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나타난 신라인 - 2
우리는 지난 장에서 스페인의 지명에 Silla와 Sila가 있음을 알았다. 또 이들 지명이 Corea란 지명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도 존재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알다시피 라틴아메리카는 19C에 접어들기까지 수백 년간 스페인의 식민통치 하에 있었는데, 이들 지명들은 이 시기에 스페인에서 라틴아메리카로 이입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신대륙에서 수도 없이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의 라틴 아메리카에서만이 아니라, 북 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독자들은 미국의 뉴욕(New York)이 단지 뉴(New)가 붙은 것일 뿐, 영국의 York지명이 이입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Corea 지명의 경우, 필자가 스페인 지도에서 Corea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필자는 이 지명 역시 분명 스페인에 존재할 것이라 확신한다. 비록 아주 작은 규모의 지명일지라도 말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 Silla, Sila, Corea란 이들 지명들은 지중해 연안에서 성姓씨로도 존재하고 있었다.
상당수 독자들은 1990년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되었던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방의 코레아Corea 성씨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의 알비(Albi) 마을이란 곳에 Corea 성씨를 지닌 22가구 80여 명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우리 언론에선 이들이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의 후예라 간주하여, Corea 씨족의 대표를 한국에 초청하는 등 야단을 떤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의 유전자 검사 결과, 이들 Corea 성씨와 한국인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남으로서 한바탕의 해프닝에 그치고 말았다.
이 Corea 성씨에 대해, 당시 부산대학교 사학과 곽차섭 교수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이 고대 그리스의 영향 하에 있었으므로, 고대 그리스어 ‘코레아스’에서 유래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견해를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와 달리 Corea 성씨의 기원이 스페인이라 확신한다. 필자의 추측으론 곽차섭 교수가 스페인의 Corea 성씨, 그리고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Corea 지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음에 틀림없는 것 같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탈리아엔 Silla와 Sila의 두 지명도 모두 존재하는데, 그 유래는 이들 지명이 Corea 성씨와 함께 스페인어 언어권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16C에 이르러 해양대국이자, 세계제국으로 성장한 스페인이 지중해의 여러 도서島嶼 및 이탈리아 남부를 지배한 데서 비롯되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필자는 Silla와, Sila, Corea가 우리 역사속의 신라新羅, 고려高麗와 관련 있다고 판단하는데, 현재까지 연구결과 적어도 Silla와 Sila는 분명히 그렇다고 확신한다.
우선 Silla와 Sila는 발음상으로 신라와 같은 소리를 낸다. 물론 Corea도 예외는 아니다, Corea의 -a는 라틴어에 따르는 일반적 접미사임을 전제할 때, 어디까지나 원음은 Core이다.
그렇다고 단지 발음상에 근거하여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Silla란 어휘에 대해서 알아보자. 스페인의 국어인 카스텔라노(카스티야어)에서 silla의 뜻은 아래와 같다.
silla: 명사로서, (현대) 의자.
역경, 불행, 불운.
(중세) 여왕 또는 귀빈이 앉던 의자.
동사로서, 놀라게 하다. 감정적으로 쇼크를 주다. 크게 동요시키다.
* (현대 멕시코에서) 의자. 말이나 자전거의 안장.
그 외 sila나 corea에 대한 어휘는 스페인의 어떤 언어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위의 내용만으로 silla가 바다와 관련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지중해 연안의 여타 언어들에 주목했다.
