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4. 3절 추모시 -2차 수정
해마다 4월 3일이면 나의 피는 의분에 끓어 오른다.
그날이 되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언제나 나는 피가 끓어 오르는 심장을
어김없이 지켜야 할 약속으로 하나씩 토해 낸다.
진정한 정의가 무엇이며
진정한 사람사랑이 무엇이며
진정한 뉘우침이 무엇이며
진정한 용서가 무엇이며
진정한 화해가 무엇인지
아직도 채 밝혀지지 않아
만방에 만세에 명명백백히 드러나고 있지 않다.
아무것도 몰랐던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 거짓으로 불러 모아
사람으로 태어나 차마 두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잔혹한 학살과 고문과 투옥을 지시하고 행한 자들과
우리 탐라의 아이들과 어른들의 숱한 피 묻힌 손들은
다들 어디에서 활짝 편 채 살고 있는가?
숨겨지고 억압된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고
과연 인간세상은 선하며 아름답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으랴?
죽은 원혼들의 마지막 절규가
한라산정에 이는 안개구름에 휩싸이다
기어이,
기어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
어릴 적 천둥벌거숭이 친구들이며
정겹게 돕고 의지하며 지냈던 웃음 띤 이웃들이며
이 세상에 남겨진 채 태왁처럼 가슴 속에 속 다 파인 후손들의
생혼을 에이고
옹기종기 모여사는 마을의 이 마당 저 지붕 위에
그 정낭 넘어 굼돌담길 따라 여기저기 올래를 지나며
죄다 남김없이 고루 스치고 어루만지어
마침내 탐라의 해바다에 메아리쳐 나리며
곶곶에서 끊임없이 웅혼한 파도를 들어올려 불멸의 현을 켜고 있으니
뉘우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그날이 오기까지
제주도의 밤은 낮보다 더 휘황히 밝으리며
서로의 가슴 저릴 그때가 오기까지
이몸이 죽은 후에라도
해마다 4월 3일이 오면
나는 끓어오르는 피물결의 혈장을 타고
붉은 심장을 하나씩 토해 내리라
진심으로 뉘우치고
진정으로 용서하고
진실로 화해하여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사는 이웃사촌이 되는 그날까지
일만번 고쳐 죽어도
맹세에 터질 듯한 검붉은 심장을
입으로 애를 낳듯
나는 해마다 하나씩 약속으로 토해 내리라.
(200709100723 대치동에서 엘리엇 킴)
'엘리엇 킴 작품방 > 인생과 사랑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도 4. 3절 추모시 -수정 (0) | 2007.10.09 |
---|---|
네 곁에서 [By Thee] (0) | 2007.10.08 |
‘목련’ 이라는 이름의 어떤 떨림 (0) | 2007.10.02 |
사랑의 계절(Season of Love) (0) | 2007.09.17 |
어떤 짐승의 이름 (0) | 2007.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