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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용) 고대의 한국인과 한국어가 바다 건너 일본인과 일본어의 주류가 되었다 -13 년 전에 내달리듯이 쓴 초안을 최근에 퇴고 중

imaginerNZ 2024. 11. 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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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한국인과 한국어가 바다 건너 일본인과 일본어의 주류가 되었다 -13 년 전에 내달리듯이 쓴 초안을 최근에 퇴고 중

일본어는 살아 있는 古한국어의 화석언어에 가장 가깝다
현대 한국어 중에 제주방언은 일본어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통일신라 시대 이후의 한국어는 중국문자의 영향으로 음독을 위주로 하여 간략화,축약화하는 일방향으로 변모했다

한자의 축약성을 중시하여 한자어와 한국어의 일대일 음가대응을 하다보니 원래 고대 한국어에는 없었던 불필요한 받침음과 이중 받침 위주의 발음이 생성되었고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을 때에 받침 문화가 전반적으로 한글에 반영되었고 이후 일본 강점기에 국어학자들이 받침의 도입을 주도했다

고대 한어는 읽기 위주로 물 흐르듯 발언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도 제주방언에서는 밟다를 발브다, 짧다를 짤브다, 곪다를 골므다, 굶다를 굴므다, 밝다를 발그다, 갉다를 갈그다, 등으로 발음한다

그러나 옳다를 올흐다로, 닳다를 달흐다로 발음하지는 않으나 아득히 오래전에는 현대 몽골어에서 'ㅎ'발음이 자주 쓰이듯이 한어도 올흐다, 달흐다로 말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어에서 'ㅎ' 발음은 일차적으로 '여린 ㅎ'(> 'ㅇ')으로 변했고 이어서 일부는 이중받침의 말음으로 편입되었거나 대부분은 아예 사라졌을 것이라는 추론을 해본다

어쨌든, 이런 'ㅎ'발음의 탈락 또는 이중받침의 말음에 맹장꼬리처럼 흔적이 남아있는 현상들은 한 언어의 고유성 보존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언어적 비극이라 할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한반도가 반도의 특성상 중국의 힘과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만큼 반도 한어는 중국어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 여파로 현대 한국어의 언어적 정체성은 압도적으로 많은 한자어와 잔존하고 있던 한글의 고유성이 혼합되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국명이나 지명, 그리고 명사에 대한 한자화된 축약적 표현이 일반화되어 있고
이를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로 환원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태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순우리말을 복원하는 노력이 향후 누대에 걸쳐 꾸준히 지속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한편, 일본어가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시대와 그 이후까지 단속적으로 바다를 건너간
고대 한반도 동남부 지역민들의 방언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후 북방에서 내려온 부여족[현재 러시아의 바이칼 호 인근에 거주하는 부리아트(부르앗/불앗)계로 만주지역으로 남하하여 만주 일대에 자리잡은 부족]과 중국 동부 연안의 동이족이 벼농사 문화를 지니고 발해만 연안을 따라서 혹은  발해만을 건너 한반도로 유입하였다
이 시대는 기원전 수 천년~수 백년 동안이었고 이 시대의 후기에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일본으로의  이주 규모가 어느 정도 확대되었다

이로 인한 한반도로의 단속적 진입과 그로 인한 이주민과 선주민 간의 알력으로 인한 압력과 뒤이은 패전과 축출의 비운을 간직한 채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도해인들('바다를 건너 간 사람들'로  일본 측에서는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란 뜻의 도래인들)이 북큐슈(키타 큐슈)와 혼슈의 서남해안 일대에 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 초기 야마토 지역의 가야 한어를 사용하던 주민과 그 이후 에 도해한 마한의 근거지였던 서남해안과 다도해 출신 거주민과
혼슈 동해안의 이즈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신라 한어 사용민들 등에 의해 반도 한어는 서일본 전역으로 펴져 나갔다)

