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갈인만큼 우리나라 고대사에서 많이 등장하면서 애매하게 기술되고 있는 사람들도 없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말갈인들은 대체로 강원도 지역사람들인데, 정작 중국 역사기록에는 숙신과 읍루 이후 극동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말갈은 발해의 기층집단을 이루었다는 정도만 알려져있을 뿐 역사기록은 비교적 소략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중국 길림성, 흑룡강성을 비롯해서 러시아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 등 극동 전역에 3~6세기에 큰 세력을 이루고 살아왔음이 밝혀지고 있다.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져 살던 이들은 때때로 고구려나 발해에 복속되기도 하며 점차 선진문명을 흡수하고 발전했다. 말갈 중에는 물고기 껍질을 벗겨서 옷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여름에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를 잡아서 그 껍질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연어껍질로 어떻게 옷을 만들까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옷은 실제로 상당히 아름답다. 이들은 여름 한철에 엄청나게 밀려오는 연어를 잡아서 그 고기와 알은 훈제하거나 죽을 끓여 먹었으며 뽑아낸 기름으로 겨울을 지냈다. 이들은 말갈중에서도 특히 속말말갈로 불리웠던 사람들인데, 현재 극동지역의 원주민인 나나이족의 선조이다.
말갈이 자신의 이름을 중국에 알리기 시작한 시점은 대체로 부여가 망하는 서기 5세기경이다. 말갈이 부여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고구려와 부여로 대표되는 예맥집단의 세력에 편입되면서 발달된 사회로 이어질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초원지역에서 밀려들어온 선비·오환으로 대표되는 북방계 문화에 전통적인 자신들의 문화가 조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고학적으로 보아도 말갈은 전통적인 수렵채집 생활 이외에 성을 만들고 발달된 철제무기를 사용했으며 여기에 목축도 하던 복합경제였었다. 즉, 넓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각 지형에 맞는 생계 경제를 꾸리면서 극동의 원주민으로 살아온 셈이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사회를 발전시켜왔던 말갈의 저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었다. 발해가 기후로 보나 지형으로 보나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극동지역에서 거대한 제국을 세우는 데에는 기층세력인 말갈의 저력도 상당부분 이바지했었다.
말갈을 비롯한 극동의 주민들은 고구려·발해에 편입되면서 그 세력을 키웠고, 이후 여진족이나 거란족들이 극동지역에서 발흥해서 중원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으니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집단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것은 왜 발해의 기층세력이었던 말갈이라는 명칭을 우리나라 강원도나 함경남도의 사람들에게도 붙였는가 하는 점이다. 아마 말갈이라는 명칭은 변방에 살던 사람들을 통칭했던 것같다. 얼마 전까지 서양인만 보면 무조건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우리나라 북쪽의 광활한 지역에서 거주했던 말갈인들은 고려 조선시대 이래로 우리나라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먼 이웃으로만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말갈을 자신들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다. 말갈이 중국에 조공을 바쳤고, 현재 중국의 영토가 만주지역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에 근거해서 말이다. 한국은 말로만 중국의 역사 왜곡 운운하지만 제대로 된 말갈 전공자도 거의 없으며 말갈문화가 무엇인지 실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연구자도 많지 않다. 말갈이 한국역사인가 중국역사인가라는 단선적인 논쟁을 벌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 민족의 주체를 논하기 이전에 이들은 고대이래로 때로는 우리 민족에 복속되었고 때로는 우리와 대립하면서 같이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이루어나간 주체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거대하게 성장해가고 있는 한국이지만 최소한 고대사와 고고학에 대한 인식만큼은 한반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사이건 동양사이건 말갈은 여전히 변방이기 때문이다.
말갈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 사람들이 아니라 수천년을 흑룡강과 극동일대에서 우리와 이웃하며 살던 사람들이다. 변경의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이들을 다시 거시적인 관점의 고고학과 고대사 연구로 끌어올릴 때가 되었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21> 발해의 기층세력 말갈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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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碧 空 無 限
글쓴이 : 언덕에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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