사회가 도래하기를 바란다.

-계속

  

 

 

출처 : 바라밀 실천도량
글쓴이 : 엘리엇 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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