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련/제주도 사투리

KOREA 의 어원은 굴 구멍 이라는 굴

imaginerNZ 2007. 5. 20. 03:11

1. KOREA 의 어원은 굴 구멍 이라는 굴

 

앞으로 통일이 되면 정식 국호가 될지도 모르는 KOREA 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온것일까?

 

그야 물론 그 유명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카울리(Cauly)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고 있는데, 고려(高麗)의 현대 중국어 발음이 까올리(Gao-li)인 것을 생각하면 고려의 이름이 서양인들을 통해 알파벳만 변하며 지어진것은 분명한것 같다. 그렀다면 고려(高麗)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왔을까? 

우선 고구려의 이름부터 알아보자. 

 

1. 고려, 고구려라는 국호

 연속극 주몽을 보니 주몽이 高句麗 라는 국호를 짓는다. 그리고 그 국호의 뜻을 서소노에게 설명한다.

 " 이 高句麗라는 뜻은 높고 밝은 뜻이기 때문에 고구려라 한 것이다"  아니 高句麗 라는 말 속에 어디 높고 밝은 뜻이 들어있는가?

 

* 첫조선 이전의 우리 이름은 구리 이다.

 천부인으로 만든 우리 글자 ㄱㄴㄷ...ㅎ 에서 ㄱ 의 뜻은 가장자리 이다. 강가니 바닷가니 갓길 모두 가장자리 이고 가죽도 가장자리이며 왕겨의 겨도 알맹이가 빠진 가장자리인데 지금 계집은 세종때 까지만 해도 겨집(訓蒙字會)이였고 북한은 물론 경상도에서도 여자를 가장자리라는 뜻의 가시, 갓인애 > 가시네 라 한다. 또 굴 이나 골도 감둥이 검둥이가 같은 말이듯 같은 말이며 가장자리 이다. 즉 무엇인가 빠진 껍대기 이다. 따라서 남녀 결합시 남근은 중심이 되지만 여음은 그 가장자리가 되니 여음이 바로 굴이다. 즉 굴은 구무 와 같고 구무는 구멍이며 여음이고 골도 굴이다, 즉 골짜기는 골이 짜개진 것이니 그냥 골은 굴과 같은 구멍이고 여음이다.

 

 이 말은 노자 도덕경 6 장 谷神不死 是謂玄牝 에도 나온다. 즉 谷자는 유방 두개 아래 가랭이가 있고 그 가운데 입(口) 가 있는 글자이며 그래서 이는 생명의 탄생을 말하고 그래서 생명의 신 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 谷神不死이며 是謂玄牝은 이는 소 엉덩이에 비수자국 과 같은것 이라 한것이다.

 

 또 사람의 일생은 어떤가? 말이 몇 마디 되지 않던 원시말로 생각해 보자.

 사람은 굴 속에 씨를 뿌리고 굴 속에서 싹이 트며 굴속에 있던 태아가 크면 굴 구멍을 나와서 또 굴구멍(입)으로 먹거리가 들어가야 하고 또 그 찌꺼기는 역시 굴 구멍으로 배설한다.

 우리말에 똥이나 방귀의 냄새를 구린내라 한다. 구린내는 굴인내에서 나온 말이고 그 굴은 우리의 위장이다.

 이렇게 그 굴 안에 씨를 뿌려 굴 안에서 싹이 트고 굴에서 나와서 굴 구멍으로 먹고 굴 구멍으로 배설하는 옛 사람들은, 또 토굴 안에서 살았고 죽어도 땅굴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사람의 다른 말이 바로 이고 이 굴에 우리말에 흔히 붙는, 즉 갑순이 갑돌이 하는 접미사 가 붙으면 굴이> 구리 가 된다.

 뭐 짐승도 굴속에서 살아서 구리가 될 것 같지만 사람이 짐승의 대표이고 또 사람 입장에서 말 하니 구리는 짐승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지녹도전자 굴 그림)

 여기에 대한 중국인들이 객관적으로 본 근거 문헌을 찾아보자

 * 진서 동이전에 의하면 "여름에는 나무 위의 깃에서, 겨울에는 굴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夏則巢居冬則穴處 - 晋書 東夷傳)

 * 또 삼국지에서도 나온다.

 ...‘보통 거주하는 굴 구멍의 큰집은 깊고, 사다리는 아홉 개까지 있는데 이는 많을수록 좋다(常穴居大家深九梯以多爲好)’라 했고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하고 주목해야 할 것은 "보통 거주하는 굴 구멍의 큰집은 깊고 사다리는 아홉 개까지 있는데 이는 많을수록 좋다"(常穴居大家深九梯以多爲好) 이다.

