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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몇 가지 어리석음 - 필 가는 대로

imaginerNZ 2007. 7. 1. 03:47
 

한국사회의 몇 가지 어리석음 - 필 가는 대로


1. 교통사고의 다발성 - 교통사고를 선진국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줄이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교통범칙금을 3~5배로 인상하면 아무도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위반한 사람은 돈이 아까워서 또는 자본주의의 냉엄함에 치를 떨며 다시는 교통법규를 무의식 속에서도 위반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자연스레 스스로의 목숨과 또한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구하고 싶을 처자식의 목숨을 자연스레 구명하고, 액수는 적지만(?) 재수 없어 딱지를 떼였다고 생각하며 자주 물던 범칙금의 부담도 법규준수로 내지 않게 되어,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닐까? 아울러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 횡단보도나 사거리에서 정지선을 지나친 경우 벌금을 중과하면 인사사고는 적어도 50%이하로 감소할 것이다.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2. 정치 - 치유불능의 중환자들의 응급실이라 언급을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나 이 난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직입하여 몇 마디 한다면, 국민이라는 말을 강아지 부르듯 하는 인간들이 정치일선에는 부지기수다. 국민이라는 말의 참뜻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럴까?. 자각이 없다 못해 몰지각한 밥그릇 말싸움꾼들이 매우 많다. 마치 정치는 이렇게 해야 살아 남는다는 듯이 너 죽고 나 살기 위해 서로 노려보며 으르렁대는 투견들처럼 목숨걸고 제 약점과 비리는 끝까지 숨기면서 상대방의 약점과 비리를 들추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맹렬히 싸운다. 한국정치인들의 싸움이란 국민도 못 말린다. 내가 당신들 뽑아 줬는데 내 말 좀 듣고 싸우지 마라고 한들 통할 리 없다. 싸우면 안 찍어 준다고 해도 안 통한다. 선거철에 넙죽넙죽 절하고 따뜻이 손 한 번 잡아주고 가식적인 미소와 감언이설로 공약을 되도록 부풀려서 포장만 잘 하면 우민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패하면 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정치인인데 이제 무얼해야 하나`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너무 많다. 그리고 개괄적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지배층은 국민이 주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지배적 특권의식이 유달리 강하다. 특히 `인치`가 문제다. 인치는 법치국가의 가장 큰 해악이다. 법대로 해야 한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속한 사람들은 선민(選民)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 특유의 분열적 소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편법을 때로는 소속집단의 이권을 위해 법을 발로 차버리고 비리를 감행한다. 그들은 내심 `난 이 정도 높은 지위에 있으니까 물질에 구애받지 않는 수준의 생활을 해야만 품위를 지킬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서민에 비해 제법 되는 그들의 월급만으로는 그들의 심리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품위유지를 위해 또는 검은 정치자금을 위해 뒷돈이 서로 필요해지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정경유착비리가 횡행한다. 그러나 국민이 느끼는 의분 아니 차라리 울분에 가까운 감정에 대해 그들은 면역이 되어 있다. 매스컴에 나오는 그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의 심사가 확연히 드러난다. 회의를 한답시고 그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 능청맞은 얼굴에 한자리께나 한다는 표정이 마치 가면무도회를 여는 것 같다. 그들 중에 우두머리급들은 보다 미래지향적인 후배들의 길을 막고 앉아서 마치 이 길은 내 길이니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못 간다는 식으로 버티며 아름답고 책임 있는 용퇴의 길을 늙어 걷지 못할 때까지 부정한다. 현재의 지배층을 조선시대의 사대부와 비교해 보면 거의 대동소이하다. 소수의 가난한 정치인(한국정치인들에게는 가난이 청렴의 한 척도이다. 왜 그럴까?)을 제외하고 국민을 어리석은 백성으로 알고 있다. 쥐꼬리 월급쟁이들은 꼬박꼬박 세금 뜯기면서 의사나 변호사나 사업하는 사람들은 세금이 쥐꼬리다. 아무런 조치가 없다. 형식적인 엄포만 놓다 만다. 그들은 제들끼리 하는 기득권싸움에 민생법안조차도 제 때 통과시키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정치는 민생복지를 위해 존재하며 거역시는 절대 다시 뽑아 주지 않는다.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아무리 기를 써도 정치에 복귀할 수 없다. 그리고 알아서 단념하고 다른 일에 몰두한다. 우리나라 하급공무원들의 보신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 못한다. 위에서 크게 해먹는데 우린 몸조심이나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윗사람이 부패에 연루되면 쉬쉬하고 말단 공무원이 걸리면 마치 발본색원한 듯이 매스컴이 떠들어댄다. 온전한 정신들이 아니다. 과거에는 민도가 낮다느니 하는 말이 돌았다. 이 말은 쉽게 말해서 국민이 무식하다는 소리와 같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모든 국민들이 불행하게도 유식하여 다수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의 행태를 보고 울화가 치밀어 `그놈이 그놈이다` 또는 `미친 놈들` 하는 소리가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할 것 없이 절로 나온다. 