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한몸살점 칸네트 http://www.khaan.net/menu.html "부리아트"는 부여에서 유래했다. 부여>부여아드>부려아드>부리아드>부리아트 몽골에서는 산신굿을 '오보 타히흐'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무속인인 버어'를 초청해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버어는 바이칼을 중심으로 사방전역에 걸쳐 퍼져 있는데 몽골에서는 지역에 따라서 '차아탕 버어', '다르하드 버어', '토와 버어','오양하이 버어', '부리아트 버어'로 나누어 부른다고 한다. 이 중에서 부리아트는 시베리아 지역에 사는 몽골 혈통으로서, 한국의 '부여', '고구려'의 직계 후손이며, 부리아트라는 종족명칭 역시 부여에서 유래한 것이라 하여 더욱 관심이 간다. 중국 25사의 하나인 <북사 실위전> 등에서 부여, 고구려, 몽골, 거란의 언어가 같았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교과서 국사 어느 곳에서도 부여라는 국호가 담고 있는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워본 바가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 부리아트 공화국의 명칭인 부리아트라는 말이 본래 Burte(부텨) 또는 Bured(부려ㄷ)이라는 부리아트 방언에서 유래했다는 그들의 고대신화가 이어져 오고 있고, 그 말은 눈덮힌 시베리아를 지배하는 "파란 눈의 늑대"를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부여라는 명칭 역시 늑대를 뜻하는 부뎌/부렫"을 한자말(비려/부여)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말 부여와 너무나 유사한 몽골식 발음 그리고 부리아트 공화국 동쪽 Sayan Mountains(사얀산)에는 텅큰(Tunken) 계곡이라는 것이 있고, 몽골어나 한국어가 모음조화가 특히 발달한 교착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것 역시 단군(탄군/탄쿤/텅큰)과 발음이 너무 유사하다는 점이 이를 추정케 한다. 물론 만주 퉁구스어로 사슴을 부유(buyu), 부윤(buyun)이라고 하는 탓에, 부여라는 한자말 역시 부유(Buyu)의 대음어(對音語)라고 하는 주장도 있으며, 이 견해 또한 설득력 있는 견해로 보여진다. 한편 퉁구스(Tungus)의 어원이 동호(東胡)에 있다는 견해도 있으니 참고바란다. 여하튼 부리아트족(Buryat)은 북부 몽골족으로서 몽골에서는 서부 몽골족과 북시베리아인들의 후손으로 믿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의 옛 북부여 역시 만주가 아니라 서부 몽골과 시베리아에 위치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56만명에 이르는 부리아트족 중 몽골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단지 6만에 불과하며 현재 바이칼호 주변지역에서 부리아트 자치 공화국을 이루며 살고 있다. (아래 글은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정신세계사)'에서 관련 내용을 인용) 몽골족의 아버지 코리족, 만주의 고구려족 몽골족의 여시조 알랑고아는 몽골비사 8~9절에 의하면 아버지 쪽은 코리(Khori)족의 피를 받고 어머니 쪽은 바르구진고아라고 하여 바락족의 피를 받아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들 부족의 원주지가 모두 바이칼 호수 언저리이다. 특히 아버지 계통인 코리족의 시조 탄생지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메카로 널리 알려진 오히홍 올티릭, 곧 오이홍 알혼섬[오이홍 섬을 러시안인들이 올콘 섬으로 바꾸어 놓았다. 17세기 후반기 에르마크가 시베리아를 정복한 이래로 러시안인들에 의한 지명변경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다]에 있다. 바로 그곳에서 황소가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와 결혼하여 코리족의 시조 11형제를 낳았다고 한다. 그 섬은 부르한산이 있고 자작나무가 많이 있는 곳이며 아주 중요한 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설은 만주족의 시조 아이신 쟈오로[愛新覺羅]가 탄생하는 백두산의 불함산(不咸山) 봉우리로, 금강산에 오면 '나무꾼과 선녀' 형태로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코리족의 시조 탄생지인 오이홍 섬이 바이칼호 안의 서중부에 있는데, 이들은 그 후 동몽골 쪽으로 이동해 부이르노르 부근에서 분파해 한 계파는 서진하여 몽골초원으로 나와서 몽골족을 이루고 다른 한 계파는 동진하여 만주와 한반도로 나와서 고구려족 곧 '고리족(槁離族)'을 이루었던 것은 아닐까? 1992년 동몽골 대탐사 과정에서 실제로 그런 구비전승과 의례 및 고구려 카한의 석인상이라고 하는 유물이 부이르노르 언저리에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몽골과 고구려가 만주와 동몽골을 중심으로 발전해서인지 1921년 혁명 이후 근대 교육을 받기 전에는 이 지역 사람들이 고올리[高麗]라는 이름만 썼을 뿐 솔롱고스(Solongos)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논형(論衡), 후한서(後漢書)와 양서(梁書) 등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을 북이(北夷)고리국인(槁離國人)이라고 썼다. 매우 가당치 않은 가설일 수도 있겠지만 고리(槁離)는 코리(Khori)와, 부리야트는 북부여와 연관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부리야트라는 이름도 오랜 역사 과정에서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정착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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