이 한반도로부터의 축출과 이탈의  엑소더스 시기의 전기에는 반도 동남부의 가야인들에 뒤이어
전라남도 연안과 다도해의 섬들에 거주했던 마한지역의 거주민들이 지리적 이점으로 일본으로 도해를 많이 했고 그 이후에 여기에 더해 고조선 멸망의 유민이 서일본 지역의 큐슈와 혼슈의 서부지역에 유입되었고 그 이후 이 지역에 흩어져 있었던 자매 부족국들과 본토의 친인척들 간의 왕래와 교류가 지속되었고 특히나 마한 방언이 서일본 특히 큐슈 지역에 선착한 가야 방언과 사용 지역을 달리하며 함께 사용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 점은 마한지역과 서일본 양쪽 지역에서의 장고형 무덤의 발견과 부장품의 출토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시대의 최후기에는 현재의 충청, 전라지역의 지배층 언어였던 부여 계통의 백제어가 일본 기내 지역 백제계 지배층에 의해 꾸준히 사용되다가 백제 멸망기에 대폭적인 백제인들의 일본 도해로
일본 지배층 표준어의 근간이 되었다

물론 고대 일본에는 소수 선주민의 언어와 교잡의 정도를 달리하며 열도 삼한어와 부여계 백제어와 고구려어의 여러방언들이 존재했고 이 언어들도 서로간에 그리고 토착 고일본어와의 복잡한 교직작용을 거치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의 형성과정에는 핵심적인 세 가지 언어형태가 존재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구석기 시대 한반도의 최선착 주민이 사용했던 고한국어다
아마도 이들은 수십만 년~수만 년  전에 한반도에 이미 들어와 토착해있던 소수 단신인들의 언어로 추정된다

둘째로, 그 이후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변에 거주했던 비교적 장신의 구석기인들이 간빙기 때마다 남하를 했고
그 일족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수렵채취 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이들의 언어는 부여계 언어다

셋째로, BC 7000년 전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홍산문화에서 비롯된 고조선에서 사용했던 고조선어다
이 언어는 홍산문화와 주구점문화를 일으킨 동이족이 오래전부터 거주했던 광대한 지역(중국 양자강 이북의 폭넓은 해안선 지역(현재의 산동성과 인접한 해안과 그에 가까운 내륙지역)에서 발해만 연안을 따라 동남하한 벼농사 문화인들이다
이들의 언어는 동이족 언어로 멀리 인도의 타밀어와 벼농사 문화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흥미로운 사실은 필자의 제주도 사투리 어감으로 일본어의 발음을 나름대로 해석해보면
한 뿌리의 언어라는 것을 많은 사례로 뚜렷이 느끼고 확인할 수 있다
반도 한어와 열도 한어인 일본어 간의 음상의 차이는 서로 상대방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부분의 일본어가 한국어로 해독 가능한 편이나 일본어의 일부 어휘나 표현들은 한국어로도 해독하기 힘든 경우도 존재한다

그 이유를, 신석기 시대 전후부터 야요이 문명 이전까지 서해가 얼어붙었던 빙하기에 중국 대륙의 동남부에서 빙판을 건넜거나, 대만, 필리핀에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남방계 이주민들이 이미 일본에 소수의 수렵채집인들로 토착해 있었고 이런 고일본어의 발음이 일본어의 기저에 일정 부분(추정적으로 일본어의 10%~20%) 배어있기 때문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한편, 일본어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홋카이도와 일본의 중북부 동일본 지역에 주로 거주했던 아이누족만이 일본의 선주민이라는 주장은 반쪽의 사실이다