아마도 정치인들이 `미친 놈들`이라는 소리를 듣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외세에 의해 국가적인 위기가 닥치는 결정적 시간에도 현재의 정치인들은 그들 앞에서 밥그릇 싸움을 할 태세가 구비되어 있다는 것은 과장된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나라는 국토여건이나 지정학적으로 보아 물질적으로 1등 강대국이 될 수는 없다. 나라마저 없었으나 일치단결하여 일등민족의 자부심을 대대로 교육시켜 온 유태인들처럼 똘똘 뭉쳐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정신적, 문화적, 과학적 1등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외국인에게 자랑스런 정신적 문화유산이 많다. 예를 들면, 국악합주나 승무, 가야금의 악성, 세계를 휘감는 듯한 느리고 우아한 춤의 자유와 절제가 어우러진 듯한 율동과 미려장중하고 여유가 넘치는 국악에, 한국도자기의 독특한 빛깔과 미완의 완성과 절묘한 불균형이나 질박한 형태의 미학은 유례가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런 예술의 혼은 우리의 혈맥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그 혈맥을 이루는 당대의 사람들이다. 일본은 문화적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고 철저하게 보존하면서 그 무형의 문화적 자산을 세계에 끊임없이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노력을 한다. 그것은 거의 세뇌라고 할 만하다. 일례를 들면 그들이 만화영화를 세계 곳곳에 뿌리면서 잊지 않고 있는 것은 세계의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일본의 문화를 부지불식간에 흠모하고 존경하게 만드는 교묘한 수법을 쓰고 있다. 당당함이 느껴지지 않고 소꿉장난같은 극히 일본적인 발상이나 우리에게는 일부 귀감이 되는 점이 분명히 있다. 우리에게 있었던 고대 옛 조상의 당당함이 조선조 사대부의 정략적 파쟁과 허장성세와 20세기 들어 일제에 의한 국권훼손과 뒤이은 외세의 알력에 의한 참담한 동족상잔의 전쟁과 지속적인 남북대립(극소수의 선발된 이산가족의 상봉장면을 보면, 속 깊은 눈물의 뜨거움에 남북한의 정치인들에게 끓어오르는 의분을 금할 수 없다. `국민을 저 지경으로 만들다니`하는 생각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친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한을 품고 죽어 갔으며 앞으로 죽어 갈까? `, 도대체 정치가 뭐 길래 `생이별에 가슴 저미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의 임종을 자식이 지켜보지도 못하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뇌에 뿌리 박힌다. 세계에 없는 현상이 남북한 정치세력의 선심에 의하듯 선전적으로 벌어지고 외인기자들은 그 참담한 엉엉울음을 세계각국으로 전송하고 매스컴을 통해 그 광경을 보는 외국인들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저런 문제도 남북코리아당국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할까? 아니면 `참으로 인류애가 실현되는 장면이네`라고 생각을 할까? 아니면 `공산주의 때문에 그렇겠지`라고 생각할까? 화해부재의 내부정치력의 균열로 인해 외부적 문제에 신경을 쓸 여력의 상실이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 핏줄의 결합이 아닌 고루한 적대개념에 의해 상대에게 `먼저 빌든지 항복하든지 하면 불쌍해서 조금씩 소원 들어주마`라는 좌우편가르기식 발상은 이산가족의 부모형제는 물론이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보며 당사자가 아님에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이 땅에 한 뿌리인 비이산가족의 부모형제들에게도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을까? )속에 만연한 자본주의적 황금만능주의에 의해 많이 훼손된 것은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남의 장단에 놀아나고 피해와 폐해, 파괴와 살육과 그 뒤끝에 남은 자학만 실껏 떠안아 온 것이다. 잘못된 역사는 두 번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남보다 못 사는 점이 별로 없다. 제한된 분야이기는 하지만 일부 경제기술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고 문화적으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다만 사회정치적으로 후진적임은 달가이 인정해야 한다. 외국에서 매스컴을 보면 한국에 관한 기사의 대부분이 국내는 물론이고 남북한을 포함한 정치적 알력이나 시위하는 광경이다. 교포들은 어쩌다 좋은 기사가 나오면 후유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 없는 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나 사회정치적으로 뒤쳐져 있으면 더 이상의 발전이 더디어 지는, 즉 시간의 흐름에 마냥 의탁하는 자족적, 습관적 태만의 한계에 부딪히거나 모든 제도의 선진화가 지체되거나 혹은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관습의 축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여러 가지 잘못된 선택지가 미래의 어느 한 갈림길의 시점에 국가의 명운을 잘못 틀어 놓을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특히나 북한을 포용하는 단일국가적 단결과 화합을 반드시 이룩해야 한다. 국가적 단결만이 일등국가를 만든다. 애국가를 부를 때 정말 국가를 위한 사랑과 투혼으로 항상 불렀던가? 하고 되짚어 보자. 정치인들은 각성하거나 사퇴하거나 둘 중에 하나로 용단을 내리도록 물러날 사람들은 물러나게 하고 중용할 사람들은 중용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의 자의로는 곤란할 것 같으니 국민 각자가 이러한 교통정리의 한 표를 다가오는 선거에서 빠짐없이 던지되 동정심이나 사심을 버리고 행사하기를 간곡히 권한다. 단, 주의할 점은 입후보자의 감언이설을 경계하고 솔직성, 성실성, 도덕성, 겸손함, 진취성 등 개개인의 사람됨됨이로 선택하는 게 가장 나을 듯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기본이 안된 정치인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매스컴으로 대하고 있지 않은가?

