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동북아민족사

[스크랩] 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1> 홍산의 곰 토템

imaginerNZ 2008. 9. 6. 06:21

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1> 홍산의 곰 토템


뉴허량 여신묘에서 곰머리·발톱 등 진흙유물 쏟아져
홍산문화 주도세력 곰 토템 민족, 신화 속 웅녀족 선조로 추정
단군신화의 흔적 분명 하건만 동북공정 눈먼 중국
그들의 역사로 끌어들이려 해


 
  중국 내몽골 자치구 츠펑시 인근의 청쯔산 정상부. 다링허 상류에 해당하며 초기 청동기 문화를 보여주는 성벽과 제사터 등이 남아 있다. 앞에 보이는 돌무지는 성터의 흔적이다. 박창희 기자
 
 


청쯔산 가는 길

지난달 7일부터 13일까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학술답사단과 함께 중국의 동북부 랴오시(療西·요서) 일대를 탐사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60년의 의미를 '한민족의 뿌리'인 단군조선에서 찾아본다는 취지에서 나선 발걸음이었다. 왜 단군조선인가. 희미한 한민족의 기원, 흔들리는 역사의식,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잡아줄 '토대'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답사단은 자못 들떠 있었다. '단군신화의 무대'를 찾아간다지 않는가. 아침밥 일찍 먹고 나선 답사단은 버스와 6인승 미니밴을 번갈아타고 흙먼지 폴폴 날리는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내몽골의 나지막한 구릉지에 조성된 밭에서 농부들이 말과 노새를 앞세워 밭갈이를 하고 있었다. 말들은 야성을 잃은 듯 했고, 노새들은 고분고분 했다. 내몽골의 늙은 농부들은 특유의 애잔한 미소로서 낯선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낯설지 않은 정경. 농가에는 흙담이 버티고 있었고, 마을 어귀에는 연자방아와 우물집 같은 농경사회의 자취들이 남아 있었다. 답사단을 이끈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복기대(중국 고고학) 교수는 "몇 번 왔는데도 길이 헷갈린다. 사막 길은 종잡을 수가 없어"하면서도 "힘들어도 막상 가 보면 힘이 생기는 게 고조선 답사"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이 마련한 고조선 특별 답사로, 그곳 교수진과 대학원생 등 24명이 참가했다.

 
두어 시간을 달렸을까, 이윽고 6인승 미니 밴이 멈춰섰다. 달구지 한 대나 다닐만한 산길. 뙤약볕이 쏟아진다. 들꽃이 지천이다. 한적한 산길을 냅다 오르자 구릉지가 나왔고, 이내 산정의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와~" 탄성이 터졌다. 부드러운 구릉과 그 아래로 아득히 펼쳐진 평원. 정상부는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청쯔산(城子山)은 외부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유적지였다. 발길에 부딪히는 토기를 주으면 빗살무늬 또는 덧띠무늬토기였다. 널브러진 돌무지와 제사터, 그리고 곰바위…. 기원전 2000년 전후, 이곳의 초기 청동기인들은 무엇 때문에 산정에 산성을 쌓고 제사터를 마련했을까. 복 교수는 "평상시엔 이곳에서 하늘과 조상에 제사를 지냈을테고, 유사시엔 전략적 고지로 활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돌을 모아 산성을 쌓으려면 시키는 자와 일하는 자가 있었을 것이니, 이때 이미 부족국가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데 청쯔산을 지배한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발굴이 되지 않아 의문을 해소할 길이 없는데도, 앞서 본 곰바위 탓인지 자꾸만 단군신화의 웅녀가 어른거린다.


곰 토템의 주인공은

 
홍산문화 유적지에서는 그동안 곰과 관련한 유물들이 많이 나왔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랴오닝성(遼寧省·요령성) 젠핑(建平·건평)과 링위안(凌源·능원) 사이에 자리한 뉴허량(牛河梁·우하량) 유적이다. 뉴허량은 세계를 놀라게 한 신석기 만기의 여신묘에서 여신상이 출토된 곳. 이 여신묘에서 곰 아래턱뼈와 곰의 머리, 발톱으로 추정되는 진흙 조소상 파편이 함께 나왔다. 뉴허량 여신상은 눈에 둥근 옥이 박혀 있어 연대 측정이 가능했다. 학계에선 그 연대를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 정도로 본다.

흥미로운 것은 뉴허량 인근에서 돌로 쌓은 무덤인 적석총이 조사됐고, 거기서 옥으로 만든 돼지 형상의 용, 즉 옥저룡(玉猪龍)이 발굴됐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돼지 형상이라고 봤던 중국 학자들이 요즘은 옥웅룡(玉熊龍)이라고 본다. 곰이라는 말이다. 동북공정을 주도한 학자 중 한사람인 궈다순(郭大順·곽대순)의 최근 논문과 책에는 거의가 곰으로 설명돼 있다.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곰들은 자연스럽게 곰 토템을 끌어내고, 우리의 단군신화 속의 웅녀(熊女)를 오버랩시킨다. "곰이 나오고 여자가 나온다, 단군신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신화적인 얘기가 고고학적 조사로 이렇게 완벽하게 뒷받침되는 사례는 드물죠."(복기대 교수)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소나무)을 쓴 한국항공대 우실하(교양학과) 교수는 이런 정황을 아예 웅녀족과 결합시킨다. "홍산문화 주도 세력은 곰 토템 민족이며, 그들이 바로 우리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족의 선조일 걸로 봅니다. 입증 자료들이 바로 이 곳의 곰 유물들이고요."

