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상록·에쎄이

엘리엇 킴 수필편: 욕실 속의 행복[Happiness in Bathroom]

imaginerNZ 2007. 5. 2. 05:15

욕실 속의 행복[Happiness in Bathroom]

-엘리엇 킴

 


  삶은 죽음으로 돌아 가거나 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여기에 있었기에 비로소 온전히 여기에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은 알몸이다. 과학문명은 알몸을 로봇화하려 한다. 현재의 시대는 과학이 환경을 로봇화하려는 단계에서 내적인 로봇화의 초기단계에 걸쳐있다. 삶은 알몸이다. 몸과 마음에 걸친 이런저런 옷가지며 장신구들을 모두 벗어 내려놓고 맨몸으로 하는 것이 목욕이다. 모든 것을 벗어놓고 욕실로 들어서라.거기에서 우리는 맨몸에 빈 마음으로 생명의 근원인 물과 만난다.

 

  우리는 항시  우리 자신을 남김없이 온통정화하고 싶어하는 갈증에 목이 말라있다. 우리의 유일한 병명은 이러한 갈증이다. 그것은 생명의 바탕인 원시성의 회복을 갈망하는 증세이며 원시성의 회복만이 유일한 치료제이다. 목욕은 생명의 원시성을 회복시켜주는 신성한 의식이다. 육체의 온갖 분비물과 외부물질에 묻어있는 몸에서 마음에 쌓인 온갖 때까지 말끔히 씻어주는 의식이 바로 목욕이다.

 

  우리는 비생명적이고 비본질적인 물질과 생각에 사로잡힌 포로가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무엇에 의해 포로가 되어있는지 어떤 울타리에 갇혀사는지 모르고 있다. 신께서는 어떤 포로도 어떤 울타리도 만들지 않으셨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체적이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마치 당연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 순응하면서도 정작 사태의 본질에 대해서는 자신이 생소한 타인이기라도 한듯이 외면의 마음짓으로 냉랭하고 무감각하게 살고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런 상황이 우리가 복귀해야할 내적,정신적 원시자연상태[정서적자연]와 외적, 물리적 원시자연상태[생태적자연]를 동시에 가속적으로 무력화하고 파괴하여, 결과적으로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복귀할 가능성을 점점 더 상실하게 하고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우리 자손의 땅이자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려 아끼고 가꾸면서 그 바탕위에서 휴식을 취해야할 아늑한 고향을 정교하면서도 헛된 과학이라는 이공의 총체적인 체계의 힘을 빌려 자발적으로 없애버리고 있다.

 

   현대문명사회에서 우리 인류가 원시자연의 고향을 찾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몇 %미만이다. 행여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외적 자연환경안에서 살아갈 수는 있으나 그 상태에서도 우리의 내적인 자연상태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과자 한봉지를 두고 심리적, 물리적으로 투쟁하는 것이 유아들이다. 물론 협상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힘의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협상에 불과하다. 동시에 협상은 언젠가 깨어지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힘의  균형이 깨어지면 역할의 균형도 깨어지고 만다. 현대자본주의의 특징도 기본적으로 유아들의 세계관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직도 인류는 유아기에 머무르고있다. 어쩌면 영속적으로 인간은 삶의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도 기본적인 욕구에 더 충실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미래지향적으로 판단을 해도 적어도 전자보다는 후자의 가능성이 훨씬 농후하다.    

 

  어떤 면에서 현대문명인의 유일한 도피처는 욕실이다. 그곳에서 만큼은 어떤 문명적인 가감없이 모든 것을 훌훌 다 벗어던진 후에 자아를 마주하고 인류본원의 원시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누려보자. 미학적으로 단순하게 꾸며진 욕실 하나만 있으면 족하다. 욕실에 들어있는 그 사람은 그 시간 속에서 몸과 마음의 때가 다 빠져나가 홀가분한 원시인이면서 동시에 몸과 마음의 제왕이다. 그렇게 되는데 필요한 것은 더운 물이 가득 담긴 달랑 욕조 하나와 공간에 자욱한 증기이다. 그런 황홀한 고독을 즐기는데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소시민이 제왕이 될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간단하다. 행복은 복잡하지도 거창하지도 않고 단순하다. 단순함은 본원적이다. 만일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굳이 마음에 불행의 화근들을 담아두고 그것을 계속 의식하기 때문이리라. 행복은 자신을 즐거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눈물인 듯 그 무엇인 듯 우러나온다

 

   그러니 혼자서 고독의 더운 물에 자신을 담그고 고독의 증기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행복에 잠겨보라.그러면 행복이 화평이며 이전에 생각했던 행복보다 더 본원적인 행복에 잠길 수 있으리라. 결국 행복은 근원의 뿌리에 가닿는 접촉감이며 행복은 우리에게 영원한 모태속의 느낌이기에.

 

[10:24pm, 2/8(Wed), 2006 대치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