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필집(미셀러니)

한국시의 진정한 정체성 확립에 대하여 -작성 중

imaginerNZ 2008. 1. 28. 00:23

한국시의 진정한 정체성 확립에 대하여

 

요즘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그 글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듣기에 말이 좀 과할런지 모르겠으나

요즘의 한국시는 나이 지긋하신 어느 수필가 분께서 하신 말씀처럼

'잠꼬대 같은 소리' 같다.

나도 덩달아 사람답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요즘 한국시는 가짜다.'라고.

물론 모든 시를 획일적으로 가짜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근원에서 나왔기에 돌아 그리워하면서

그 근원을 향해 울림의 메아리를 보내는 시가 과연 요즘 한국시에서 몇 편이나 될까? 

 

문단은 사회의 어느 한 분야에 특정된  전문가 집단의 전문화 영역이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바뀌고 심지어 세월이 뒤집혀도

문학과 예술, 곧 혼의 영역을 다루는 미학의 근원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은 아니지만

아예 외면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갑갑해서

그냥 한 번 해 보는 소리다.

요즘 한국에서는 홀로 구도를 하고 글을 쓰는 게 시대에 그리고 초시대에 들어맞는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고 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이 글을 어디에다 내놓고 말고 할 이유는 없다.

시는 쓰면 족하고 발표에 눈 멀 이유가 없다.

한 마디로 시인은 명예로운 직업 같은 게 아니다.

 

전에도 어느 글에 한 부분으로 쓴 기억이 있는데

역사는 진보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나

영혼에 눈 먼 미성숙한 사회의 경우에는 미학적 진보가 필요하다.

그 경우에 미학적인 진보라는 말은 가능하다.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들을 소재로 해서 쓰여진 글들 역시 사소하다.

웬만큼은 사소한 것들을 뛰어 넘어야

숭고하고 거룩하고 장엄하고 심오한 정신이 시에 반영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러한 정신성은 영혼의 일체성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해준다.

그러한 정신성을 이 땅 이 시대의  문학적 주제나 대상이나 배경으로 삼아

많은 글들이 쓰여지기를 기원한다.

 

주입식 순화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들이 글을 써도 스케일면에서 크고 아름다울 수는 있다.

그러나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세계문물의 비교체험의 부재는 단언하건대 극복할 수 없다.

일개 무명인인 나는 한국의 문학하는 사람들이 여러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장기적인 세계체험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

그 결과 국문학은 어딘지 낡고 남루하고 켸켸묵었고 국수주의적이라는 이미지가 점차 굳어져 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현대화 시대에서 그늘지고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고 있다.

쉽게 말해 시대에 뒤떨어진 나머지 국문학은 노령화하고 있다.

국문학 분야에서

젊고 밝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경건히 옷매무새를 여미고

이상향을 꿈꾸며 영혼의 신전에 들어서야 할 숱한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멀어지고 있다.

(심지어 요즘 젊은이들은 찰나적이고 엽기화 되어가고 있고 어른들은 이를 거의 방조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로 인한 문제점과 해결책 몇 가지를 나름대로 제시해 본다.

 

첫째, 한국문학에서 다루어지는 소재의 박약성이다.

좁은 땅에서 지지고 볶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계속 된장찌게나 김치찌게만 나온다거나

어쩌다 가끔 곰탕이나 혹은 삼겹살 구이가 나오면 누가 그것만 먹고 살기를 바랄까?

 

둘째, 문단의 경로우대 정신이다.

현 시대 문단의 장로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외려 일제 강점기의 문학과 그 이후 광복기와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에서 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은 절절히 끓어 오르는 열정과 냉혹한 현실을 헤치고 숭고하게 비상하는 나래짓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와 같은 전 국토의 난개발화와 물질지상주의와 그에 대처하지 못하는 안이한 문단현실 속에서 절세의 미학이 개별적인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출현하기는 어렵다. 그점이 자의반 타의반 한국문단의 전반적인 풍토로 고착화 되어 간다는 사실은 유감스럽게도 분명하다.   

 

셋째, 장로중심의 안이하고 자족적인 폐쇄성으로 인해 국제화에 실패했다. 그것은 문단의 현실과 번역문학의 비활성화에서 비롯된다.

 

넷째, 예술의 종합화에 기여할 내적인 동인, 즉 능력 있는 젊은 피의 수혈 부족 사태다.

그 결과 타 예술과의 교류가 활성화되지 못 했다.  

시각 및 청각예술 그리고 조형 및 공예 그리고 기타 분야와의 활발하고 빈번한 교류가 부족한 나머지 

그로 인해 당연히 그 접속분야의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노력은 날이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다.

물론 한국사회내에 미국식 현세주의 풍토가 만연한 점이 젊은이들의 근본적 세상살이를 불가능하게 하는 점이 주요인임은 명약관화하다. 세상살이에는 카우보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 한우(한우)보이들의 규격화 제조사태는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다.

 

다섯째, 문학을 문화부분 중에 하나의 독립적인 컨텐츠화하는 데 실패했다.

문학이 시각예술이나 청각예술 그리고 더 나아가 종합예술의 기초공사쯤으로 전락했다는 말이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작가가 작품을 낭송하고 직접 내용을 해설하는 기회를 늘리고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교육현장이나 관공서 기업체에서 눈앞의 현실에 매달려 사는 학생이나 어른들을 위해 망중한 속에 인생과 문학과 예술에 대해 음미할 수 있는 문화전파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그 일은 치밀하면서 투철한 사명감과 과학적이고 상업적인 방법의 도입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한국문학의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보완하는 방법은

첫째로, 문학이 자본주의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문학이 정보산업사회의 한 축을 형성할 수 있도록 문학사업 경영부문의 기구를 설립하는  것이다. 문학 컨텐츠의 이용에 지적재산권을 모니터링하고 수익창출기반을 확립하는 것이다. 

둘째로, 위와 같이 문학을 전담하는 문학전문 정보산업 기구를 설립하고 자본주의적인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원천 수익자에게 이익을 배분하여 문학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셋째로, 이러한 수익 창출 및 배분구조를 형성하고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 집단을 육성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넷째로, 사람의 밑바탕은 영혼이다. 참된 웰빙은 권력과 부와 명예나 육신의 건강과 장수가 아니라,

인류정신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영혼을 되찾아 가꾸는 것이다.

이 인류의 영원한 숙제를 하는 것이 바로 문학과 예술이다.

그런 영혼탐구인들에게 오직 그 숭고한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예우를 해주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이리라는 추념 섞인 아쉬움을 느낀다.

 

한국문학의 고사사태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 하루빨리 마련되기를 바란다.

(200803171153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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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윗글의 내용에서 독립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