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인생과 사랑 시

하나인 삶(My Life) -뉴질랜드 남섬 카이코우라의 해변풍경과 수필

imaginerNZ 2009. 1. 11. 23:45

 

뉴질랜드 남섬의 옛 포경마을 -카이코우라(Kaikoura)

 

해안의 한적한 도로변-헤밍웨이 풍 주인이 운영하는 고서점이 있는 곳 근처

 

파이피 산 너머 설산들과 마을 앞에 길게 휘어진 해변풍경

 

캠퍼(캠핑 밴)들이 주차하고 있는 바닷가 캠핑 사이트 근처의 마을 도로변 풍경

  

도로변에 면한 살구색 몸체의 아델피 백패커스의 전경-길 건너편이 해변과 바다

 

 

아델피 여행자 숙소

 

 

 

 

 

앞 쪽의 파이피 산세와 뒷쪽의 이너 카이코우라 산맥과 그 너머 아우터 카이코우라 산맥을 배경으로 한 카이코우라 마을의 바닷가 풍경 -카이코우라의 관광안내 센터에서 직원에게 그 지역화가들의 신상과 사는 곳에 대해 묻고나서 맨 처음 방문한 곳은 카이코우라 북부지역에 사는 한 여류화가였는데, 해안도로를 따라 2~3분 걸리는 곳으로 바다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지 언덕 위에 있는 2층 목조주택있었다. 부인인 화가는 없고 별채의 건축일을 하고 있던 초로의 남편이 나를 맞아 주었다. 그가 말하기를 부인은 읍내(township)에서 자기 친구의 카페일을 거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집의 1층은 화실로 바다풍경이 잘리지 않도록 통유리를 설치해  놓았다. 역시 2층은 살림층이다. 주인이 벽난로에 불을 지폈고 난생 초면인 두 사람은 화실에 있는 소파에 마주앉아 부인이 올 때까지 담소를 나누었는데, 이 양반이 부인을 처음 본 순간에 너무 사랑하여 제법 잘 나가던 사업을 아예 접고 부인과 함께 부인의 고향인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노라고 한다. 그는 언덕 위 5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다 목조건물을 일꾼 한 명과 함께 직접 짓고 있었는데 부인을 위해서 그런다고 했다. 내심 그그렇게 자신의 꿈과 여생을 부인과 예술바치는 그의 사랑에 대한 헌신이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마침내 그가 부인이 온다고 해서 바라보았더니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이름은 Karen James. 부인이 실내로 들어서자 남편이 Karen에게 나를 소개해 준다. 반갑게 인사하고 내가 쓴 영시 한 편을 건네고 예절상 귀퉁이에 조그만 나전(소라의 안 껍질) 조각과 직접 사진(엽서 앞면은 원근법상으로 수평선 아래에 펼쳐진 청록빛 바다-해안도로-너른 목초지-언덕-수목에 둘러싸인 이층 목조주택이 찍혀 있고 뒷면에는 자필로 1행에 "HOMEWOOD HILL GALLERY"이, 2행에 HANDMADE IN KAIKOURA, NEW ZEALAND이, 3행에 BY KAREN JAMES라고 써 놓았다)을 찍어 부착한 엽서 한 장을 샀다. 한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남섬의 남쪽지역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들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작별을 했다. 그것이 짧은 인생에 잠깐 동안의 작별이 될지 아니면 영영 다시 볼 수 없을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이곳에서는 화가나 수공예인들이 자기 작품을 자신의 1층 화실이나 혹은 마을의 카페나 와이너리 같은 곳의 벽에 전시하고 그 밑에는 화가의 이름과 희망하는 판매액수를 적어 놓고 전시하며 판다. 카이코우라에는 포경박물관과 고래관찰 코스와 스쿠버 다이빙 코스가 있다. 필자는 겨울에 카이코우라에 도착했는데 그 다음날 몹시 추웠던 새벽녘에 아델피 숙소에서 도로를 건너면 나오는 다리를 건너 조약돌 해변에서 일출과 함께 바다 멀리에서 고래들이 분수공으로 물을 품어 올리던 광경을 잊을 수 없다. 인근의 사우스 베이(사우스 만)에서 보는 일몰은 원시시대의 일몰을 방불케 하여 마치 원시인이 된 듯한 느낌에 빠져 들게 한다. 사우스 베이 바닷가에 사는 노 부부 화가와의 만남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후 3 시경에 그의 아담한 집을 방문했는데 집안에 인기척이 없어 딸랑 딸랑 초인종을 흔들었더니 안주인 화가가 나와서 맞아 주었다. 2층은 살림터이고 1층은 화실로 쓰고 있어서 그림 구경을  대충 하고 남편(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자연스레 함께 산다고 했음)인 화가를 만나 시를 한 수 전하고 현관입구의 양지바른 시멘트 문턱에 나란히 앉아 시와 예술과 서로 살아온 인생에 대해 거의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에 집에서 오른 쪽 편에 하늘을 반쯤 가릴 정도로 제법 높은 반공의 언덕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는데, 그 언덕 위에서 얼룩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은 흡사 천상의 풍경을 보는 듯하였다. 남섬의 최대도시인 크라이스크 처치에서 평생 식자공으로 일하다 은퇴 후에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는 그 화가와는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마을사람들에게서 들은 대로 해변도로의 거의 끝 부근에 고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주인 양반은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이어지는 하얀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헤밍웨이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그 할아버지의 부인이 화가라는 말을 마을의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부인과도 인사하고 역시 영시를 한 수 건네 주었다. 