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현대성에 대하여(On Modern Arts)
-나는 아직 주어진 삶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엘리엇 킴)
참예술은 신화의 무수하면서도 가냘픈 패러디가 아니다.
몇 몇 극소수의 참예술은 그 무수한 패러디 너머 인간에게 남겨진 단 한 발자욱을 내딛으며
그 경지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의 풍경을 노래하는 것이다. 즉 미약한 자기개성의 미화를 넘어 인류와 더 나아가 신에게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내재하고 있는 커다란 물음을 제각기 영원 속으로 던지고 있다.
Shakespeare는 첫째로, 인간의 성격과 그 상호관계, 즉 인간은 무엇인가? 라고 강렬하게 양성적으로 묻고 있다. 둘째로, 인간사회의 제도와 갈등의 상황, 즉 사회는 무엇인가? 라고 중성적으로 묻고 있다. 셋째로, 인간과 사회뿐만이 아니라 그 배경에 깃들어 있는 자연의 숨은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라고 음성적으로 묻고 있다. 그는 연극 속에서 등장인물의 성격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정서를 상호자극과 반응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표현했다. 그가 다양한 인간성격을 유형화하고 결과적 행동을 전형화한 것은 기념비적이다. 그는 인류 최초로 인간의 주요한 성격과 행동의 일대일 함수관계를 두루 묘파하여 각각을 전형화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보아 충격적, 급진적, 경이적, 비정상적 요인이 인간성격과 그 실현과정인 행동에 변화를 준다는 점은 깨닫지 못했다. 적어도 그 현대적 결과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동시에 그 당시 시대정신의 소산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달이나 우주선에서 은은함이 감도는 푸른 지구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현대예술의 관점에서, 과학분야의 천착적이면서 방대한 발견들은 인간의 사고와 정서[단순히 성격만이 아닌], 그리고 그 결과의 표출[단순히 행동만이 아닌]을 인과관계로 공식화 할 수 없게 한다. 아직도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점들이 미지의 세계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체계와 질서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가속적인 진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과학-특히 천체물리학과 미시물리학, 핵물리학, 전자기학, 의약학, 생화학, 분자생물학, 로봇-생체공학, 첨단 역학분야 등등-이 세계를 탐구하고 이해하며 표현하려는 인간의 사고와 정서에 미치는 영향력은 고전적인 상상을 초월한다. ‘예술은 정신적 영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라는 말 속에는 변화에 소극적인 정주성(定住性)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세계파악의 변두리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과학의 시대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보통명사화한 아인슈타인, 불확정성의 원리, 체계적인 생화학 작용, 천체물리학의 시각 확대, 등등]은 더 이상 일개 학문으로서의 과학의 문제만일 수는 없다. 과학은 총체적으로 인간을 별종화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도 그러한 과학의 영향성에서 개별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며 그 영향성은 매우 깊다.
Shakespeare는 인간의 주요한 성격과 행동을 고전적으로 유형화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현대인이 아니기에 그의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는 시대의 제약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현대인이 아니기에 과학의 발견과 발명이 가져오는 영향권에 있지 않다. 예술적 관점에서 봤을 때, 과학의 합리적 객관성은 예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술행위를 할 때, 예술가의 내적 주관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 예술의 소재에 국한되었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현대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발명은 나름대로의 예술적 영역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물론 예술의 내적 주관성이 여전히 예술의 근본적 특성으로 변함없이 남아 있겠지만, 과학의 발견이 가져다준 극미와 극대의 세계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예술세계의 내포와 외연을 확장 시켜준다는 점과 그 내포와 외연이 예술의 광대성을 증폭시키고, 숭고성을 고양시키며, 심미성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우리 현대예술인들은 수용해야 한다.
현대과학이 예술에 대한 중대한 영향성은 다음과 같다. 현대과학은 인간이 자연을 더 다양하고 객관적인 안목으로 대하게 한다. 이 점에서 현대인은 더 널리 더 자세히 자연을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영상촬영기법과, 시간과 공간을 조절할 수 있는 영상재현기법을 통해 과거시대의 사람들보다 자연을 더 광대하고 심오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실증적이며 엄밀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고 느끼고 깨닫게 된 것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겠다. 그것은 영상촬영기법의 발전을 통해 인간은 가능한 극대의 세계와 극미의 세계를 지각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멀리 떨어져 있는 성운의 형상들과 블랙홀과 암흑물질, 태양의 흑점과 폭발현상, 달표면의 모습, 태양계 내 혹성들의 근접형상, 미생물들의 모습, 미시세계의 구조체들과 미분적인 속도감, 등등을 통해서 현대인이 느끼는 정서는 과거와는 달리 경이적이며 신선하다.
또 다른 사례는 촬영한 영상의 재현기술이다.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재현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꽃이 개화하는 모습을 오랜 시간에 걸쳐 미속촬영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미속촬영한 대상을 빠르게 재현한 장면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러한 미속촬영의 대상을 순간에 근접하도록 초고속으로 재현한다면 새로운 아름다움의 탄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과거인들은 꽃이 개화하는 과정을 상상할 수는 있었겠지만 시각적으로 빠른 변화라고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꽃이 개화하는 빠르기가 느끼기 힘들만큼 느리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개화의 과정을 거대하면서도 일정한 자연시간의 흐름에 포함된 하나의 현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미속촬영기법으로 꽃의 개화를 목격한 현대인들은 미속촬영의 아름다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미속촬영은 미속촬영만의 새로운 정서를 탄생시킨 것이다. 매우 다양한 현대적 영상기법들은 간접적인 매개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정서들을 다양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 중단.[7:22pm, 4/17(Sun),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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