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필집(미셀러니)

자본주의 인생론 -1(소비욕구에 대하여)

imaginerNZ 2007. 12. 29. 15:01

 

 

 

자본주의 인생론 -1(소비욕구에 대하여)

 

자본주의의 바탕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다.

생산활동이 없는 곳에서도 인간의 소비욕구는 마음에 가득하다.

반면에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속담에 나와 있듯이

소비욕구가 없는 곳에서는 생산욕구도 없다.

자본주의의 음과 양은 모두 소비욕구에서 비롯된다.

 

현대 자본주의 속에 사는 한 인간이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화평하게 사는 첫 단초는

소비욕구를 조절하는 것이다.

'무소유'의 경지에 이르르지는 못했다 해도

우선적으로 소비욕구를 버리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생활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만으로 생활해 볼 필요가 있다.

며칠 간 절에 들어가서 템플스테이를 하거나 가톨릭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와 수양을 하는것은 물고기가 물을 잠시 떠난 경우가 되기 십상이다.

근데 실제로는 그 정반대가 맞다.

 

최소한의 생존조건은 아마도 의식주일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암굴 속에서 수도의 고행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현대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조건을 나열해 보자.

 

방 한 칸 정도의 공간

필요한 가구 몇 점

그릇 몇 개와 수저 한 벌

소박한 침구

필요한 책들과 필기도구

조그만 텃밭

조촐한 밥상

 

위에 일곱 가지 혹은 더 줄여서 서너 가지만 있어도

현대자본주의 하에서 생존에 필요한 조건은 구비되고도 남는 셈이다.

암굴 속 생활에 비하면 오히려 마음이 여유와 풍요를 느낄 정도에 가깝다.

그 이외에 더 필요하다고 바라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필요의 채찍으로 자신을 가해하고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시장이나 대형매장이나 백화점에서 혹은 거리를 걷다 쇼윈도우 앞에 멈춰선 채

뇌수에 침을 흘리게 하는 새로운 상품을 향해 욕구에 휩쓸리는 눈매에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문득 '나는 스스로 욕구의 심지에 불을 붙여 놓고 계속 부채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집요하면서 점층적인 소비욕구와 그에 맞춤하여 다정하게 유혹의 손짓을 보내는 상품들을 통해 느끼는

대리충족의 허영심과 자부심에 마음이 들 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 내심 놀란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날개는 있으되 한참을 체공하지 못하여 털을 날리며 오르락 내리락 날개짓하고 있는

애처로운 한 마리의 닭을 보는 듯하다.

새로운 상품을 접하면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 오르다 잠시 후에 제풀에 내려 앉는다.

그리고는 또 다른 새 상품을 접하면 다시 날개짓으로 날아오르다 다시 내려앉는 식의 소비행태가

일생에 걸쳐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그게 현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군상들의 모습이다.

마치 지구가 거대한 닭장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에 골치가 띵하고

인간이라는 고등동물이 근래 들어 새로운 소비적인 돌연변이로 변모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이다.

 

거기에다 재화와 용역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폐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마구 퍼뜨려져 떠돌고 있다.

그리고 무슨 무슨 티켓, 무슨 무슨 권, 무슨 무슨 카드 같은 종이나 혹은 플라스틱 쪽들과

무슨 무슨 마일리지, 자유이용권, 할인혜택 같은 무형의 금전보상적인 권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마치 물욕을 위해서 물욕을 채우며 산다고 할 수 있을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형 중독증'이 마른 숲에 산불 번지듯 유행하고 있다.