일본 중남부인 서일본지역과 시코쿠, 큐슈 지역에는 한반도 남부 해안에 살았던 고한국인과 중국 남부, 대만, 필리핀에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올라와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살던 단신에 얼굴이 작고 동그란  부족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일본인들 중에 키가 작고 얼굴이 작고 동그란 사람들의 후손이 지금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현대 한반도인들과 비교해보면 신장과 외모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그 이후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 문명 이전에 일본 전역의 총인구수는 삼한시대부터 시작된 수차례의 한반도 대량 엑소더스의 인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압도적 다수를 점하게 되었으나 문제는 이 엑소더스가 수차에 걸쳐 이루어지면서도 토착민들이 사용하던 고일본어의 베이스를 완전히 사멸시킬 만큼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기보다 반도 한어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면서도 남방계 고일본어의 지역 명칭과 일상적 단어들이 그 이후 일본어를 형성하는데 어느 정도 배어들었고
그 결과로 지금처럼 상호 언어학습자에게 야릇한 차이가 때로는 근본적인 차이로 잘못 여겨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인이 일본어를 접할 때 느껴지는 이질감은 고한국어와 몇천 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멀어진 후손들이 고한국어에 느끼는 그 이질감보다 더 동질적이다 적은 이질감의 차이는 확연히 느껴지나 그보다 더 큰 동질감은 그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필자의 생각으로
현대 일본어는 80~90%의 고한국어와 10~20% 정도의 남방계 고일본 선주민어가 배합된 것으로 판단된다

특이한 점은, 아이누족 언어가 현대 일본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이누족은  반도 이주민(도래인)이나 남방계 선주민들과 외모와 언어 면에서 화합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연히 차이가 났고 그런 연유로 "에미시(짐승 같은 인간)"로 불리며 극히 배척당하고 북부로 밀리고 쫓겨나게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수천 년 전, 심지어 수만 년 전의 고한국어, 고일본어를 듣고 적지않은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과 야요이 시대 이후의 반도 한어인 일본어를  
어렴풋이 들으며 우리는 마음 깊이 느끼고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한일인들이 누구나 예외없이 공통조상의 묘앞에 옷깃을 여미고 함께 서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대 일본어의 주류가 고대 한반도 남부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말의 후손격으로
역사를 관류하는 한국어의 통시공적 관점에서 보면
완전한 구어체라는 사실이다
극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현대 일본어의 뿌리에는 문어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일본어의 어원을 밝혀 보면 순전한 구어체이기에
품격 있는 언어의 느낌이 들지 않는 반면에
서민적이고 구수한 남도 방언이 배어있다

필자는 오래전 청소년기에 어쩌다 포착된 일본 큐슈지역의 TV를 시청하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일본어를 모르는 내가 남녀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문득 문득 이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묘한 언어 -경상남도 사투리의 억양과 발음을 주된 기반으로
현재의 전라남도 남부에 해당하는 옛 마한지역 사투리와 충청도 특유의 끝이 늘어지듯 끈끈하면서 부드러이 넘어가는 듯한 어투를 교직적으로 섞어가며 말을 하는 듯했다
듣는 내 입장에서는 한반도 동남부의 가야지역어를 주음으로 중남부의 세 가지 사투리가 섞여 있다는 판단을 후감으로 파악했지만
직관적으로 들으면 그 대화는 다름아닌 한국의 고언어에 해당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그 이상야릇하면서도 더없이 친근한 느낌이 드는 말투, 거침없는 서민의 말투,
아예 격식은 아랑곳없이 대놓고 말하는 듯한 말투,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끼리 이웃끼리 혹은 친구끼리 마치 저지르는 듯 내뱉는 말투, 차라리 너무 친근하여 그토록 허물없어 차라리 상스러운 말투,
이것이 바로 한반도 남부의 고한국어의 화석이 아니고 그밖에 어떤 말일 수 있을까?
적어도 그 대화를 듣는 순간에는 어떤 학문적 혹은 언어적 상상력은 전혀 불필요했다.  

