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언어에 대한 고찰 -1
(자연에 대한 인간적 언어표현의 객관화 필요성에 대하여)
자연에 대한 언어표현은 객관화될 필요가 있다는 전제하에 이 글을 쓴다.
자연의 물상과 현상에 대해 가장 객관적인 접근방식이 과학적 설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학적 언어는 인간의 감성이 극도로 배제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인간감성이 배제된 냉철하고 객관적인 합리성을 띠고 있다.
그것은 차라리 수학적인 기호성을 띤 현대적인 상형문자에 가깝다.
한편으로, 문학적 표현은 인간의 감정이 자연을 두루 휩싸거나 자연에 깊이 스며들어 배어 있다.
자연의 물상과 현상에 대한 인간의 감성적 반응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문학적 언표다.
인류는 이러한 과학적 설명언어와 문학적 감성언어의 평행에 가까운 분리상태의 사이에서
이 두 언어의 이격현상이 지속되고 인류는 그 상태를 운명적으로 용인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러기를 원치 않으며 이 둘이 가능한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 방법은 무엇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언어표현이 가능할 수 있을까?
먼저 인간이 자연의 한 일부로서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류가 자기중심적인 입장에서
자연에 대해 나름대로 파악하고 평가하고 자의적으로 감성을 자연에 뒤섞는
정신적인 무분별은 지양되어야 한다.
인간의 입장을 털끝 하나까지 털어내고 대자연을 하나의 온전한 주체로 받아들이고 난 연후에
자연에 속하면서 자연에 대하여 인간이 언어적으로 표현하려는 현상에 대해 고찰해보자.
사실, 전자(과학적 설명)와 후자(문학적 언표)는
인류역사에서 아직까지도 영원한 평행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은 평행이 아니라 미세하게 서로에게 근접하고 있다는 진실을
궁극적인 관찰과 직관의 능력을 터득하면 누구나 항시 깨달을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일단 인간의 마음을 비우고 자연의 관점에서 이 두 가지를 만유일체심으로 바라보자.
그러면 우리는 하나에 속하는 어떤 궁극적인 언어를 말하고 싶어진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행위 중에 가장 단순하며 명징하다.
마음 속에 이는 물결에 물결에 물결인 감성을 저홀로 깊은 마음의 바다에 고요히 잠기게 하고
시간을 갉아먹는 욕구의 지향이 진화를 통해 벼려져온 날선 지성을 마음의 흙에 묻으며
현실과 구원에 펄럭이는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는
이상의 깃발을 차곡히 접어 다만 그대 발 아래 선선히 내려놓아라.
지금은 구원의 때가 아니며 모든 현실은 구원에서 어느만큼 빗나가고 있어
현실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 발산하는 취기에 빠져 있다.
구원은 가장 멀고 가장 크며 그 영역은 하나의 온전한 세상에 해당한다.
구원의 처경에 들면 구원이라는 말과 그안에 담겨 있던 온갖 것들이 순식간에 통째로 삭아 없어진다.
그곳이 정토(정토)이자 도원경이며 유토피아다.
거기에서 언어의 여러가지 양상이 하나의 언어 안에 통합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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