신 기술, 이를테면, 신형 핸드폰, 신형 컴퓨터, 신형 mp3, 신 유행패션물들, 등등이 걷잡을 수 없이 횡행하고 있다. 심지어 신 사고, 신 사회, 혁신도시, 등등 '신-' 또는 '혁신-'이라는 의미의 낱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자고나면 '신-', '혁신-', '신종-''-쇄신' 등등의 표현들이 어깨를 겨루며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근래 들어 공룡화된 기술정보지식산업이 거의 절대강자로 사회의 모든 부문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눈부신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그와 어울리는 광고 및 홍보 수단도 획기적으로 발전해 왔다. 광고대행업체들이 상품의 이미지를 사람들의 뇌에 효과적으로 각인하는 수단, 즉 다종다양한 홍보 및 광고 밥법과 매체를 통해서 특정 재화나 용역을 대중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시간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침투시키고 있다.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수 없게, 듣지 않을래야 듣지 않을 수 없게, 접하지 않을래야 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광고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획일화하는 첨병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집요하면서도 반복적인 세뇌작용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강력하면서 막무가내인 마취제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는 와중에 마침내 세대계승의 교육에도 소비욕구가 교사의 탈을 쓴 채 잠입하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죄다 교육시키고 있다. 심지어 부모라는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금전을 가지고 신속정확하게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지와 합리적이면서 간편하게 물건을 구매하는 방법과 절차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부지런히 가르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참되게 교육하는 방법은 그때 그때 형편에 따라 과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는 끝없이 소비를 낳고 그 결과 과소비로 귀착하게 마련이다. 건강한 자본주의의 교육은 땀이 배어 있는 생산정신의 이해와 과소비를 억제하는 절약정신의 체질화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물건 귀한 줄 알고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물건과 그 물건을 생산해 낸 사람들의 땀에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키워주는 게 필요하다. 한 톨의 쌀도 생산적인 노력 없이는 소비자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라는 말을 올림픽의 표어 정도로 알고 있던 이 사람에게

그것이 소비욕구의 정확한 표정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솔직하게 그리고 깨놓고 말해서,

남들이 내로라 하고 야무지게 잘들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나는 순진한데다가 촌스럽기까지 하여 시대에 뒤떨어지고 

적응력이 '양'이나 '가'쯤밖에 안되고 

경제적인 생각의 끝이 무디어 덜 떨어진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자학하고 고문하게 할 정도다.

 

누가 더 바보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수의 위력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이라

순간 순간 말못할 열등감과 남모르는 고민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

요즈음의 세상살이의 대세임은 분명한 듯하다.

짧게 말해 대세를 따르며 뒤지지 않을 정도로 남들하는 것만큼 

사고 쓰고 행하며 즐기며 살고 싶고

바보나 외톨이처럼 소외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의 좌우명이 되었다.

 

한 마디로 요즘 세상은 가관이다.

돈과 물건만 있으면 행복까지도 제조해 버릴 태세를 갖춘 사람들로 세상은 점점 더 들어차고 있다.

이 많고 많은 인간들과 돈들과 상품들로 이 세상은 넘쳐나고 있고

심지어 바다까지도 다 메워버릴 듯 기세가 등등하다.

 

이런 시장통에서 벗어나 

예외를 추구하거나

정신적인 삶을 지속한다거나

마음을 비우고 수도하는 사람들을

이 시대의 진정한 소외자라고 일컫는 게 정말 어울린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렇게 정신성이나 신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쉽게 말해 '제껴 놓은 사람들' 축에 끼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소비욕구에 차 있는 대중들에게는 아예 경쟁상대가 될 수 없는 논외자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렇듯이 '제낌'을 당한 사람들이

인류에게 근본적인 정신성의 토대 위에

양심적이고 건전한 인간존중의 탑,

신성의 탑을 세우고

너나없이 무법적인 물적인 소비욕구의 야성적인 침탈로부터

이 토대와 그 중심에 세워져 있는 탑을 근근이 그러면서도 굿꿋이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선이나 총선을 치르는 시기에 정치인들이 전국방방곡곡을 유세하며 싸다니듯이

"근검절약과 환경사랑과 무소유의 마음을

인류사를 다시 쓰는 심정으로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교육시켜야 할 시대가 마침내 도래했노라"고

서울 종로 네거리에서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대구 중앙통 한가운데에서

인천시청 앞에서

대전시청 앞에서

광주시청 앞 금남로에서

요즘 유행의 절정에 달한 '텔미~' 어쩌고 하는 노래를 확성기로 틀어놓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연설의 침도 튀기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은

이 사람 한 사람만의 마음일까? 하고 반신반의하며 

먹물 든 낙지처럼 한껏 여기에다 대고 시커먼 속앓이를 토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해 말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사람은 최소한의 생존조건으로 생활할 때

외려 마음이 평화롭고 넉넉해지며

그런 마음가짐에서 어려운 이들을 위한 선행심도 생겨난다는 사실을

저물어 가는 세밑에 재삼 느껴본다.

마음은 원래 가진 것 없어 소박하며 서로 베풀고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200712250918 엘리엇 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