고대 한국어의 직계언어가 일본어임과
고대 한국인의 바다 건너 자손이 일본인임은
일본의 일부 극우인들이 아무리 조작하고 왜곡하고 발버둥을 치며 부인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한일간에 불변의 역사다
진정한 역사적 사실은 말없이 숨김없이 끝없이 제자리에 있으며
빙산의 일각 아래 잠긴 기저부의 본모습이 풍파에 이따금씩 뒤척이며 가감없이 드러나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불행하게도 현대 일본인들은 열도 한어(일본어)에 속하는 단어와 표현들의 어원을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 한다 왜냐하면 가야계 왕족을 이어받은 가야-백제 혼혈로서 백제계인 계체왕 이후로 일본을 통치했던 백제계 왕족과 귀족들은 멸망한 국가인 백제의 자손으로 일본을 통치할 명분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이들은 정권의 상실을 두려워하여 한반도에 남아 있는 조상의 묘역을 그리워하면서도 정권을 안정화하고 후대의 평안을 위해 조상에 대한 참회의 눈물을 머금은 채 천손강림 신화를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강요에 의해 이뤄진 이 불가피한 과정의 인위성은 한반도와의 정치적, 언어적으로 처절한 단절을 낳았고 이로 인해 현대 일본인들은 자신의 언어의 모계성을 완전히 상실하는 결과의 희생양이 되고 만 셈이다

대표적 사례로 조상땅의 백제가 멸망한 이후의 슬픔 속에 인위적 단절과 망각 속에 새출발의 시대인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후반까지의 시(와카)를 모아 놓은 만엽집(만요슈:20권 4000여 수)에 대한 후대 일본인 연구가들에 의해 조작된 요상하리만치 어색한  견강부회식 해석이 이 모계어 단절의 희화화된 비극을 시 한 수 한 수의 현대적 해석마다 낱낱이 입증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왕을 천지창조의 신화로 꾸며 신격화한 사실을 맹종하며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더 나아가 이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의 극우 무리들은
자신의 뇌를 형성하고 있는 조상의 정신과
몸 속에 생생히 흐르고 있는 조상의 혈통을 부인하고
멀어진 조상의 정기와 봉분을 부인하며 더 나아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점은 이 극우 정치인들이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에까지 침범하여 조작된 역사를 어린 학생들에게 강제로 주입하고 있다는 경악할 사실이다

어쨌든, 결국 역사의 진실은 서서히 드러날 것이고
그에 따라 그들의 치기어린 언행은
역사상 어느 한 시기의 부질없는  풍조로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소리없이 묻히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일부 극우 일본인들은 만-한-일에 거주했던 공통조상의 제례의식에 참여하여 조상의 얼과 언어를 헤아리고 존숭하며 참배하려는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 하고 있는 듯 하다.
(201107111008>2024년 10월 31일부터 퇴고 중)
일본어는 살아 있는 古한국어의 화석언어에 가장 가깝다
현대 한국어 중에 제주방언은 일본어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통일신라 시대 이후의 한국어는 중국문자의 영향으로 음독을 위주로 하여 간략화,축약화하는 일방향으로 변모했다

한자의 축약성을 중시하여 한자어와 한국어의 일대일 음가대응을 하다보니 원래 고대 한국어에는 없었던 불필요한 받침음과 이중 받침 위주의 발음이 생성되었고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을 때에 받침 문화가 전반적으로 한글에 반영되었고 이후 일본 강점기에 국어학자들이 받침의 도입을 주도했다

고대 한어는 읽기 위주로 물 흐르듯 발언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도 제주방언에서는 밟다를 발브다, 짧다를 짤브다, 곪다를 골므다, 굶다를 굴므다, 밝다를 발그다, 갉다를 갈그다, 등으로 발음한다

그러나 옳다를 올흐다로, 닳다를 달흐다로 발음하지는 않으나 아득히 오래전에는 현대 몽골어에서 'ㅎ'발음이 자주 쓰이듯이 한어도 올흐다, 달흐다로 말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어에서 'ㅎ' 발음은 일차적으로 '여린 ㅎ'(> 'ㅇ')으로 변했고 이어서 일부는 이중받침의 말음으로 편입되었거나 대부분은 아예 사라졌을 것이라는 추론을 해본다

