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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로이츠꼬예 말갈 무덤은 관 없이 그냥 시신을 묻었다. 시신의 손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고 한쪽 발은 원 위치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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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96년 서부 시베리아의 사르가트문화(기원전 7~3세기) 고분을 발굴한 적이 있었다. 필자를 포함해서 8명이 달려들어서 직경 18m, 높이 2m인 봉분을 순전히 삽으로만 제거하고 무덤 구덩이를 열자 목곽 안에서 5, 6인의 뼈가 한데 고스란히 모아져있었다. 육탈된 후에 뼈를 한 군데로 모아서 무덤 내 곳곳에 둔 것이다. 그런데 무덤의 한쪽 벽을 정리하다보니 가장자리 바닥에 온전한 팔 1개가 발견되었다. 아마도 무덤에 시신을 넣어서 뼈를 고스란히 육탈시키고 다시 파내어 무덤바닥에서 정리할 때에 깜빡 잊고 한쪽 팔을 놔둔 모양이다. 놀라운 광경에 잠시 꽃삽을 놓고 한동안 사람의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깊은 상념에 빠진 적이 있다. 이런 얘기를 지인들에게 하면 시베리아 동토의 땅에서 벌목공도 아니고 도굴꾼이 되었냐고 놀리곤 한다.
고고학을 한다면서 고작 남의 무덤이나 파고 다니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무덤은 과거 사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타임캡슐이다. 사자에 대한 아쉬움과 자신들의 종교생활, 물질문화가 함축적으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에 따라 무덤이 거의 발견되지 않거나 반대로 다양한 장법이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연해주 지역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1000여 년 동안에는 무덤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해의 기층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극동지역의 원주민인 말갈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시신을 매장했다.
아무르강 중류의 뜨로이츠꼬예 유적은 수백 여 기의 말갈무덤이 발굴된 일종의 공동묘지이다. 기본적으로 목관을 배치하고 그 안에 시신을 넣으면서 여러 가지 부장품을 같이 묻었다. 보통 장례에는 터부도 많고 여러 가지 신앙이 반영돼 한 집단 내에서는 하나의 무덤 만드는 방법이 고수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뜨로이츠꼬예 유적에서는 참 다양한 무덤이 사용되었다. 같은 묘지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냥 묻고 어떤 사람은 화장하거나 살을 육탈시키고 뼈만 따로 모아서 매장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는 시신을 자작나무 껍질로 둘둘 말아서 묻기도 했다. 심지어는 같은 무덤구덩이 안에 합장한 묘에서 한 시신은 화장해서 뼈만 모아서, 다른 시신은 온전히 묻었다.
하나의 공동묘지에서 다양한 무덤이 나오는 아무르지역 말갈문화의 특징은 혹독한 겨울을 지내야하는 이 지역의 특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하 30~40도를 오가는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맨 땅에 무덤을 판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테니 혹시 겨울에 세상을 뜬 사람들은 육탈시키고 다음해 봄이나 여름에 매장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화장도 무덤 구덩이 안에서 했는데, 상식적으로 장작불만 지펴서는 요즘 같이 완전히 뼈만 남도록 화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시신을 불로 정화한다는 의미로 한 듯 싶다. 심지어는 아예 무덤이 없는 경우도 있다. 현재 러시아 극동에 거주하는 에벤키(퉁구스)족은 사람이 죽으면 나무 위에 관을 만들어서 육탈시키는 풍장을 한다. 또 추코트카의 원주민 중에서는 시체를 잘게 쪼개서 새에게 주는 조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무덤은 남아있지 않게 된다. 후대의 고고학자들로서는 이렇게 무덤을 만들지 않았던 시기를 밝히기는 결코 쉽지 않아 미싱링크가 생기게 된다.
이래저래 무덤들을 연구하다보면 죽은 뒤의 자리 마련에 시간과 자본을 쓰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자. 저승에서 안식을 얻고자 수십 년 동안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든 파라오는 무덤이 발굴돼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었고, 피라미드를 짓다가 조용히 세상을 뜬 인부들은 자연 속에서 조용히 안식을 취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피라미드를 만들어서 후손들에게 중요한 고고학 자료를 제공한 공로는 크지만, 본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 호화묘지에 봉분을 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고 신문에 나기도 하는데, 지나치게 큰 무덤들은 몇 천년 뒤에 발굴되어서 유물은 박물관에 진열되고 유골은 박물관 지하창고에서 곰팡이들과 세월을 보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면 우리같은 서민은 조금 맘 편해질지 모르겠다. 사람 인생은 관 뚜껑 덮을 때까지 모른다는 말을 흔히 한다. 무덤을 파다보니 한마디 덧붙이고 싶어진다. '사람 인생은 관 뚜껑 덮어야 알고, 관 뚜껑 덮어놓고 보면 다 똑같다'라고. Memento mori, Carpe diem.
부경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