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하는 삶/구도행

'화두'는 영어로 무엇일까?

imaginerNZ 2007. 10. 16. 02:56

‘화두’의 올바른 영역은 어떤 것일까?

‘head speech’(버스웰), ‘head phrase’(뮬러), ‘questioning’(박성배), ‘big doubt’(숭산 스님) 등 현재까지 나온 번역서에만도 20여 가지 넘는 각기 다른 표현들이 등장한다. 문제는 이처럼 제각기 다르게 영역된 단어들을 보고 외국인들이 ‘화두’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불교계에서는 ‘한국불교 세계화’를 모토로 각종 번역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번역물이 나오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동국대가 1997년부터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와 함께 공동으로 추진해온 ‘원효전서 영역(英譯)사업’은 올해 8월에야 겨우 첫 성과물을 선보였다. 송석구 전 총장 대에 시작된 영역사업은 총장이 교체되면서 예산지원 중단, 인력부족 등의 문제에 봉착했고, 결국 3년 후를 기약했던 이 사업은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첫 번역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처럼 긴 시간이 소요된 가장 큰 이유는 원효의 저술 중 텍스트로 활용할 수 있는 표준 한글본이 없는데다 각 저술마다 사용되는 불교용어가 다르다보니 공통 용어를 선택하고 표준안을 마련하는 등 엄청난 기초 작업이 필요했다는 것이 한국 측 디렉터인 김용표 동국대 교수의 설명이다. 그나마 10년 만에 겨우 『금강삼매경론』이 영역될 수 있었던 것은 10년 전 처음 시작할 당시에 상당한 기초자금이 투입됐고 세계최고 수준의 해외학자들이 직접 번역·역주작업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최근 A연구소에서 ‘세계화를 겨냥해’ 처음 발간한 영문 잡지는 해외학자들로부터 ‘이해 불능’이라는 참담한 평가를 받았다. A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예산부족으로 값이 싼 용역을 들여 번역을 했는데, 번역자들 대부분이 초벌번역 수준인데다 불교학도 거의 모르는 상태였다”며 “해외 불교영문사전의 용례들을 취합해 번역 업체에 전달했지만 불교학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영문법에는 맞지만 내용은 불교학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올해 1월 조계종이 문화관광부의 예산 30억원 지원을 받고 추진하기 시작한 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사업 또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진행 중인 한문경전의 한글번역작업이 끝나는 대로 영역작업에 착수해야 하는데, 번역진 확보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간행위원은 “불교학 전공자들 중에는 불경을 영문으로 번역할 만한 인력이 없고, 번역 실력을 갖춘 이 중에는 불교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 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사업팀에서는 지금이라도 불교학 전공자들을 통역대학원에 보내 석사과정을 수료시킨 다음 번역작업에 투입시키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현실은 수십 년 간 방치돼온 불교 역경사업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드러낸 ‘예정된 결과’다. 지금까지 ‘불교용어 표준화 작업’조차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영문으로 옮기기란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번역에 활용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어휘를 갖춘 ‘한영불교사전’이 없다는 점 또한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대부분 한문 경전을 한글로 번역해 다시 영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원래 문맥과는 동떨어진 표현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불교학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영어만 잘하는 번역자가 작업했을 경우 이 같은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현재의 상태로는 수십억의 예산을 들여 한국불교 관련서적들을 영역한다고 해도 활용될 수 없는 새로운 ‘불교 공해물’만 양산하는 꼴이라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글은 법보신문(탁효정 기자)에서 발췌했습니다.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