어쨌든, 이런 'ㅎ'발음의 탈락 또는 이중받침의 말음에 맹장꼬리처럼 흔적이 남아있는 현상들은 한 언어의 고유성 보존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언어적 비극이라 할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한반도가 반도의 특성상 중국의 힘과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만큼 반도 한어는 중국어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 여파로 현대 한국어의 언어적 정체성은 압도적으로 많은 한자어와 잔존하고 있던 한글의 고유성이 혼합되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국명이나 지명, 그리고 명사에 대한 한자화된 축약적 표현이 일반화되어 있고
이를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로 환원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태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순우리말을 복원하는 노력이 향후 누대에 걸쳐 꾸준히 지속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한편, 일본어가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시대와 그 이후까지 단속적으로 바다를 건너간
고대 한반도 동남부 지역민들의 방언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후 북방에서 내려온 부여족[현재 러시아의 바이칼 호 인근에 거주하는 부리아트(부르앗/불앗)계로 만주지역으로 남하하여 만주 일대에 자리잡은 부족]과 중국 동부 연안의 동이족이 벼농사 문화를 지니고 발해만 연안을 따라서 혹은  발해만을 건너 한반도로 유입하였다
이 시대는 기원전 수 천년~수 백년 동안이었고 이 시대의 후기에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일본으로의  이주 규모가 어느 정도 확대되었다

이로 인한 한반도로의 단속적 진입과 그로 인한 이주민과 선주민 간의 알력으로 인한 압력과 뒤이은 패전과 축출의 비운을 간직한 채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도해인들('바다를 건너 간 사람들'로  일본 측에서는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란 뜻의 도래인들)이 북큐슈(키타 큐슈)와 혼슈의 서남해안 일대에 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 초기 야마토 지역의 가야 한어를 사용하던 주민과 그 이후 에 도해한 마한의 근거지였던 서남해안과 다도해 출신 거주민과
혼슈 동해안의 이즈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신라 한어 사용민들 등에 의해 반도 한어는 서일본 전역으로 펴져 나갔다)

이 한반도로부터의 축출과 이탈의  엑소더스 시기의 전기에는 반도 동남부의 가야인들에 뒤이어
전라남도 연안과 다도해의 섬들에 거주했던 마한지역의 거주민들이 지리적 이점으로 일본으로 도해를 많이 했고 그 이후에 여기에 더해 고조선 멸망의 유민이 서일본 지역의 큐슈와 혼슈의 서부지역에 유입되었고 그 이후 이 지역에 흩어져 있었던 자매 부족국들과 본토의 친인척들 간의 왕래와 교류가 지속되었고 특히나 마한 방언이 서일본 특히 큐슈 지역에 선착한 가야 방언과 사용 지역을 달리하며 함께 사용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 점은 마한지역과 서일본 양쪽 지역에서의 장고형 무덤의 발견과 부장품의 출토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시대의 최후기에는 현재의 충청, 전라지역의 지배층 언어였던 부여 계통의 백제어가 일본 기내 지역 백제계 지배층에 의해 꾸준히 사용되다가 백제 멸망기에 대폭적인 백제인들의 일본 도해로
일본 지배층 표준어의 근간이 되었다

물론 고대 일본에는 소수 선주민의 언어와 교잡의 정도를 달리하며 열도 삼한어와 부여계 백제어와 고구려어의 여러방언들이 존재했고 이 언어들도 서로간에 그리고 토착 고일본어와의 복잡한 교직작용을 거치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의 형성과정에는 핵심적인 세 가지 언어형태가 존재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구석기 시대 한반도의 최선착 주민이 사용했던 고한국어다
아마도 이들은 수십만 년~수만 년  전에 한반도에 이미 들어와 토착해있던 소수 단신인들의 언어로 추정된다

둘째로, 그 이후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변에 거주했던 비교적 장신의 구석기인들이 간빙기 때마다 남하를 했고
그 일족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수렵채취 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이들의 언어는 부여계 언어다

