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중
아래 내용은 다음 카페 '바라밀 실천도량'의 '자작시 글방'에 실은 '함박눈'이라는 시에 단 댓글
마음이 달님 같으십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제주에도 눈이 제법 쌓일 정도로 내리곤 했지요? 손이 고스기도(곱기도) 했고 손이 코끼리 피부처럼 트고 때로 갈라지기도 해서 둥글 납작한 통에 들어 있는 '안티프라민'을 바르기도 했지요^^! 그때의 겨울에는 하얀 파도의 포말을 넘고 넘어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참 추웠습니다. 그때의 겨울바다는 정말 겨울바다다웠습니다. 요즘은 제주도의 해안풍경이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제가 몇 년간 자랐던 구좌읍 세화리와 평대리의 갯마리(갯마을) 사이에 있던 만도 매립되어 있더군요. 제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는데. 제주시 해안가에 기다란 방조용 둑과 자갈해변도 없어졌지요? 07.06.09 01:52
용연 위에 걸려 있던 구름 다리 아래로 바라보던 용연은 정말 무섭도록 아득히 깊은 청자빛이었죠. 오른쪽 절벽에는 1단부터 10단까지 바위 턱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아이들의 용감성 테스트로 보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릴수록 마음에 훈장이 쌓여 갔습니다. 용연에서 돌아 올 때에는 풀이 죽은 채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걷거나 아니면 의기양양하게 개선장군처럼 한껏 소리 높여 이야기를 하든가 둘 중 하나였습니다. 맞은 편 절벽 위가 11단이었고 구름다리가 12단이었답니다. 제 눈앞에서 12단에서 뛰어 내려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던 국민학생은 단 1명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키가 작고 등이 굽은 아이엿찌요. 살아 있다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입니다.07.06.09 01:58
제가 태어나 3살까지 살았던 고향 마을의 생가와 마당과 식물들도 꿈이었던듯이 모두 다 개발이 되거나 매립되거나 버혀져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변해 가고 있으나 제주에는 변함 없는 게 하나 있지요? 언제나 우리를 내려다 보며 품어 주었던 큰 어머니요^^. 한라산 말입니다. 제주도는 섬산이니 그것만은 변함이 없겠지요? 그 자애로운 모습에 너그러운 품이 그립습니다. 07.06.09 02:03
십 여년 전에 제주도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시간을 내서 내가 자랐던 곳들을 둘러보는 여정에 올랐던 적이 있다. 성산읍 고성리 웃동네 생가터와 구좌읍 세화국민학교와 평대리 갯마리(갯마을)와 제주시 시민회관 동네와 남국민학교 등을 둘러 볼 참이었다. 갯마리에 들렀을 때 나는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창이 있던 세화리 바닷가와 건너편 평대리의 갯마리 사이에 있던 넓은 만이 온통 매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과 어린 시절에 뛰놀았던 그 자연의 일부나마 고맙게대하는 순간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샘솟아나와 주르르 두 뺨을 타고 흘러 내리고 있었다. 싯푸른 하늘에 짙하얀 뭉게구름이 걸려 있는 수평선을 띤 바다와 뒤돌아 봄에 어머니 한라산과 어느덧 중늙은 이 동심은 그대로이건만 그때 이 만안에서 출렁이던 파도와 거무튀튀하고 거칠거칠하던 갯바위들이며 썰물에 가로길게 드러나던 그 모래톱과 그 사이로 거대한 뱀이 S자형으로 기어가듯이 나있던 용천수의 물길든 정말 어데로 사라져 버렸는가? 밀물의 수면위로 뛰어오르던 숭어들이며, 그 물밑속에 하늘거리던 미역줄기와 다시마와 톳, 그리고 물밑바위에 붙어 서서히 움직이던 보말(작은 고동)과 구쟁기(소라)와 전복이며, 성게와 불가사리들은 어데로 다 사라져 버렸는가? 함께 물씨름에 물장구하고 양은 주전자에 갯바위틈새 참깅이(참게)를 잡아 넣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는가?
'엘리엇 킴 작품방 > 수필집(미셀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이라는 나라가 인류사에 주는 의미 (0) | 2007.06.22 |
---|---|
웰빙유감 -작성 중 (0) | 2007.06.22 |
치자나무 (0) | 2007.06.17 |
제주도의 고유명칭 복원에 대한 제언 - ‘한뫼섬’ 으로 (0) | 2007.06.10 |
시(詩)는 저홀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0) | 2007.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