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한일관계사

[스크랩] 벼농사, 금속문명도 일본에 가르쳐준 한국

imaginerNZ 2007. 10. 29. 03:47

 

 

 

[밝은 앞날 되시기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벼농사, 금속문명도 일본에 가르쳐준 한국]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출토된 [기원전 3세기~기원 후 3세기] 유물들.  

맨 윗줄부터 덧띠토기와 한국식동검, 쇠뿔모양 손잡이 항아리.

- 사진 국립박물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은 내내 석기시대였다가 (조몽시대)

약 2천4백년전이 되서야 [어떤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와서

벼농사와 금속문명을 가르쳐준다.

그것이 [야요이문명]이라는 것인데

일본에 와서 벼농사와 금속문명을 가르쳐준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증거는 숱하게 많은데 (고인돌 등)

유전자분석으로도 그게 확인이 되었다는 기사.

-------------------------------------------------

 

[매일경제 2003-06-24]

 

기원 전 5~4세기 벼농사 도입과 청동기 전래로 상징되는 일본의 '야요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DNA가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교도통신은 23일 "돗토리대 의학부 이노우에 다카오 교수팀이

'야요이 시대' 유적인 돗토리현 아오야가미 절터에서 출토된 야요이인 유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 배열을 분석한 결과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 보도했다.

연구팀은 야요이인 유골 7점에서 DNA를 추출하는데 성공한 뒤

이 중 4점에서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 배열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이들이 한국의 현대인 및 혼슈의 일본인과 동일한 그룹에 속하는 것을 밝혀 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로 이어지는데 이번에 분석된 4점은

모두 모계를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아오야가미 절터 유적에는 적어도 서로 다른 4개 모계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영필 기자>

 

기사출처-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9&article_id=0000300477&section_id=104&menu_id=104

 

( 주: '야요이(彌生)시대' 는 일본 최초의 쌀농사, 청동기시대.

즉 위의 이야기는

2천 몇백년전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청동기 벼농사문명을 전해줬다는 얘기.

그전 일본의 토착인들이 내내 [석기시대]로 살고 있었고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문명을 일으켰는데

그 유적지 중에 하나가 [돗토리현 청곡사(靑谷上) 절터]인데

이곳의 유적이 일본 최초의 벼농사 청동기 유적이고

그 시대가 2천 4백년 전 정도인데

그 유적의 주인공들이 한국에서 건너간 한국인들이라는 것.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일본보다 최소한 수천년 빠름.

고조선이전의 배달국 문명(환웅 문명)인 만주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도 천년 이상 빠름.

그리하여 중국당국이 충격받고 배달국, 고조선, 고구려 역사의 납치를 시도하고 있음.

하지만 모든 것이 결국 사필귀정.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마한(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 즉 '야요이(彌生)인' 들의 토기

한반도 고대토기와 똑같은 것들이 발견된다.

 



2천 수백년전에 한반도에서 문명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

즉 '야요이(彌生)인'들의 무덤.

돌을 쌓아서 무덤을 만드는 것은 고대한국 특유의 풍습.

중국에는 이런 풍습이 없었다.

 

 

 

영원한 맑은 세상을 위하여 - 대한국인 안중근

 

 

 

[꿈은 이루어진다]

[밝은 앞날 되시기를]

 

 

 

 

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