셋째로, BC 7000년 전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홍산문화에서 비롯된 고조선에서 사용했던 고조선어다
이 언어는 홍산문화와 주구점문화를 일으킨 동이족이 오래전부터 거주했던 광대한 지역(중국 양자강 이북의 폭넓은 해안선 지역(현재의 산동성과 인접한 해안과 그에 가까운 내륙지역)에서 발해만 연안을 따라 동남하한 벼농사 문화인들이다
이들의 언어는 동이족 언어로 멀리 인도의 타밀어와 벼농사 문화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흥미로운 사실은 필자의 제주도 사투리 어감으로 일본어의 발음을 나름대로 해석해보면
한 뿌리의 언어라는 것을 많은 사례로 뚜렷이 느끼고 확인할 수 있다
반도 한어와 열도 한어인 일본어 간의 음상의 차이는 서로 상대방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부분의 일본어가 한국어로 해독 가능한 편이나 일본어의 일부 어휘나 표현들은 한국어로도 해독하기 힘든 경우도 존재한다

그 이유를, 신석기 시대 전후부터 야요이 문명 이전까지 서해가 얼어붙었던 빙하기에 중국 대륙의 동남부에서 빙판을 건넜거나, 대만, 필리핀에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남방계 이주민들이 이미 일본에 소수의 수렵채집인들로 토착해 있었고 이런 고일본어의 발음이 일본어의 기저에 일정 부분(추정적으로 일본어의 10%~20%) 배어있기 때문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한편, 일본어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홋카이도와 일본의 중북부 동일본 지역에 주로 거주했던 아이누족만이 일본의 선주민이라는 주장은 반쪽의 사실이다

일본 중남부인 서일본지역과 시코쿠, 큐슈 지역에는 한반도 남부 해안에 살았던 고한국인과 중국 남부, 대만, 필리핀에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올라와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살던 단신에 얼굴이 작고 동그란  부족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일본인들 중에 키가 작고 얼굴이 작고 동그란 사람들의 후손이 지금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현대 한반도인들과 비교해보면 신장과 외모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그 이후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 문명 이전에 일본 전역의 총인구수는 삼한시대부터 시작된 수차례의 한반도 대량 엑소더스의 인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압도적 다수를 점하게 되었으나 문제는 이 엑소더스가 수차에 걸쳐 이루어지면서도 토착민들이 사용하던 고일본어의 베이스를 완전히 사멸시킬 만큼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기보다 반도 한어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면서도 남방계 고일본어의 지역 명칭과 일상적 단어들이 그 이후 일본어를 형성하는데 어느 정도 배어들었고
그 결과로 지금처럼 상호 언어학습자에게 야릇한 차이가 때로는 근본적인 차이로 잘못 여겨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인이 일본어를 접할 때 느껴지는 이질감은 고한국어와 몇천 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멀어진 후손들이 고한국어에 느끼는 그 이질감보다 더 동질적이다 적은 이질감의 차이는 확연히 느껴지나 그보다 더 큰 동질감은 그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필자의 생각으로
현대 일본어는 80~90%의 고한국어와 10~20% 정도의 남방계 고일본 선주민어가 배합된 것으로 판단된다

특이한 점은, 아이누족 언어가 현대 일본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이누족은  반도 이주민(도래인)이나 남방계 선주민들과 외모와 언어 면에서 화합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연히 차이가 났고 그런 연유로 "에미시(짐승 같은 인간)"로 불리며 극히 배척당하고 북부로 밀리고 쫓겨나게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수천 년 전, 심지어 수만 년 전의 고한국어, 고일본어를 듣고 적지않은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과 야요이 시대 이후의 반도 한어인 일본어를  
어렴풋이 들으며 우리는 마음 깊이 느끼고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한일인들이 누구나 예외없이 공통조상의 묘앞에 옷깃을 여미고 함께 서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대 일본어의 주류가 고대 한반도 남부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말의 후손격으로
역사를 관류하는 한국어의 통시공적 관점에서 보면
완전한 구어체라는 사실이다
극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현대 일본어의 뿌리에는 문어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일본어의 어원을 밝혀 보면 순전한 구어체이기에
품격 있는 언어의 느낌이 들지 않는 반면에
서민적이고 구수한 남도 방언이 배어있다

