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deeply grateful to Mr. G. Chingis for the citation of this article.
부리아트족과 몽골의 부리아트인
Buryats and Mongolian Buryats
Written by G.Chingis
Tuesday, September 07, 2010.
Buryats are the largest Mongolian ethnic group in Siberia. There used to be three administrative units there. The Northern one is Usti Orda Buryat Okrug, which merged with Irkutsk oblast on January 1, 2008. Next is the Republic of Buryatia, which surrounds Lake Baikal. In the Chita region, there was Agiin Buryat Autonomous Okrug, which was merged on March 1, 2008 with Chita oblast, and it became Zabaykalskii Krai.
Interestingly, the Republic of Buryatia was formed in 1923 as the Buryat-Mongol Autonomous Soviet Socialist Republic. In 1958, the word Mongol was removed from the name and it became the Buryat Autonomous Soviet Socialist Republic with the capital located at Ulan Ude.
The name Buryat was mentioned as the name of the forest people for the first time in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possibly 1240).
The Buryats lived along the Angara River and their component, Barga, (Buryats, who now live in Inner Mongolia) appeared both west of Baikal and in northern Buryatia’s Barguzin valley. The land and people were annexed to the Russian state by treaties in 1689 and 1728, when the territories on both sides of Lake Baikal were separated from Mongolia.
After Buryatia was incorporated into Russia, Buryats in the Irkutsk region adopted a more Russian lifestyle, and Buryats in the Chita region were still nomadic. Therefore, most Buryats in the Irkutsk region and Buryatia spoke Russian. Even in socialist times, in their central town Aginsk, most people, including Russians, communicated in the Buryat language.
부리아트족은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몽골계 소수 민족이다. 부리아트족은 세개의 통치 집단이 있다. 북쪽에는 2008년 1월 1일에 이르크츠크 주(oblast)로 편입된 우스티 오르다 부리아트 자치구이다. 다음은 바이칼 호수 주변에 위치한 부리아트 공화국이다. 치타 지역에 2008년 3월 1일 치타주와 합병된 아진 부리아트 자치지역이 있었으며 Zabaykalskii 지방(Krai)이 되었다.
흥미롭게 부리아트공화국은 부리아트 몽골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으로 1923년도에 성립되었다. 1958년 이름에서 몽골이란 단어가 제외되고 울란 우데에 수도를 두고있는 부리아트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부리아트라는 이름은 몽골비밀역사(1240년)에서 숲속의 사람이라고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부리아트족은 앙가라강을 따라서 살았으며 그들의 부족인 바르가(지금은 내몽고에 거주하는 부리아트족)는 바이칼호수의 서쪽과 북부 부리아트의 바르구진 계곡에서 나타난다. 영토와 국민은 1689년과 1728년의 조약에 의해 러시아에 합병되었으며 바이칼 호수의 양쪽에 있는 영토는 몽골로부터 분리되었다.
부리아트가 러시아에 합병된 이후 이르크츠크 지역의 부리아트인은 러시아식 생활양식을 따랐으며 치타지역의 부리아트인은 아직도 유목을 한다. 따라서 이르크츠크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부리아트인과 부리아티아 공화국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사회주의 시절에도 그들의 중심도시인 아진스크에서 러시아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리아트어로 소통하였다.
In terms of religion, most Buryats are followers of the Dalai Lama and they practice Tibetan Buddhism. Even in socialist times, Buryats were sent to Mongolian to study Buddhism at the Mongolian Buddhist School at Gandan monastery. one famous Buryat, Agvan Dorzhiev was even the spiritual adviser to the 13th Dalai Lama. In more recent times, another famous deceased Buryat buddhist was Dashi-Dorzho Itigilov, best known for the lifelike state of his body, which is not subject to decay. Now many Mongolians travel to Buryatia on pilgrimages to see his body.
Many Buryats, such as Jamsrangiin Teseveen, were around at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of the Mongolian People’s Republic and Mongolian science and culture. He also attempted to reconcile a reformed modern Buddhism with communist principles. The current Dalai Lama made the same attempts when he was young.
After Stalin’s purges, many Buddhist Buryats moved to Mongolia to avoid persecution, however they still suffered from that persecution here; well noted in history as the incident of Lhumbee.