              


3.교육 - 학교에서 장차 나라의 근간이 될 학생들에게 한문과 붓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지적 죄악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집이나 학교에서 한문을 배우며 지적 우주감을 체험했고 문자의 논리성을 통해 최초로 논리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고 사서를 대충 나름대로 독학하면서 세상살이의 처세와 격조, 사람의 품위와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이며 실천궁행이며 호연지기가 무슨 뜻인지를, 그리고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며 세계의 궁극적 이치와 언어의 애매성을 통해 세계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방법을 익히며 언어의 한계를 넘나드는 체험을 했다. 글을 그리듯 이루는 붓놀림새를 때로 직접 보거나 때로 감상하며 글씨의 예술성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일가(一家)의 실천은 내내 미루어졌고 양식과 도덕에 배치되는 행위도 많았음을 인정한다. 세상 밖에서 살고자 한 때문이었으리라. 한문서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므로 언외로 하겠다. 순한글을 원하는 사람은 순한글만 사용하고 한문을 함께 사용하길 원하는 사람은 함께 사용하면 되겠지만 자식이 한문에 까막눈이 되길 원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실용성 면에서만 보더라도 중국과 일본에서는 학생들에게 한문이 필수이며 따라서 그들과의 친근한 교류에도 필수적이다. 한자문화권 내에서는 영어보다 차라리 필담이 동화적이다. 그런데 학교교육에서 순한글만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고루하고 폐쇄적이며 편향적이다. 그것은 비좁은 한국사회의 꺽기에 지난한 조선적 아집에서 나온 발상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그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람직스러운 방식의 선택을 권유할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사대주의자는 아니며 이 다섯 글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한국적인 현실을 전부 수용하지도 않는다. 경제발전에 매진하다 보니 동방무례지국에 거의 다가섰다. 예절교육의 중요성은 허황되거나 비뚤어진 마음 또는 자기중심적인 마음 등등의 비상식적인 마음의 발상을 스스로 다잡아 사회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훈육하여 실천에 옮기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 어른들은 둘째치고 한국어린이들의 행동거지나 예절을 외국애들과 비교해 보면 30점 수준이다. 아이들은 집안 어른의 거울이다. 그 거울은 한국의 가정교육에 대해 모든 것을 비춰 보여준다. 가정에서도 지켜야 할 법도가 있고 두루뭉실한 `우리`의 덩어리가 아니라 `너`와 `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분명히 심어 주는 데서 가정교육은 출발한다. 아이들이 장래에 어른이 되어 쓰레기가 거리에 넘치게 하는 행위에 동참하고 아무렇게나 아무데서나 취하여 함부로 소리 지르거나 취해서 비틀거리다 길바닥에 토하거나 고맙다는 소리는 하지 않더라도 결례한 행위를 한 점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도 않는 무신경한 인간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무작정 귀여워하고 이뻐하기만 하면 아이는 영원히 예절을 상실하게 된다. 정(情)의 문화의 장단점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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