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하여
삶은 순간 속에서만 비로소 존재하며
의식은 순간을 더듬는 촉수이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역시 그러하다.
생명은 영원히 현재의 순간에 가 닿을 수 없다.
현재와 감각 사이에는 신경반응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직전의 순간 속에 살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가장 생생한 최초의 기억들로 채워지고 있다.
시간적인 순서로 찍히는 기억의 필름은 차츰 첫 기억의 충격과 강도에 의해
순서가 재조정되고 편집되고 때로 각색되기도 한다.
남아 있는 기억은 불완전하고 주관적이다.
또한 기억은 꿈의 작용에 의해 서로 충돌하고 분리되고
융합 되거나 심지어 창조되기도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현재의 순간 속에 사는 게 아니라
어둠을 지우는 햇살처럼 최초로 쏟아지고 있는
기억의 홍수에 떠밀리며 살고 있다.
그 와중에 의식은 꺼질 듯 점멸하고 있다.
켜진 의식과 꺼진 무의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불규칙하게 점멸하고 있다.
잠에서 깨어 있는 지금의 당신도 이러한 점멸상태에 있다.
그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모르스 부호이다.
어떤 의도에 의해 당신이 사고하고 말을 하고 행동할 때
그러한 일련의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에
의도가 대상에 옷을 입힌 후에 의식은 다만 단속적으로 단추를 끼워 주고 있다.
한편으로 무의식은 옷이 입혀지고 단추가 끼워진 대상과
그 대상의 여러가지 움직임을 자기화하여 관찰하고 바라본다.
무의식은 이미 그러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는 눈빛을 띠고 있다.
의외로 의식은 자기발견을 모르는 철 없는 어린아이와 같고
무의식은 그러한 의식의 성장과정을 익히 알고 있는 어머니와 같다.
무의식은 인간의 모든 유전인자를 품고 있는 인간심성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의식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 담긴 보호본능에 가득 차 있다.
아이에게는 보상보다도 징벌이 더 효율적임을 어머니는 알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사고와 행위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꿈은 기억의 형상합금을 만드는 실험실이며 공정이다.
포괄적인 생의 관점에서 꿈은 가장 큰 삶이다.
꿈은 현실에 대한 '의식이라는 자식'을 달래고 훈육하고
의욕과 희망을 조절하고 좌절과 불만을 순화시키고 해소시키며
다가올 미래를 반응적 또는 역반응적으로 암시한다.
꿈의 양상은 불쾌의 체험에 대해 해방적인 가정을 예시하거나
불쾌한 체험의 불가피성이나 속박성을 극대화하여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정화를 시도하려는 의도로 전개 된다.
꿈은 이미 발생했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해결난망의 사안에서 비롯된다.
표면적인 의식에서 무의식의 깊이에까지 작용하는 억압감에서
긴장과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한 무의식의 해법이 꿈이다.
그것은 무의식이 연출하는 심리극(psycho-drama)이자
시공을 초월한 영성의 중화제이다.
결국 꿈은 현실에 반응하는 감정의 캔버스에
보다 활성화된 생명현상의 상징화를 수시로 그려내고 있다.
꿈은 현실과 이상을 동시적으로 한데 아우르며 그려내는 개인의 신화이며
공통적으로 유사한 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 속에서는 집단적인 신화를 형성한다.
현실의 체험에서 잉태된 꿈은 이상이나 희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체험이 심리의 저변에 가라앉힌 불활성 침전물을
상징의도의 막대기로 휘젓는 현상이다.
꿈은 그 휘저음을 통해 불협화음의 개별성에서 나아가
협화음의 공유성을 형성하려는 일종의 상징체계이다.
꿈은 삶의 한계와 가능성을 아우르는 현상으로 삶을 결실화하려는 고군분투의 과정이다
인간은 모든 생명이 꿈을 꾸거나 간직하고 있다고 믿으며
그러한 믿음을 촉발시키는 꿈은 모든 신화의 어머니이자
동시에 현실을 변화시키며 역사를 만들어 내는 척도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의식이 체험한 바를
그 이전의 평온한 상황으로 되돌리려는 심리적인 기제이다.
꿈은 지옥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꿈이 지향하는 것은 만상이 평안에 깃들어 있는 정토이다.
어떤 의미에서 삶의 진정한 꿈은
삶 이전의 훼손되지 않고 얼룩지지 않은 대자연에 귀속하는 것일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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