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DNA를 찾아서>대륙 호령한 기마민족…‘노마드의 피’는 지금 더 뜨겁다
2011-01-06 10:54
역사속의 한민족
고조선 가림토 문자, 한글과 비슷
알파벳보다 1000년 빨라
안착 않고 여러문명 접촉
대처능력·일사분란함 배양
지난 2004년 여름, 중국 발해만 연안과 네이멍구(內蒙古),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한국, 중국, 러시아 사학계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주로 한반도에서 광범위하게 출토되던 빗살무늬토기가 중국 내륙 깊숙한 곳과 한반도 북쪽 한참 떨어진 곳에 발견됐다. 한민족이 동북대륙을 지배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시베리아에서 몽골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졌다는 중국 측 학설이 폐기되는 상황이었다. 제작시기가 최고 기원전 6000년까지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빗살무늬토기가 중국학계가 주장하던 기존 루트의 한 중간 경로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앞서 중국이 ‘시조마을’ 또는 ‘중화 제1촌’이라 자랑하는 창하이에서도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됐다. 한민족의 활동무대인 랴오시(遼西)와 랴오둥(遼東)과 맞닿은 지점이다.
중국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한국이 6ㆍ25 전후복구로 정신없을 1955년 중국 랴오허(遼河) 일대에서 발견된 홍산문화(紅山文化)였다. 이 지역은 상고사에서 한민족의 활동무대이다. 중국은 만리장성 이남은 선진문화로, 성 이북을 후진문화로 보고 역사를 기술해왔지만, 홍산유적 발굴결과, 기원전 3500~3000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검이 발견된 것이다. 중원이 신석기시대를 벗지 못하던 시기다. 특히 이곳에서는 여러 나라 사학계가 ‘한민족의 것’으로 의견일치를 본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동검, 다뉴세문경 등이 대량으로 발굴됐다. 한민족의 활동무대는 중국 정부와 사학계가 틀어막기에 너무도 크고 넓었으며, 사료로서 입증되고 만 것이다. 국제 사학계에서도 한민족의 문명이 세계 최고(最古)일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나온 계기이기도 했다.
넓디넓은 활동무대에서 이동수단은 말(馬)이다. 한민족을 ‘기마민족’으로 부르는 이유다.
한국의 역사를 두만강, 백두산 이남으로 가둬버리려는 식민사관 학자의 주장을 배제한 상태에서 역사가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한민족의 발원지는 대체로 ▷바이칼호로 보는 견해 ▷황하 남쪽의 화족과 대립했던 강 북쪽의 동이족으로 보는 견해 ▷키르기스스탄과 중국으로 이어지는 천산산맥, 또는 알타이 산맥으로 보는 견해 등으로 나뉜다. 어느 학설이 정설이라 할 수 없으나 대체로 말을 타고 목축을 하는 유목민이며 중앙아시아에서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황하 이북 지역을 활동무대로 삼았을 것이라는 점은 일치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우리 민족이라고 했던 여진은 ‘고려’와 발해의 별칭인 ‘진국’의 합성어이다.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초기 나라이름을 ‘金’으로 정한 이유가 ‘김의 나라’ 즉 한민족이라는 뜻을 담았다는 학설도 있다.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는 “고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을 영토로 하고 수많은 거수국(제후국 연방) 체제였다”고 분석했다.
‘광개토(廣開土)’라는 임금의 이름에서 보여지듯 광역 영토를 관리하면서 수많은 제후국 간의 문화접변과 새로운 문화유산의 창출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거수국이 통일된 표기를 하기 위한 노력도 나타난다. 오늘날 한글을 쏙 빼닮은 ‘가림토’문자의 창제이다. 조선 세종조 집현전 학사인 최만리도 “한글은 옛글자를 본뜻 것”이라고 했다. 페니키아의 알파벳보다 무려 1000년 빠르다. 말(馬)을 통한 ‘빠른 교통’ 못지않게 수많은 제후국 간 커뮤니케이션 수단도 절실했고, 그만큼 새 문물의 탄생은 빨랐던 것이다.