The second movement of Buryats to Mongolia was after World War II. This was primarily by Buryat women who married Mongolian students. one old Buryat lady once told me that many Buryat men died in the war and after that, there was no chance to get married.
종교에 관하여 대부분의 부리아트인은 달라이 라마를 추종하며 티벳 불교를 따른다. 사회주의 시절에도 부리아트인은 몽골의 간등사에 있는 몽골 불교대학에 불교를 공부하러 보냈다. 유명한 부리아트인인Agvan Dorzhiev는 13대 달라이 라마의 영적인 조언자이었다. 최근에는 다른 유명한 부리아트족 불교도로 고인이된 Dashi-Dorzho Itigilov은 그의 몸이 부패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처럼 알려졌으며 많은 몽골인들은 부리아트 공화국에 그의 몸을 보러 순례를 한다.
Jamsrangiin Teseveen과 같은 많은 부리아트인은 몽골인민공화국과 몽골 과학과 문화의 창설 초기에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공산주의 원리와 개량된 현대 불교를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도 젊었을 때 이와 같은 동일한 시도를 하였다.
스탈린의 숙청이후 많은 부리아트 불교도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몽골로 이주하였으나 이곳에서도 여전히 역사에 Lhumbee 사건으로 잘 알려진 박해로 인하여 고난을 받았다.
부리아트인이 몽골로 두번째 이동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이는 주로 몽골 학생과 결혼한 부리아트 여인들이다. 한 나이많은 부리아트 여인은 나에게 말하기를 많은 부리아트 남자들은 전쟁에서 사망하였으며 그 후 결혼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During socialist times, it was common for Mongolian Buryats to hide their Buryat origins. Therefore, during those days many Buryats wrote “Khalkha” on their applications for their passports in the space for “origin.” Nevertheless, several Buryat statesmen served during those times such as Dondogiin Tsevegmid, D. Maidar and a few others.
The collapse of socialism brought many Mongolian Buryats to the Mongolian Democratic Party. In the past, Dornod aimag was represented by three Buryat Members of Parliament. Unfortunately, one of them was Mr. S. Zorig, who was the victim of a political murder in the new Democratic Mongolia. Another, Mr. D. Enkhbaatar was sent to jail due to a casino case. Nevertheless, there are currently two prominent Buryats in the Mongolian parliament: Mrs. S. Oyun and Mr. E. Bat Uul.
Two half Buryat politicians are former Prime Minister S. Bayar and former President N. Enkhbayar. However, sharing an ethnicity isn’t enough for these two former leaders as they are well known for disagreeing with each other. It is quite difficult to predict how this battle will end.
Since 1994, there has been an annual cultural festival of Buryats, which is called Altargana. This year it was held in Ulaanbaatar. Buryats have had a very interesting and very often tragic history. But along with other Mongolians, they are helping to build a new modern Mongolia
사회주의 시절 몽골계 부리아트인에게는 그들이 부리아트 종족이라는 것을 숨기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그시절 동안 많은 부리아트인은 여권 신청서의 종족란에 ‘할하’ 라고 기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Dondogiin Tsevegmid, D. Maidar와 몇몇 사람들은 정치가로 일하였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많은 몽골계 부리아트인들이 몽골 민주당에 가입하도록 하였다. 과거에 도르노드 아이막은 세명의 국회의원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들 중 하나인 Zorig는 민주화된 몽골에서 정치적 살인의 희생자였다. 다른 한사람인 Enkhbaatar는 카지노 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 국회에 Oyun 과 Bat Uul이라는 두사람의 유명한 부리아트인이 있다.
부리아트인의 피가 반이 섞인 정치가로는 전 수상이었던 Bayar와 전 대통령이었던 Enkhbayar가 있다. 그러나 전직 지도자 두 사람에게 민족적 배경을 공유하는 것은 그들이 잘알려진대로 서로 반목이 심하여 불가능하다. 이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예상하기가 어렵다.
1994년 이후 Altargana라고 불리는 부리아트인의 연례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에는 울란바타르에서 개최되었다. 부리아트인은 매우 흥미있고 때로는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몽골인들처럼 그들은 새로운 현대화된 몽골을 건설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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