 즉 많은 사람이 사는 큰 굴 구멍 일수록 깊고 사닥다리를 옆으로 아홉 개나 놓았다는 것인데 이 사닥다리를 많이 놓았다는 것은 그만큼 굴이 깊고 식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사다리 들은 그 굴 구멍이 평지가 아니라 굴에서 급경사 진곳, 즉 낭떠러지 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말은 필자가 먼저 말한 하느님, 환숫당시에는 결혼제도도 없었으며 따라서 내 처자식이 없었다는 말이 입증되기도 한다. 즉 그때 부부가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면 현대인들이 그렇드시 한 가족이 한 굴을 가지고 사는것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그러나 사다리가 많은것을 더 좋아했다는 말은 그 굴속에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말이 되고 이는 내 처자식이 따로 없었다는 말도 된다.

 

 이상으로 볼 때 좌측이 터진 尸자 그림 꼬리처럼...즉 좌로 터진 "ㄷ"의 아래 꼬리 부분은 바로 사닥다리를 놓았던 자리 그림 일 것이다.

 이렇게 굴 속에서 살던 한아비들은 죽어서도 굴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땅 굴만 아니라 아예 굴속에다 시신을 안치 한다는 말이며 이는 지금 인도네사아등 오지에서 사람이 죽으면 절벽...즉 낭떠러지 에 굴을 파고 시신을 안치 하는데 이 역시 그림 글자를 만든다면 같은 그림이 될것이다.

 

 주검(죽엄)시(尸) 그림

 

 그래서 위 신지 녹도 전자에서 그 입구가 막힌 글자로 진화한 것이 바로 주검시(尸)자 인 것이다.

 따라서 단군조선 (배달국 )이전 환웅 때부터 우리는 우리 종족의 명칭을 '구리' 라 하였고 이것이 한자로 표현 하면서 높다는 뜻의 高자가 붙어 고구려(高句麗)가 되고 또 고리(藁離)의 음대로 고려(高麗)가 되었는가 하면 이것의 영문표기가 KOREA가 되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 조상이 구리 라는 중국인의 표현을 보자. 중국인은 한자로 구리 표현을 구려(九黎), 고리(藁離),구이(九夷)라 하였다.

* 왕동령(王桐齡)이라는 중국 사학자는 이십오사를 인용하여 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라 하였고 구려는 옛날 천자의 이름 (古天子之名)이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 라 한다고 했다.

* 위서(魏書)에는 "고리(藁離)에서 온 동명(東明聖王)이 세사람을 만나 흘승골(訖昇骨)에 이르렀다"라는 말 있다.

* 후한시대後漢時代의 공안국孔安國도 "<구려국>의 군주는 <치우>이다.(九黎君號蚩尤是也)"라 하였다.

* 이십오사 에서는 구이(九夷)라 하였다.

 

 이 이외에더 다수의 기록이 있지만 생략하고 여기서 한자의 뜻과 음에 대하여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유는 여기에 지금 전개되고 있는 사건은 환인 환웅 시대로 한자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 이야기 이고 그 후 환웅의 신하 신지의 제자 창힐이 한자를 만들었다 하나 이도 그림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원시 한자 이기 때문이다. 그 후 중국인들은 이 창힐 한자를 토대로 자기네 들이 우리 상고사를 기록 할때 우리말과 글자의 뜻은 상관없이 엇비슷하게 음만 적어 놓은 것도 다행 이다.

 

 이상을 참고로 위에 중국의 기록인 구려(九黎), 고리(藁離), 구이 (九夷 -여기서 구이는 아홉 동이족 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는 구리를 쓴다는 것이 그렇게 써진 것으로 본다  단 여기서 '굴'이 한자 굴(窟)에서 나온 말이 아니가 의심 할 수도 있는데 이는 신지의 제자인 창힐이 한자를 만들었으므로 우리말의 대다수를 본뜬 것이 한자음이니 한자가 우리말과 같은 것이 많다.

 

* 그렇다면 지금 우리말에 '구리라는 말이 남아 있는가?

 그 흔적은 '멍텅구리' 의 '구리' 에 그대로 남아있고 '심술꾸러기', '작난 꾸러기' 의 '꾸러기'도 굴이 > 구리 > 꾸리 > 꾸러기 이다.

 

 따라서 위 연속극 주몽에서 극작가들이 구려의 뜻이 높고 밝게 어쩌구는 완전 우리 역사와 우리 말의 뿌리를 알지 못하고 쓴 소치이고 고구려는 이 구리, 구려, 고리 에서 나온 말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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