아울러 안착하지 않고 여러 문명을 접하면서 얻은 지식의 축적 및 응용력,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한 대처능력, 일사불란한 노마드(nomadㆍ유목민) 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응집력 등이 배양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사학자들을 만나면서 한때 한국인의 DNA를 탐구했던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여러 역사서와 사학자들을 접해본 결과, 한민족에는 기마유목 민족의 DNA가 잠재돼 있다”면서 “신속한 목표추구에 따른 경쟁친화적 문화, 강한 성취동기, 대외지향성 등을 코리안 DNA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알파벳보다 1000년 빨라
안착 않고 여러문명 접촉
대처능력·일사분란함 배양
지난 2004년 여름, 중국 발해만 연안과 네이멍구(內蒙古),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한국, 중국, 러시아 사학계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주로 한반도에서 광범위하게 출토되던 빗살무늬토기가 중국 내륙 깊숙한 곳과 한반도 북쪽 한참 떨어진 곳에 발견됐다. 한민족이 동북대륙을 지배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시베리아에서 몽골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졌다는 중국 측 학설이 폐기되는 상황이었다. 제작시기가 최고 기원전 6000년까지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빗살무늬토기가 중국학계가 주장하던 기존 루트의 한 중간 경로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앞서 중국이 ‘시조마을’ 또는 ‘중화 제1촌’이라 자랑하는 창하이에서도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됐다. 한민족의 활동무대인 랴오시(遼西)와 랴오둥(遼東)과 맞닿은 지점이다.
역사속에서 한민족은 중앙아시아에서 한반도까지를 활동무대로 한‘ 기마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태왕사신기’의 한장면. |
넓디넓은 활동무대에서 이동수단은 말(馬)이다. 한민족을 ‘기마민족’으로 부르는 이유다.
한국의 역사를 두만강, 백두산 이남으로 가둬버리려는 식민사관 학자의 주장을 배제한 상태에서 역사가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한민족의 발원지는 대체로 ▷바이칼호로 보는 견해 ▷황하 남쪽의 화족과 대립했던 강 북쪽의 동이족으로 보는 견해 ▷키르기스스탄과 중국으로 이어지는 천산산맥, 또는 알타이 산맥으로 보는 견해 등으로 나뉜다. 어느 학설이 정설이라 할 수 없으나 대체로 말을 타고 목축을 하는 유목민이며 중앙아시아에서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황하 이북 지역을 활동무대로 삼았을 것이라는 점은 일치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우리 민족이라고 했던 여진은 ‘고려’와 발해의 별칭인 ‘진국’의 합성어이다.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초기 나라이름을 ‘金’으로 정한 이유가 ‘김의 나라’ 즉 한민족이라는 뜻을 담았다는 학설도 있다.
‘광개토(廣開土)’라는 임금의 이름에서 보여지듯 광역 영토를 관리하면서 수많은 제후국 간의 문화접변과 새로운 문화유산의 창출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거수국이 통일된 표기를 하기 위한 노력도 나타난다. 오늘날 한글을 쏙 빼닮은 ‘가림토’문자의 창제이다. 조선 세종조 집현전 학사인 최만리도 “한글은 옛글자를 본뜻 것”이라고 했다. 페니키아의 알파벳보다 무려 1000년 빠르다. 말(馬)을 통한 ‘빠른 교통’ 못지않게 수많은 제후국 간 커뮤니케이션 수단도 절실했고, 그만큼 새 문물의 탄생은 빨랐던 것이다.
아울러 안착하지 않고 여러 문명을 접하면서 얻은 지식의 축적 및 응용력,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한 대처능력, 일사불란한 노마드(nomadㆍ유목민) 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응집력 등이 배양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사학자들을 만나면서 한때 한국인의 DNA를 탐구했던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여러 역사서와 사학자들을 접해본 결과, 한민족에는 기마유목 민족의 DNA가 잠재돼 있다”면서 “신속한 목표추구에 따른 경쟁친화적 문화, 강한 성취동기, 대외지향성 등을 코리안 DNA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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