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
-엘리엇 킴
먹이가 섞인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집 없는 괭이들은 그 위에 부른 배를 깔고 앉아 졸거나 무엇인가를 빤히 바라보거나 무언가에 겨워 소리 없이 거동한다. 그것들은 잠결에도 솔깃한 귀에 투시안으로 세계의 유일한 출구를 향하듯 마음의 심지를 뻣뻣이 세우고 있다. 괭이들은 이 세계의 낯설음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낯선 먹이를 먹고 낯선 잠을 자며 낯선 것들을 스치고 바라보며 그 몸짓과 동작과 음성과 눈빛으로 세계의 낯설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 낯선 동체에 애정을 느낀 사람들이 괭이를 키우며 사람의 ‘자아’와 그 괭이 사이에 영원한 평행의 느낌-서로에게 낯설음과 서로의 외로움-을 사랑하고 있다. 그 두 평행의 사이에 있는 공간은 늘 낯설음으로 채워진다. 그들은 동시에 사람의 ‘자아’와 괭이와 낯설음의 지평, 그 삼중주, 그 영원한 삼행선의 평행을 또한 은연 중에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자아’와 괭이 사이의 좁은 듯 함께 낯선 그 공간의 체감을 사랑하며, 때로 더 나아가 괭이의 직감의 선과 낯선 그 무엇 사이의 아득히 넓은 낯선 공간을 사랑하려 한다. 그러나 그 공간은 깊이 침범되지 않는 진공으로 남아 있다.
사람은 결코 개화하지 않는 잠결의 몽우리 끝에 정중동으로 부스스 일어나 소리 없이 오가는 괭이� 거동을 미동도 없이 가만이 바라본다. 그것들은 낯선 잠결에서 깨어나 무언가를 털어내듯 일어서서 이곳의 낯설음을 떠나 또 다른 저곳의 아득한 낯설음 속을 기웃거리거나 서서히 들어서서 몇 발자욱을 가다 못내 다시 돌아서 온다. 그것들은 보다 좁은 낯선 공간에서 광막한 낯선 공간의 경계를 망설이듯 어슬렁거리고 있다.
괭이들은 사람에 비해 냉정하리만치 낯설음에 대해 직관적이나 사람의 ‘자아’는 신경의 감응성이 진화하여, 많이 자란 나무에 잔가지가 많듯이 그 끝이 세심하고 과민하여 유약한 방사의 지향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괭이들은 무관심의 침묵을 지키고 있고 그 주인은 ‘그리움’의 흔들의자에 의탁하여 괭이의 침묵 너머를 아연히 바라보며 괭이의 눈빛을 닮아간다.
여전히, 삼계를 오가는 걸음걸이에 모눈매를 한 괭이와 그에 대응하는 사람과 모든 살아 있는 심장들에게 세계와 그 안팎은 아연히 낯설고 이 세계에는 스승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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