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필집(미셀러니)

한국의 부모님들에게 고함(수필)

imaginerNZ 2007. 5. 22. 17:50

 

                                아가에게 '아'하고 있는 엄마      

 


 

한국의 부모님들에게 고함

                            -엘리엇 M 킴-

 

  한국의 청소년들은 쉰 세대 혐오증을 가지고 있고 한국의 기성세대는 청소년 공포증을 누구나 조금씩 느끼거나 가지고 있다. 우리가 속한 역사시대를 현재 기준으로 4세대(보통 1세대는 25년 정도)로 필자가 나눈다면 제 4세대는 20세 미만의 어린이청소년 세대, 제 3세대는 20세 초반 - 30세 초중반까지인 청년층, 제 2세대는 30대 후반 - 40대 후반의 장년층, 제 1세대는 50대 이상의 노년층 정도로 세대를 구분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중.고.대학생과, 장성했으나 미혼인 자식들은 거의 3세대에 속하고 그 부모들은 장년층 중반에서부터 노년층까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부모와 자식간의 심각한 견해 차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충돌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온갖 고생을 하면서 경제의 급격한 부흥을 주도했고 돈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뼈속 깊이 느끼고 내 자식에게는 내가 그 나이에 가지고 싶었으나 가지지 못했고 먹고 싶었으나 먹지 못했고 배우고 싶었으나 배우지 못했고 이루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자식에게는 해 주고 싶어 한다.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아낌없이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물 쓰듯이 쓸 태세가 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식들은 낳고 자라면서부터 요구하면 별로 거부되지 않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한 쪽은 헌신적, 능동적이고 다른 한 쪽은 수동적, 의타적인 심리적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면 왜 부모자식간에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많은 사고의 괴리와 갈등이 생기는가? 문제의 시발점은 고생으로 살아온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70% 이상이고, 모아 둔 또는 모으고 있는 재산을 갈무리하느라 청소년 세대에 기본적인  때로는 세세한 관심을 가질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다는 점이 20%이고, 청소년들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미래의 삶을 확실하게 다져 주어야 할 학교교육이 입시학원화 되면서 인성교육은 물 건너 같다는 점이 원인의 나머지 10%이다. 하물며 그 상황에서 정신적인 교육이나 감화가 없이 물질적인 뒷받침만 거의 한정 없이 주어지는 청소년들이 물질의 소중함은 둘째 치고, 정신의(특히 부모의 모범적인 실천사례가 자식에게 주는 교육효과는 거의 신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중함을 깨치기에는 가정교육이 소홀하거나 전무인 한국가정이 대다수임을 청소년들을 가진 부모들은 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은 부모라면 결코 자식의 가정교육에 소홀하지 않는 법이다. 심지어 심한 경우는 자상한 선생님보다 아버지가 자식의 심리상태에 대해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모들은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온실에서 자라고 있으나 온실을 거부하며 강력한 개성과 열광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에는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자연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비와 확 트인 대지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라고. 자신이 애써 만들어 놓은 온실 속에서만 자라는 물오이와 물배추의 맛은 어떨까? 여러분은 어린 시절 먹었던 노지 재배한 배추의 속이나 맵싸한 고추  그리고 볕을 듬뿍 받고 자란 퉁퉁한 토종오이를 된장에 푹푹 찍어 먹는 것이 ‘짱’이 아니었던가?

  서구사회에서의 부모자식간 갈등은 합리성을 존중하고 추구하되 격한 감정을 해소하고 다시 유대를 더욱 깊게 다지는 화해의 과정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부모자식간 갈등은 부모의 부족한 시간과 신인류에 대한 이해결여, 그리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저해하는 무조건적인 애정과 지나친 보호의식 등에서 비롯된다. 부모자식간에 의견충돌 후에 자식이 집을 뛰쳐나가 배회하다 돌아오거나, 무조건 입을 다물어 버리거나 아니면 드물게 순간적인 애교풀이로 일단 막을 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영원히 가라앉지 않을 굳고 두꺼운 앙금을 남기는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농사꾼이 흉년이 들었다고 제대로 자라주지 못한 농작물(자식)을 원망하거나 호미(훈육방법)를 탓해서는 안 된다. 확고한 가정교육의 마인드와 실천의지의 미비 때문에, 평화롭고 안온한 분위기가 감돌아야 할 가정 내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갈등과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한 말 못할 부정적인 감정들과 괴로움, 번민 그리고 이별이 생기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암담하다. 한국의 현 실정에 비춰 부모자식간에 중간에서 조정을 통해 이해와 화해를 시키는 자리를 마련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는 새로운 벤처사업이 생겨나야 할 필요성은 얼마든지 있다. 일종의 틈새사업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가정교육의 소홀 내지 부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한국인들의 약속위반이나 말썽의 사례가 높다. 교포들 간의 동종업체간 경쟁과 속임수 등도 타민족에 비해 높다. 그것은 거의 그 근원이 가정교육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합리적인 갈등 해결방식의 과정, 정확한 생활예절, 노력한 만큼 벌려는 근면성과 성실성, 사후 정리성과 청결성, 타인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 한울타리 정신 등의 결여에서 생긴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은 모난 짓을 한다.’는 외국인들의 사고의 뿌리는 깊다. 필자는 여러 사례의 관찰과 사고를 통해 느꼈다. 그것은 역시 과거의 가정교육의 부재 또는 소홀의 긴 꼬리가 밟힌 결과였다.

  앞으로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몸가짐과 마음가짐, 즉 정확한 생활예절과 상식, 더 나아가 양식을 갖춘 합리적이고 건전한 사고방식을 먼저 가지고 자식교육에 힘쓰기를 희망해 본다. 엄격함의 그림자가 서린 모범적인 사고와 실천은 당신의 어린 자녀의 마음 속에 평생 신화로 간직될 것이고 잘못한 점은 자식에게 솔직하게 인정하고 확실하게 부정적인 감정의 찌끼를 잘라버리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신세대는 나약하고 종잡을 수 없고 정신 없이 아무데나 몰입한다고 입에 늘 올리던 말을 스스로 버리게 될 것이다.

  ‘잘 키운 자식 하나가 잘못 키운 자식 열보다 낫다.’ 자식을 키울 때는 애정은 어차피 서로 느끼고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무수히 주어지므로 애정보다도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회적 사고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가정은 보금자리이면서도 작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대가 깊고 작은 사회일지라도 ’너와 나’가 있다. 부모가 ‘나’라면 자식은 ‘너’인 것이고 자식이 ‘나’이면 부모는 어디까지나 ‘너’인 것이다. 요즘 신인류들은 이 ‘나’와 ‘너’의 개념을 절대로 혼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쉰 세대들은 집안에서 ‘너나’할 것이 일체 없고 ‘우리’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어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합리적인 사고와 태도는 아니다. 합리적이면서 상식을 존중하는 서양인들의 태도를 우선 완전히 익히고 나서 그 위에 보다 발전적인 우리만의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번뿐인 인생에서 어처구니없는 실패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한 기본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말들이 서양과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보통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실천되어 왔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우리 민족은 일단 마음먹고 시작하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다.

열혈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