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대하여(On Sorrow)
-엘리엇 킴
사람의 감정에는 쾌와 불쾌가 있다. 쾌의 감정은 육체의 고락을 잠시 잊은 망각의 아늑함이거나, 또는 살아 있는 조바심에 들뜬 생동의 감정이다. 쾌의 감정은 자아의 문제이다. 자연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나, 갈증 끝에 옹달샘을 찾은 사슴이나, 사냥감을 맛있게 뜯어먹는 사자는 자연 속에서 대등하다. 세속에 각박해진 각막을 거두어 낸 후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처음에 쾌의 감정에 크게 기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쾌에 치우쳤던 감정이 서서히 평정심으로 복원한다. 비로소 그는 목을 축인 사슴이나 배부른 사자처럼 무심히 자연 속에 제 모습으로 있게 된다. 자아의 느낌은 빛의 촬영이 끝난 카메라의 초점 속으로 닫히듯이 사라진다.
불쾌의 감정을 느끼면 생물은 자연에 대한 공포나 불안감이나 체념에 자연에서 낯설게 멀어지며 불쾌의 감정 뒤끝에는 언제나 슬픔이 있다. 진정(盡情)한 슬픔은 쾌의 감정과도 연결되는 외나무다리가 있어 진정한 슬픔은 마침내 자연에서 더 이상 가까워지거나 멀어지지 않는 감정의 지평이다. 진정한 슬픔은 저을 수 있는 나래가 없기에 자연으로부터 감정의 등거리를 에우는 지평을 유지한다. 사소한 슬픔의 감정은 힘에 부치는 외나래가 있어 아무리 저어도 빙빙 돌며 맥없이 추락하여 곧 본래의 발산적 슬픔으로 귀결한다. 슬픔은 젖은 샘에서 솟아나 종내 마른 바닥이 드러난다.
슬픔은 생물이 지닌 자연의 저울이다. 한 쪽이 치우치면 그것은 기울어지고 다시 복원하는 자연의 저울이다. 기쁨이 너무 크면 이 경우에도 슬픔이 그 끝을 제어하여 복원시킨다. 슬픔이 너무 크면 슬픔이 그 끝에 동질성으로 스스로를 제어하여 서서히 평정심으로 복원시킨다. 슬픔의 묘약은 슬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때로 생명에게는 매우 길고 지루하고 메마르게 느껴진다. 그것은 사소한 갈래의 슬픔에서 일어나는 일과적 복원이 아니다. 그 과정은 밋밋하고 단조로워 사람을 생동감의 상실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 정황에 빠진 사람은 생의 입맛을 잃고 유발적인 심장박동의 촉진에 반응성을 상실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모나드(窓)는 동일하다. 그것은 정신이 상향이면 눈부시게 하얀 창이며 정신이 하향이면 끝없이 깊고 어두운 허방이다. 드물게 정신이 평정한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그 틀이 무한확장하여 감수적 시선의 범위 내에서 자연을 담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계에 순응하고 이를 수용하나 마음의 흔들림에 평정한 사람은 자기시선의 범위에 한계를 느끼고 이해하여, 궁극적 방식으로 슬픔의 구름 위로 고개를 내민 초자아의 봉우리를 형성한다.
자연에 속한 모든 것들은 정확히 제 그림자를 온전히 담고 있다. 궁극적으로 대자연은 자신의 그림자를 온전히 담고 있다. 감수적 시계(視界)에 한계를 느낀 사람은 대자연의 그림자에 스민다. 그 자신의 그림자는 마침내 지워지며 무상의 봉우리를 솟아내민다. 생명이 지닌 감정의 끝은 슬픔이다. 사람은 슬픔의 감성을 통로로 삼아 자연과의 교감으로 나아간다. 대자연에 혼재하며 그 대자연을 구성하는 물상들은 감정이 없는 대신 유동적 변전의 여러 가지 현상으로 인간에 깊이 영향을 주어 그것을 꿈틀거리게 한다. 그런 대자연의 변전현상이 인간의 감성을 잉태하여 자라고 성숙하게 한다. 구극적 인간감성은 이렇듯 모태인 대자연과 그 변전현상에 동화되기를 갈망하나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양자의 일치는 실현될 수 없다는 느낌이 사람에게 슬어가는 슬픔의 진정(盡情)한 체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슬픔의 진정한 체감은 인류에 대한 박애와 자비와 구원을 낳는 마음의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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