그러다, 사르디나 섬과 시칠리아 섬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에밀리오-로마그놀로어語에서 의미 있는 발견을 하게 되었다. 사르디나 섬과 시칠리아 섬은 현재 이탈리아령領이지만 과거 한동안 스페인의 지배 하에 놓였던 곳인데, 그곳의 언어에서 silla의 뜻은 ‘바다 파’, 속어론 ‘바다 사람’이란 뜻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앞에서 ‘스페인에 나타난 신라인’의 내용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확인한 sila의 뜻으로 다시 한번 앞의 내용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 여기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랍어로 시선을 돌려보자. 스페인의 Silla,와 Sila 지명들이 우리의 신라와 관련 있다면, 틀림없이 아랍의 언어나 지명들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로서 아랍은 한반도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지리적 위치에다, 또 중세 시기까지 신라에 대한 많은 문헌을 남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랜 시기에 걸쳐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는 동안 아랍문화는 스페인문화의 젖줄 역할을 했던 것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놀랍게도 필자의 추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비록 자신의 고유한 문자인 아랍문자로 표기하고 있지만, 우리의 신라와 발음이 같은 어휘가 언어와 지명, 모두에 나타난 것이다.
아래는 아랍에미리트 연방의 영문판 지도이다.
▲ UAE 지도, 왼쪽 끝에 Sila가 보인다. Sila는 현재 작은 항구로서, Sila 반도에 위치해 있다. 빨간 테두리 표시는 필자. [자료사진 - 서현우] | ||
위에서 보듯이 항구로서 Sila가 나타난다.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의 지인이 필자에게 알려온 바에 의하면, 이것 외에도 sila나 silla, silah로 발음되는 지명이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하여, 이들의 아랍어 뜻은 ‘~을 취하다,’와 ‘상품, 물건’이란 것이다. 필자로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아랍 표준어인지, 아랍에미리트에서만 쓰는 방언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음)
아래는 신라에 대해 남긴 아랍의 문헌들인데, 여기선 간략히 나열하고 자세한 내용은 다른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슈라이만(Sulaiman)의 ‘중국과 인도 소식’(851년)
알 마소디(Al-Masou야, ?~965)의 ‘황금초원과 보석광’
이븐 쿠르다지바(Ibn Khurdadhibah, 820~912)의 ‘제諸도로 및 제諸왕국지’(845년)
알 마끄디시(Al-Maqdisi)의 ‘창세와 역사서’(966년)
알 이드리시(Al-Idrsi, 1100~1166)의 ‘천애횡단을 갈망하는 자의 산책’(1154년)
위의 문헌들의 신라에 대한 공통점은 놀랍게도 신라를 ‘동방의 이상향’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다, 당시 장보고로 상징되는 신라의 해양활동으로 볼 때 위의 Sila항과 ‘상품, 물건’이란 뜻의 아랍어 sila(혹은 silla, silah)는 분명 우리 신라의 자취임에 틀림없다고 보아진다.
더하여 아랍어의 영향을 가득 담고 있다는 스와힐리어語의 sila 또한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스와힐리어는 오늘날의 소말리아에서 탄자니아에 이르는 아프리카 동부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인데, 스와힐리어의 sila에 대한 뜻은 ‘배에 물 퍼내는 사람, 양동이, 물통’ 등이다.
그 언젠가 신라의 선박이 그곳 연안에서 침수된 것인가? 하여튼 그런 상상을 일으키게 하는 뜻이다.
10C 초의 어떤 아랍 문헌엔 극동지역의 터어키계 인간들이 상아와 해구갑 등을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해안을 들락거렸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신라선이 아프리카에까지 이른 것이라 추정되기도 한다. (필자는 신라가 망한 후의 상당한 시간에 걸쳐 극동의 해상활동인을 아랍에선 여전히 신라인이라 불렀다고 본다.)
참고로 인도양과 동남아시아엔 Sila, 또는 Sila-란 접두어가 포함된 지명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열거해 보면 스리랑카(3곳), 태국(2곳), 필리핀(6곳), 인도네시아(10여 곳) 등인데, 심지어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도 한곳이 존재한다.
이들 지명에 대해선 이 장에서 필자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고,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은 다음 장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자.
지명에 이어 이번엔 sila란 어휘를 갖고 있는 여타 언어와 그 뜻을 소개해 본다.
