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십자가(The Moon and the Cross)
조각난 달이 풍덩 떠 있다,
밤하늘 깊숙이
혹은 어떤 다른 낯선 공간에.
별들이 듬성하다.
분잡한 도심의 밤거리에
원근없이 상하좌우로 네온의 십자가들이 서 있고
얼결에, 사슬갑옷에 말을 탄 십자군이 된다,
첨탑의 외곽에서.
가슴팍에 그려진 십자가를 따라 짐짓 성호를 그어본다,
있는 그 자리에.
이 곳에 구원은 언제 오는 걸까?
라는 의문의 메아리는 아득히 자취 없고
온갖 행위의 입김과 땀방울들이 생각에게 일제히
길을 돌아보지 말라
고 한다.
반낮으로 환한 밤거리에.
혹은 인생의 마차 위에서.
생생히 살아 있는 것만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지나치는 행인들은 발걸음으로
냅다 냅다 중얼거리는
듯하다.
도심의 콘크리트 한복판에서.
아니면
어느 모퉁이 버드나무집 옛가지에 말을 맨 채
역시나 냅다 냅다 들이키고 있다.
술은 떼어낼 수 없는 생래의 혹을 만지게 한다.
더 이상 웃지도 울지도 않는 동심 속에서.
밤이 문득 괴괴해지고
거리는 마지막 불꽃인 양 타오르고 있고
어쨌거나,
우리는 거친 숨소리를 홀로 엿듣고 있다.
만감의 숲길 위에서.
사랑은 절로 절로 그리워하며
한 줄기 메아리를 아련히 날려 보내고 있다.
돌아오지 않을 일생 너머로.
(200806252208 엘리엇 킴)
'엘리엇 킴 작품방 > 인생과 사랑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몰자의 묘비명 (0) | 2008.07.18 |
---|---|
가르치는 배움(Learning From Teaching) (0) | 2008.07.04 |
금과옥조(金科玉條) (0) | 2008.06.23 |
촛불집회에 부치는 詩 (0) | 2008.06.20 |
The Endless Blooming of Little Eyes 끝없이 피어나는 작은 눈동자 (0) | 2008.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