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필집(미셀러니)

가을을 어떤 계절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수정

imaginerNZ 2009. 11. 11. 02:34

 

 

 

 

 

가을을 어떤 계절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수정

     (What Season Can We Name Autumn?)

 

   이 물음에 사람들은 관심이나 형편에 따라 천고마비의 계절, 수확과 결실의 계절, 단풍과 낙엽의 계절, 고독과 우수의 계절, 여행의 계절, 공부와 독서의 계절, 사색의 계절, 김장철, 산행철 등등으로 답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사랑의 계절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가을이 우수에 빠져들기 쉬운 계절이라 그런 듯하다.  옆구리가 휑한 느낌으로 고독감에 쓸쓸히 잠겨 있는 누군가의 심정과 그 사람을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작용하여 서로에게 기대고 싶어하는데서 사랑이 이루어진다. 쓸쓸한 동병상련이 사랑을 낳기 쉬우니 '올가을에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렇듯 가을은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우수에 잠긴 어느 거리에서 싱그러운 사랑의 새싹을 틔우기도 한다. 식생이 시들어 지는 가을에 사랑이 싹튼다는 점에서 가을은 모순의 계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위에 나열한 가을이라는 계절을 일컫는 말들만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옆구리가 덜 채워진 느낌이 든다. 과연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낙엽이 지는 가을길의 벤치 위에 앉아 있다고 하자. 그때 우연히 낙엽 한 잎이 바람에 실려 내 무릎에 의문처럼 살포시 내려와 않는다면 나는 다소 장황한 어투로 가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내심 중얼거리게 될 듯하다. 가을은 생명이 움트는 봄을 지나 그 생명이 성장의 절정에 도달하는 여름을 지나 마침내 생명이 결실하면서 동시에 쇠락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단순히 사계절 중에 어느 한 계절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을은 지나온 생명의 발생과 성장의 과정을 아우르며 그 결실과 새로운 부활의 씨앗들,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품어안는 계절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가을은 다음해에 새생명이 움트기까지 시련과 인고의 시간인 혹한의 겨울을 예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렇듯 가을은 살아 있는 것들의 전체상에 대해 되돌아 보게 한다. 가을은 삶이 시작해서 끝에 이르르고, 끝을 맺으면서 거기에 새로운 시작이 잉태되어 있음을 알려 준다.  이러한 자연의 변전 속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 대해 하나의 커다란 느낌을 깨우치는 계절이 가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느낌을 간직하며 이 가을을 나게 되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도 부러우면서 필시 스스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참행복을 가꿀 줄 아는 마음이 크고 넉넉한 사람이리라.그 점에서 가을은 스스로를 포함하고 있는 사계절과 가을에 대해 일컫는 모든 말들이 함께 더불어 공존하는 계절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스쳐 지나가던 만물의 영장 중에 어떤 이가 불쑥 나에게 가을에 대해 묻는다면 가을은 '명상의 계절'이라 짧게 답하고 싶다. 모든 것에 대해 하나의 깨우침에 도달하기 위해 하는 수행이 명상이니 그리 말하고 싶다. 가을은 어느덧 깊어 가고 온산에 단풍이 물들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산행철이 한창에 접어들고 있다. 맑은 공기와 산행이 육신에 건강과 활력을 주듯이 명상은 우리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채 메말라 가는 영혼의 샘터에 맑은 옹달샘물의 생기를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명상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연과 그 안에 든 모든 생명을 하나의 전체로 깨달아 우주에 한데 젖어들게 해 준다.

 

   분주한 일상생활로 바쁜 가운데 이 두 가지-산행(또는 여행)과  명상- 중에 굳이 어느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 이 두 가지를 엇고루 혹은 틈을 내서 실천한다면 우리 마음이 겸손과 여유를 얻으면서  동시에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겨울을 앞둔 계절의 스산한 바람을 맞고 있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적으나마 사랑의 손길을 한 번씩 줄 수 있는 가을이면 더 아름답고 보람 있는 계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더해 본다. 자신의 마음을 꽃이라 여기고 맑고 신선한 물을 주어 차분한 생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명상이며 물의 생기를 흠뻑 머금은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역시나 맑고 고운 물을 흘려주는 것은 봉사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어 모든 마음의 꽃들이 상생의 물기를 가득 머금고 더불어 활짝 피어나는 세상은 진정 아름답지 않을까? 앞으로 가을을 몇 번 더 맞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준 고마운 가을에 잠겨 그런 세상을 떠올려 본다. 

가을바람에 또 한 잎의 낙엽이 내 무릎 위에 자연의 선물로 살포시 내려 앉고 나는 감사히 침묵한다.     

(200710200442 엘리엇 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