필리핀: (7개 언어 중의 국어인 타갈로그어를 포함한 4개 언어에서) 그들, 그 사람들.
말레이시아어: 요청, 청구請求.
인도네시아어: 토대, 기반 바탕, 덕목. (힌두어와 관련 있음)
통가어: 역병, 골칫거리.
이누이트 에스키모어: 하늘, 세상을 둘러싼 기운, 기후.
통가어의 뜻은 마치 18C에 백인이 남태평양에 진출하면서 가져간 바이러스에 아무런 면역이 없던 남태평양 주민들의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이제 독자들은 필자가 앞장에서 ‘스페인에 나타난 신라인’이라 한 데에 대해 일정 정도나마 수긍할 것이다. 더하여 그곳의 Silla나 Sila가 우리역사의 신라와 관련 있다면 Corea 역시 분명 그럴 것이다.
처음에 필자는 스페인의 Silla(혹은 Sila) 지명들이 거저 아랍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가정했다. 즉 우리역사의 ‘신라’가 아랍을 거쳐 스페인에 스며든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그러던 필자가 ‘스페인에 나타난 신라인’이라고, 즉 신라인이 스페인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을 달리한 이유는 결정적인 근거에 힘입었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자연과학의 결론이었다. 자연과학은 실증의 학문이다. 오늘날의 역사학은 방계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그 지평을 한층 넓혀왔다. 고작 문헌의 해석에 맴돌던 역사학이 이제 고고학뿐만 아니라, 유전학, 고천문학, 고기상학 등의 도움으로 실증 범위를 한층 확장해온 것이다.
‘스페인에 나타난 신라인’은 바로 이러한 자연과학에서 유전학의 성과에 의해 귀결된 것이다. 앞서 이탈리아 알비 마을의 Corea 성씨가 우리 한국인과 혈연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힌 것도 유전학이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유전학의 어떤 내용에 의해 ‘스페인에 나타난 신라인’이 성립될 수 있었는가?
바로 면역유전학의 ‘인간백혈구 항원유전자(HLA B-59)’의 분석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되는 인간유전자는 약 2~3만 개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중에서 오늘날의 한국인을 결정짓는 가장 특징적 유전자가 바로 위 HLA B-59인 것이다. 이 유전자의 분포 지역은 한반도와 남만주(중국 북부 일부), 일본, 중국남부 일대, 인도 수라스트란 반도(구자라트 주州) 등인데, 특이한 점은 이 외에 스페인과 북미대륙에 극소수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아프리카인이나, 유럽 백인에서는 이 유전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유럽인 중에 유독 스페인 사람에게서만 극소수로 나타난다는 것이다.(2003.12.2 제13차 국제학술 및 워크샵의 최종 updated 자료)
과학이 가져다준 이러한 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스페인에 나타난 신라인’이란 필자의 결론은 이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Silla와 Sila 지명(그리고 Corea)에다, 아프리카 동서해안선이 나타난 동양의 고지도,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서 출현하기 시작한 수수께끼의 유럽 고지도,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숨겨진 비밀, 그리고 HLA B-59 등의 여러 정황과 증거들이야말로 그러한 결과 외에 달리 생각되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필자는 확신한다.
덧붙여 이탈리아 알비 마을의 Corea씨 혈족들은 비록 혈연적으로 한반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라도 과거 어느 시점에서 ‘스페인의 신라인 혹은 고려인’과 문화적 유전자를 공유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사실 역사의 계승은 혈연만이 아니라, 문화적 요소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집단의 정체성, 정신적 지향성, 사유체계 등이 그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여러 민족이 정치적으로 하나의 집단을 이룬 뒤 혈연, 문화적으로 용해되어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는가 하면, 또 그 역으로 하나의 민족이 어느 시점에서 분화되어 오랜 시기가 지나 각기 정체성을 뚜렷이 달리함으로서 다른 민족으로 발전해간 예를 우리는 역사에서 허다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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