아마도 그 눈동자(THOSE EYES -AN ANSWER TO WHY)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 서점에서 구입한 뉴질랜드의 유명시인이자 크라이스크 처치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시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시인의 시화첩(짙은 오렌지 색 표지에 시와 스케치가 함께 들어 있는 책)을  한 권 구입했다. 필자는 여행시에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자동차는 필수이나 카메라는 소지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위에 올린 사진은  어느 여행자(아기 도깨비 님-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의 사진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마음의 사진기로 찍으면 족하고 한 지역에는 적어도 2~3 일 이상은 지내며 그 지역의 풍광에 몰입한다. 여행경비의 여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배낭 여행자 숙소(backpacker's)에 머문다. 카이코우라에서는 바닷가 도로변에 위치한 아델피 숙소(Adelphi Backpacker's)에 이틀간 머물렀고 카이코우라의 남쪽에 위치한 사우스 베이의 바닷가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일몰의 장관과 세상의 끝으로 다가오는 어둠에 빠져든 채 차의 안팎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곳은 일몰과 어둠으로부터 훌쩍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자연의 마법이 어려 있는 장소 같았다. 원시시대의 사우스 베이로 타임머신을 타고 진입한 자동차가 한 대 있었고 그 안팎을 배회하는 한 마리 하이브리드 유인원이 사우스 베이에서 원시인들처럼 어둠을 걷어내는 새벽이 과연 또 다시 찾아올 것인지 두려워하며 밤을 지샜다. 거기에서 사우스 베이의 일몰(The Sunset in South Bay)이라는 시를 초고했다. 그 다음날 카이코우라를 떠나 남쪽으로 가던 중에 한 와이너리(winery:양조장이 있는 포도농원)의 시음 bar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벽에 걸려 있는 그 지역 화가들의 그림을 하나하나 유심히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 중에 한 화가는 영국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고 직원에게서 들었는데 예술성이 다른 그림보다 독자성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가 그린 그림의 주조는 햇살과 구름과 특히 일몰의 빛살이 구름에 깃드는 풍경이었다.그는 나름대로 인생과 자연에 대한 일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반 시간 가량이 소요되었다.그는 사실과 인상이 결합된 전문적인 예술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고 사우스 베이의 화가는 포구에 정박한 작은 고깃배와 갈매기 등의 바다풍경을 선을 위주로 한 수채화로 그려내는 편이었는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어쨌든 예술가는 자신의 개성과 정도(degree)의 운명을 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 체험이었다. 자연의 순환을 따르는 삶이 그러하듯 예술도 자신의 몫을 타고나기에 그런 것이리라는 느낌을 차에 동지처럼 싣고  크라이스트 처치가 있는 켄터베리 지방을 향해 외줄기 바닷가 도로를 따라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난생 처음 보면서 동시에 언제가 다시 올 수 있으리라는 기약 없이 떠나야 하는 또 다른 산하와 해변과 그 해변을 따라 옹기 종기 늘어서 있는 마을의 집들과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가까운 곳 어디선가 양떼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나 하고 귀를 쫑긋하며 굽이길을 돌자 백여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양떼가 또 길을 메운 채 건너고 있다. 차나 사람만을 위해 있지 않은 길 위에서 마음은 잠시나마 천천히 화평에 젖어든다.

 

 

 

 

하나인 삶(One Life)

 -Elliot Kim 

 

 

우리는 삶이 아니라 세상을 산다.  

몇 세상이 아니라 어떤 세상이 되어 하나만을 살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때로

나를 잃으며 세상을 잃기도 하고

나를 찾으며 세상을 되찾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얻거나 잃는 것은 하나일 뿐이니

우리는 개체의 삶이 아니라

변함없는 세상을 하나로 살고 있다. 

일생이라는 하나의 곡(曲)에 맞춰 저마다 가슴팍 거문고를 켜면서.

[6:18A, 8/12(Sat), 2006]-20100707밑줄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