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고독 속에서 피어난다.'라는 말은 *홑설 어색하다.
'예술은 고독 속에서 피어난다.'라는 말은 좀 어색하다.
그 말은 일종의 '미완의 진술'이다.
진정한 예술은 '고독의 씨앗에서 움이 트고 성장하여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과정이 예술가에게 절실하다는 말이다.
예술의 완성에 도달하려면 정확히 그 사람의 일생이 필요하다.
일생이 짧고 길고는 예술가 개인의 문제이다.
만일 어떤 예술가가 요절하거나 자연수명을 다 살지 못했다면
그가 처한 '처절한 고독 속에서 예술이 피어 났다'라고 할 수는 있겠다.
허나 그가 자신이 희구하던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더 오래 살아 성취할 수 있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영역에 대해
영원히 고독해 하고 있다.
예술계의 처녀귀신이나 혹은 총각귀신 같다고나 할까?
세속적으로 '어떤 예술인은 위대하다.'는 말은
진정한 예인을 제대로 평하는 말은 아니다.
만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인이 도달한 최종적 깨달음의 경지에 대하여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완성성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여 주관적이거나,
생각 없이 대중적이어 일방적으로 말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는 진정한 예술인이다.'라고 말하거나
'그는 깨달음에 도달한 진정한 예술인이다.'라고 말하기 보다
'그는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한 예술인이다.'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미혹함과 깨달음과 그 경계지대에는 숱한 단계와 양상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예술은 '고독 속에서 피어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예술은 '깨달음 가운데에서 피어난다'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독수공방의 고독 속으로 놀이 끝난 공처럼 훌렁 던져 본다.
(200710280516 대치동에서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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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홑설:제주도 사투리로 '약간'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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