필자는 오래전 청소년기에 어쩌다 포착된 일본 큐슈지역의 TV를 시청하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일본어를 모르는 내가 남녀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문득 문득 이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묘한 언어 -경상남도 사투리의 억양과 발음을 주된 기반으로
현재의 전라남도 남부에 해당하는 옛 마한지역 사투리와 충청도 특유의 끝이 늘어지듯 끈끈하면서 부드러이 넘어가는 듯한 어투를 교직적으로 섞어가며 말을 하는 듯했다
듣는 내 입장에서는 한반도 동남부의 가야지역어를 주음으로 중남부의 세 가지 사투리가 섞여 있다는 판단을 후감으로 파악했지만
직관적으로 들으면 그 대화는 다름아닌 한국의 고언어에 해당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그 이상야릇하면서도 더없이 친근한 느낌이 드는 말투, 거침없는 서민의 말투,
아예 격식은 아랑곳없이 대놓고 말하는 듯한 말투,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끼리 이웃끼리 혹은 친구끼리 마치 저지르는 듯 내뱉는 말투, 차라리 너무 친근하여 그토록 허물없어 차라리 상스러운 말투,
이것이 바로 한반도 남부의 고한국어의 화석이 아니고 그밖에 어떤 말일 수 있을까?
적어도 그 대화를 듣는 순간에는 어떤 학문적 혹은 언어적 상상력은 전혀 불필요했다.  

고대 한국어의 직계언어가 일본어임과
고대 한국인의 바다 건너 자손이 일본인임은
일본의 일부 극우인들이 아무리 조작하고 왜곡하고 발버둥을 치며 부인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한일간에 불변의 역사다
진정한 역사적 사실은 말없이 숨김없이 끝없이 제자리에 있으며
빙산의 일각 아래 잠긴 기저부의 본모습이 풍파에 이따금씩 뒤척이며 가감없이 드러나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불행하게도 현대 일본인들은 열도 한어(일본어)에 속하는 단어와 표현들의 어원을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 한다 왜냐하면 가야계 왕족을 이어받은 가야-백제 혼혈로서 백제계인 계체왕 이후로 일본을 통치했던 백제계 왕족과 귀족들은 멸망한 국가인 백제의 자손으로 일본을 통치할 명분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이들은 정권의 상실을 두려워하여 한반도에 남아 있는 조상의 묘역을 그리워하면서도 정권을 안정화하고 후대의 평안을 위해 조상에 대한 참회의 눈물을 머금은 채 천손강림 신화를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강요에 의해 이뤄진 이 불가피한 과정의 인위성은 한반도와의 정치적, 언어적으로 처절한 단절을 낳았고 이로 인해 현대 일본인들은 자신의 언어의 모계성을 완전히 상실하는 결과의 희생양이 되고 만 셈이다

대표적 사례로 조상땅의 백제가 멸망한 이후의 슬픔 속에 인위적 단절과 망각 속에 새출발의 시대인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후반까지의 시(와카)를 모아 놓은 만엽집(만요슈:20권 4000여 수)에 대한 후대 일본인 연구가들에 의해 조작된 요상하리만치 어색한  견강부회식 해석이 이 모계어 단절의 희화화된 비극을 시 한 수 한 수의 현대적 해석마다 낱낱이 입증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왕을 천지창조의 신화로 꾸며 신격화한 사실을 맹종하며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더 나아가 이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의 극우 무리들은
자신의 뇌를 형성하고 있는 조상의 정신과
몸 속에 생생히 흐르고 있는 조상의 혈통을 부인하고
멀어진 조상의 정기와 봉분을 부인하며 더 나아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점은 이 극우 정치인들이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에까지 침범하여 조작된 역사를 어린 학생들에게 강제로 주입하고 있다는 경악할 사실이다

어쨌든, 결국 역사의 진실은 서서히 드러날 것이고
그에 따라 그들의 치기어린 언행은
역사상 어느 한 시기의 부질없는  풍조로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소리없이 묻히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일부 극우 일본인들은 만-한-일에 거주했던 공통조상의 제례의식에 참여하여 조상의 얼과 언어를 헤아리고 존숭하며 참배하려는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 하고 있는 듯 하다.
(201107111008>2024년 10월 31일부터 퇴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