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窓)
일생의 안목(眼目)
사람의 감각, 예를 들어 눈은,나이가 어릴수록 심장에 가깝다.
나머지 감각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살면서 나이가 들수록 눈은 심장에서 멀어진다.
나이가 들어 죽음에 가까워지면 사람이 어린 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은
눈이 심장에서 멀어질 만큼 멀어졌다는 것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느낌이 무디어지면 마음이 무욕해지기에 가능한 마음가짐이다.
인생이 짧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의 수용력과 이해심은 늘어난다.
만일 일생이 순간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그는 구도의 길을 갈 확률이 매우 높다.
즉 신앙적 수행의 길을 택할 수 있다.
이 경우에 그 사람은 현세가 내세를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생각에 경도되기 쉽다.
그런 사람은 때로 동일종교의 신도들에게서 삶의 생동감을 일정부분 제거할 수도 있다.
만일 일생이 웬만큼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회적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통합적인 순수자아로부터 이탈하게 된다.
이탈의 색깔별로 제각각의 안경을 낀 사람들은
자위적으로 눈 먼 낙관론자가 되거나
시간의 현재성에 빠져 사회적 성공의 욕구에 목마른 사람이 되거나
허무감에 실린 지루함에 젖은 비관론자가 되거나
실천에 무관심하여 게으른 생활태도로 삶을 무의미하게 낭비하거나
또는 유전의 경로에 따라 특정한 무엇에 홀린듯이 몰입하고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인생이 과히 길지 않다 해도 적당한 길이로 주어진 자신의 몫이라 여기고
그 기간이 다하면 원래 있었던 상태로 자연에 속하여 잠긴다 여기면
그는 불필요한 불만이나 과도한 욕심에 휩싸이지 않고
그런 심리를 통제하는 중용의 마음이 형성된다.
그런 연후에야 그는
중도(中道)
에 들어서기를 바라며 지속적인 마음수행의 길에 접어들 수 있다.
이런 삶의 태도를 지니게 된 사람은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으며
그 꽃의 모습은 타인이 보기에 스스로 바람직스러우며
꽃의 종류에 상관없이 절로 아름답다.
일생의 꽃은 자신의 뿌리와 줄기와 잎으로
자신이 피운 꽃의 자태를 몸소 느끼고 바라볼 수 있으며
그런 자기안목의 보상적인 결과로 인생의 열매가 맺힌다.
일생은
만유의 화평에 속하여 한 그루 나무로 온전히 서 있으면서
스스로 관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하면
자신 안에 든 모든 것을 해방시켜 '하늘의 외눈매'로 모든 것 안에 든 자신을
도로 바라보며 동시에 느낀다.
(200711291118 :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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