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다만 바라보고 있다(Nim's Just Looking)
님은 바라보았다,
새들의 지저귐과 긴 휴식을,
날마다 다른 구름의 형상과 햇볕의 벌거벗은 정적과
원적(圓寂)에 내리는 빗살과 뭇 바람의 여울지는 무늬를,
님은 바라보았다,
누대의 회임과 마지막 호흡 사이에서
사람들의 숱한 발걸음에 닳아가는 모든 성전의 층계와 난간과 바닥돌을,
사람들의 경건히 우러르는 표정 속 숭고에 찬 눈매와
마음 저욱이 울려드는 그리움의 메아리를,
님은 바라보았다,
모두 깊이 잠든 밤의 끝자락 너머에서
아스라이 펼쳐지고 있는 먼동의 신령스런 빛깔과
만홍(滿紅)의 저녁노을에 번지며
어둠 저편으로 아득히 날아가고 있는 만종소리의 나래짓을,
님은 바라보았다,
희망과 고뇌의 호흡에 차고 기우는 모든 것들의 일생을,
은밀히 조마조마한 심장박동이
머언 강물소리에 잠잠이 실려가고 있는 것을,
님은 바라보았다,
우두커니 서 있는 전설의 밤이 어느 둥지 안에서
대낮의 세찬 빛살, 그 쇄상(碎狀)의 기억 속에서도
해와 달과 은하의 고향하늘 아래 잠자코 머물러 있음을,
님은 다만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광막한 한 순간에 잠겨
자연의 순환 속에 머물듯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200810060500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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