이런 주장이 성립할 경우, 홍산문화는 중화문명의 서광이 아니라 오히려 환웅족, 웅녀족을 포함한 동이족의 문화 원형을 얘기하는 곳이 된다. 뉴허량을 끼고 있는 다링허(大凌河·대릉하) 유역이 단군조선의 근거지라는 학계 일각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단군조선에 대한 문헌 자료가 빈약하고 고고학적 자료에 대해 한·중 학계가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어 논란은 여전하다. 답사단이 찾은 청쯔산에는 단군조선의 실체를 규명할 '비기(秘器)'를 감추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복 교수는 "정식 발굴조사가 이뤄지면 비밀이 벗겨질 수도 있다"고 했다.


신화 쟁탈전

홍산문화의 곰 토템을 중국 측은 어떻게 볼까. 짐작했겠지만 이 역시 '중국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곰토템(熊圖騰)-중화조선신화탐원(中華祖先神話探源)'이란 책을 펴낸 중국 사회과학원 비교문학연구중심의 예수셴(54·葉舒憲·엽서헌) 주임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동북아지역 여러 민족의 전래 곰 토템 신화는 중국인들의 공동조상인 황제(黃帝)집단에서 기원하며, 단군신화 뿌리도 황제집단의 곰 토템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곰 토템은 유웅씨(有熊氏)라는 별명을 가졌던 황제집단에서 시작돼 우순(虞舜) 시대와 하(夏)나라 시대로 이어져 중국 곳곳에 퍼졌다. 그것이 고대 퉁구스인과 가까운 종족군의 전파 작용에 의해 조선족(한민족)의 옛 기억 속에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의 웅모생인(熊母生人) 신화를 남겨놓았다는 것. 예수셴은 근거 자료로 뉴허량 여신묘 등에서 출토된 곰 유물들을 제시한다. 똑같은 곰 유물이 180도 다른 논리적 근거로 활용된 셈이다.

한국 학계에선 견강부회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신석기인의 곰숭배 문화는 황제족과 관련이 없고, 퉁구스족이 가져온 2만~3만년 전의 고아시아족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다. 우리 상고사를 깊이 연구해온 정형진(50) 씨는 "황제족의 일부가 홍산문화 지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전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유웅씨와 연결짓는 것은 넌센스"라고 지적한다. 복 교수 역시 "곰 토템이 황제족에서 기원한다는 것은 중국측의 아전인수식 해석이며 그런 식으로 갖다붙여 왜곡하는 사례를 흔히 본다"고 비판했다.

곰 토템의 황제족 기원설에 대해서는 중국 학계에서도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중국 문화사를 보면 황제족은 '용의 자손'이란 믿음속에 '용'을 중시해왔다. 이들은 또 다산의 상징으로서 농경생활과 관계가 깊은 돼지를 의미있는 동물로 여겼다. 홍산문화 영역에서 확인된 '옥룡'의 원형이 돼지에서 비롯됐다는 학설은 그래서 설득력을 가졌다. 그런데 어느 날 옥저룡이 옥웅룡으로 둔갑하기 시작했고, 단군신화의 뿌리까지 흔들고 있는 것이다.


미련한 곰 싸움

중국측의 '웅녀 챙기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은 지난 2001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만천성국가삼림공원 내에 '백의신녀(白衣神女)'란 이름의 거대한 '웅녀상'을 세웠다. 높이 18m의 이 '신녀'는 양손에 마늘과 쑥을 들고 있다. 조선족을 앞세운 '웅녀 마케팅'이다. 학계에선 웃어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우려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단군신화를 천손족인 환웅이 만주 일대 고조선 강역의 토착세력이던 웅녀족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중국 측은 현재 중국땅인 만주지역 토착세력인 웅녀족을 당연히 중국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웅녀상의 웅녀는 '한민족의 시조모'가 아니라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이기 때문에 중화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예요." 우실하 교수의 말이다.

곰 토템이든, 웅녀족이든 중국이 벌이는 역사 관련 '공정'들은 어느 것 하나 용의주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고구려 공정'쯤으로 알았던 '동북공정'은 사실 깃털에 불과하고, 몸통은 신화·전설시대를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화고대문명탐원공정'이라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이들 공정 너머에는 한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랴오허(遼河·요하) 일대를 몽땅 황제의 판도로 못박으려는 요하문명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답사단을 괴롭힌 것도 바로 이러한 중국측의 의도였다. 청쯔산을 내려오며 부산국학운동시민연합 이성명 대표가 말했다. "미련한 곰같은 짓이지만 '곰 싸움'을 피할 수 없군요…."

그런데 곰 싸움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게 문제다. 몇몇 학자와 재야 사학자들을 빼곤 이런 문제에 관심조차 없는 게 국내의 현실이다. 중국의 공세는 인해전술 수준이지만, 우리는 문제가 불거지면 따라가기 급급한 실정이다. 고구려를 뺏긴다 어쩐다 하며 냄비끓듯 들끓다가도 이내 식어버린다. 몇년 후 중국의 요하문명론이 완성되면 단군과 웅녀, 해모수 주몽 등이 모두 황제족의 후예로서 중화민족으로 둔갑해 있을 지도 모른다. 자칫 한민족사의 뿌리를 송두리채 빼앗길 지 모르는 상황이다.

'가깝고도 먼' 고조선 옛 땅을 밟은 답사단은 '반만년 역사'를 제대로 호흡할 겨를도 없이, 중국측이 피워올리는 역사전쟁의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중국 츠펑·우한치= 박창희 기자 chpark@kookje.co.kr
출처 : 碧 空 無 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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