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시
어느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걸음 따라 먼 길을 걷다
뉘집 조그만 정원의 목책 너머로
장미꽃이 한 송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지.
문득 마주친 그 모습
온갖 사연도 한 세월도 잊은 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네.
한참이 되기 직전에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가
장미향을 맡아 보았지.
알 수 없는 현기에 빠졌을 때
세상은 희부옇도록 아름다워
그곳에서는 더 이상 돌아설 자리가 없었지.
오직 하나뿐인 혼을 향해
바싹 다가선 나는
억누를 수 없는 절열함에
장미향기의 춤에 취해
꽃잎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순간에,
장미꽃을 두손 모아
받쳐 들려다
그만!
장미의 가시에
찔리고
말았네.
오, 릴케여!
장미가시의 독이 이 연약한 숨을 지우기 전에
형상의 변주가 아닌 화합의 완주를-
태연한 핏빛 먼동 속의
거대한 심혜안이여!
생명이 사랑하고 노래하고 축제하는 그 여명의 열정 한가운데
묵상하는 하나, 둘, 셋,...
혼의 나래짓을 연습하고 있는
짙묵어가는 결가부좌의 그림자들이여,
제 그림자로부터 멀어져 갈 마지막 비상의 깃을 솟우소서!
아득히 멀어져 가는 메아리로
일체가 사라져
온 우주를 휘돌아
겁의 한귀퉁이에 붕새의 깃을 나려
비우고 넘치지 않아
다시금 제 품에 하나로 들기까지
한 송이 장미는 목숨으로 말없이 보라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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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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