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예절은 사람을 바르고 자유롭게 한다.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성정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의도를 알려면 그 사람의 언행과 눈빛을 함께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사랑이다. 그 종류는 무수하다. 그것은 모두 사랑이다. 순식간에 타버리는 하룻밤의 풋사랑에서부터 바보같은 사랑, 우아하고 고귀한 사랑, 영혼의 교감에 의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사랑이면서 사랑 아닌 것은 없다. 사랑은 넓은 사고와 감성 그리고 행위의 한 원 안에 들어 있다. 그것은 하나로 포착된 대상에 대한 지향적 열망, 감성의 집중이다. 사랑을 느낄 때 사람은 비로소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혼불의 실재를 느끼고 깨달으며 대상에 대한 목마른 그리움에 젖게 된다. 그 때 나와 대상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에 대해 직관과 통찰의 힘이 형성되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는 마음의 작용이 무언가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 시간성은 찰나에서부터 영원까지 다양하다.
*1 사회의 형성의 근본은 필요성이다. 심지어 가족집단의 형성도 유전적 세대계승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짐승 중에 혼자 사는 것도 있는데 사회를 이루면 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 경우 경쟁의 격화만 초래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저 홀로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누대에 걸친 반복의 체험이 사회생활을 본능적으로 꺼리게 했거나 또는 먹이를 혼자서 독차지하는 강한 욕구가 사회의 필요성을 아예 압도했거나 아니면 아직 사회생활의 필요성을 진화론적으로 미처 체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거의 필요에 의해 마치 필수품처럼 사람을 만나거나 선택한다. 그것은 각박하고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경쟁이 격화되어 가기 때문이다. 사람을 쇼핑하는 것이다. 단지 사람들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물류의 집합지인 슈퍼마켓같은 대량집결장소가 그때 그때의 상황과 기분과 편의에 맞게 다종다양한 공간들, 예로 영화관, 카페, 레스토랑, 바, 아베크족을 위한 바닷가 산책로, 호텔, 둘 중의 한 집 등등으로 분화되어 있을 뿐이다. 사람의 본성은 동물이다. 거기에 진화의 변이적 요소들, 예를 들면 이성, 감성, 지성, 눈물, 신에 대한 지향 등등, 간단히 말해서 동물과 다른 여러 정신적이고 심미적인 특질들이 부가되고 발전된 것이지 그 부수적인 요소가 본성을 지우고 주객전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행동에서 우리는 확연하게 그러한 현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의 근본은 동물이다. 만물의 영장은 역시 동물인 것이다. 생존을 위한 필요가 보다 더 진화되어 정신적 물질적으로 돌발적이고 급전적인 요소가 가급적 배제된, 품위 있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부와 명예의 바벨탑을 끊임없이 쌓아 올리려는 시지푸스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짐승은 먹이에 배가 부르면 낮잠을 즐긴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인간은 만족을 모르고 계속적인 만족을 위해 일과 씨름한다. 그것은 진화의 정신적 요소가 지나치게 발전한 결과인 것이다. 진화의 정점을 넘어선 나머지 뿔이 앞으로 지나치게 휘어 말린 산양의 그것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필요를 넘어선 것이다.
*2 문명화된 인류가 과학을 매개로 지향하는 이러한 진로는 어느 정도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핵폭탄과 인간복제,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대중에게 매스컴과 교육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주입시키고 조장하는 국가와 종교의 편협성, 세계복지에 대한 무관심 또는 체념적이고 자기위안적인 선진부국민들의 방관, 유력한 국가의 잠재적 전사인 호전적 매파 정치인들(내부의 에너지가 팽창적인 미국의 경우 이러한 잠재적 전사들이 군수산업자들 및 정보부서와 결탁하여 끊임없이 위기와 분쟁을 조장하고 10여 년을 주기로 전쟁을 직접 일으키거나 타 세력 간의 전쟁을 부추긴다.), 환경오염의 악화와 생태계의 파괴, 각종 병원체의 면역력 강화와 치유하기 힘든 질병의 창궐 가능성, 대다수 민중의 개별이익 지향적 우민화 등등에 비추어 세계인의 진로가 평탄하지는 않을 것임을 우리는 추정할 수 있으며 만일 지구에서 주요 세력집단 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상상의 극단을 넘어서는 것이 될 것이며 편가르기로 유례없는 종말적 세계대전이 될 것이다. 다만 국지전 위주로 분쟁이 발생해 왔던 것은 20세기 전반에 있었던 1,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이 아직도 일부 생존하고 있는 참전자를 포함해서 세계인의 뇌리에 하나의 반면교사적인 억압적 심리기제로 유효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3 그러면 이러한 인간의 속성에 대한 예방책은 무엇일까? 사회주의적 복지국가의 개념이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소득세의 적절한 징수로 지나친 자본편중을 막고 어느 정도 이상은 돈을 벌지 못하도록 간접적으로 제약하되 그 상한선에 근접하거나 도달한 사람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최고로 존중받도록 하는 풍토를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마음에 배게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돈을 소유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모두가 우러러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관습을 형성하고 이러한 사람들에게 국가적 훈장이나 작위를 제정하여 수여하고 국가의 경제정책결정에 자문을 할 수 있는 상설기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 국가단위의 혹은 범세계적으로 봤을 때 부는 어느 정도밖에 흔들리지 않는 골과 봉을 지닌 상한선이 있다. 그것은 제한되어 있어서 누군가 그 돈을 상한선을 넘어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다른 사람들이 상대적인 박탈감과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모두가 곤궁하지 않은 삶을 살도록 보장해 주는 것, 그것이 인류사회의 당면목표가 되어야 한다. 기존의 선진국은 이러한 원리에 근접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신개발국가나 저개발국가는 이러한 논리가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 실례로 동아시아나 동남아 국가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싱가포르만이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유능한 단 한 명의 지도자인 이광요 전 싱가포르총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생존해서 국가를 계속 이끌어 갔다면 그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진정한 사회복지국가를 이루고자 하는 소명의식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고독한 역사적 인간형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대다수 서구국가와 다른 점은 상명하복의 봉건적 전통의 정신사(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선사시대부터 미개한 선주수렵인인 조몬인을 도래인의 선조인 야요이인이 축차적으로 정복하는 과정에서 거역할 수 없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역사의 대세를 이루며 불복종시 본보기로 인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관습을 형성)가 면면히 흐르고 있어서 서민의 경우 성실한 직업의식으로 무장하고 최소한의 선진국민형의 삶을 보장해 주고 있는 선에서 계층간 부지불식간의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지배와 피지배의 계층간 의식이 이처럼 뚜렷이 분화되는 선진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그 바로 이웃 국가인 한국처럼 지배층이 정치와 경제를 전유물처럼 독식하면서 법조문 안팎에 편법을 은닉시켜 놓고 일방적 편의와 계획으로 인치를 하고 대다수 국민은 지배계층에 대해 예로부터 변함없이 누적되어 온 불만과 억압심리와 냉소적 태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국가의 존립과 번영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평안한 삶을 위해 각자가 만족하면서 자기 직업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