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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 이후 조문 행렬은 더욱 길어졌다. 조문객들이 평균 10분 이상 기다려야 조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빈소를 찾았다.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오후 9시 현재 조문객은 5000명이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김근태 상임고문과 고등학교·대학교 1년 선후배 사이라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대학 진학 때도 경제학을 전공하라고 (김 상임고문이) 강권해서 공부하게 됐다"며 "좀 더 사셔서 공평한 사회를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며 애도를 표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큰 별이 지셨다, 온 국민과 함께 애도를 표한다"며 "민주주의를 향한 헌신의 삶과 대한민국을 위한 공헌은 역사로 남을 것이다, 그 뜻을 후배들과 계승시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빠진 '나꼼수(나는 꼼수다)' 팀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주진우 <시사인> 기자, 김용민 시사평론가도 조문을 위해 빈소를 찾았다. 이들을 맞이한 것은 정 전 의원의 부인 송지영씨다. 송씨는 "몇 년 전 설에 우리를 부르셔서 술 따라 주시고 했던 기억이 난다"며 "비통한 마음으로 여기 왔다, 제일 큰 형님이 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도 자신을 면회 온 안민석 민주통합당 의원을 통해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김 상임고문의) 뜻을 받아 좋은 정부를 되찾겠다, 편하게 쉬시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조문 후 식사까지 마친 나꼼수 팀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도 홀연히 자리를 떴다. 김용민 시사평론가만 "민주주의의 철학과 신념을 지킨 어른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며 짤막하게 입장을 밝혔다.
이 외에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문성근 국민의 명령의 대표,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빈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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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신 보강 : 30일 오후 7시 50분]
안철수 "우리 모두 김근태에 빚졌다"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빈소를 방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이렇게 보내드리기에는 우리 모두 너무 많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라고 애도했다.
안 원장은 여느 조문객처럼 줄 서서 기다렸다가 조문했다. 기존 정치권이나 민주화 운동 진영 인사들의 조문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지만, 안 원장의 조문은 다소 이례적이었다. 생전에 김 상임고문과 안 원장이 어떤 인연을 갖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김 상임고문이 '민주화 진영과 진보 진영의 유일한 가교'로 불릴 만큼 대표성을 띄고 있어, 대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안 원장이 김 상임고문에 대한 조문을 통해 민주·진보 진영과 접촉을 넓히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안 원장은 최근 햇볕정책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학자들과 접촉해 통일정책 구상을 다듬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이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안 원장은 영정 앞에서 헌화하고 유족을 위로한 것 외에는 침묵을 지켰다. 조문 뒤 접견실에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유인태 전 의원 등과 인사를 나눴지만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취재진은 조문을 마친 안 원장에게 평소 고인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안 원장의 조문이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 등을 물었지만 안 원장은 30여 초 가량 묵묵부답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적절하지 않은 자리"라는 말만 남긴 채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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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원장뿐 아니라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경철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도 연이어 빈소를 찾았다. 김 상임고문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반도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던 박경철 원장은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오래전부터 존경하는 분이었다. 많은 분들이 족적을 기억할 것이고 그 분이 피우신 꽃을 계속 다듬고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고인은) 저희가 살지 못한 길을 가셨고, 평범한 우리들이 각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초석을 놓아주신 분"이라며 "항상 마음에 부채의식을 갖고 있고, 이제는 한 시대의 상징으로 남았다"고 평가했다. 하루 전에도 투병 중인 김 상임의장을 찾아왔던 박 원장은 "지난 8월 말에 도봉구에 일이 있어 찾아 갔다가 뵀을 때는 건강하셨다"며 더욱 안타까워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 상임고문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온몸을 바쳐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사회를 이상적인 상태로 돌리고 정의를 회복하는 일의 지도자"라며 "아직 할 일이 많으신데 아쉽게도 가셔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살아남은 우리들이 고인이 못 다 이룬 민주주의의 꿈을 이룩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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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 박철민씨도 빈소를 찾았다. 정치인 유세에 나서지 않지만 김 상임고문한테만은 유일하게 선거 유세를 도와줬다는 박씨는 "아파트단지에서 유세를 할 때 '시끄럽게 하면 피해보는 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스피커를 쓰지 않고) '생목'으로 유세를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며 "작은 것도 배려하고 약자를 위해 큰 목소리를 내신 분이 가셔서 굉장히 슬프다"고 말했다.
백기완 "이 늙은이가 죽어야 하는데 근태가 먼저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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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이 먼저 가는 걸 하도 많이 봐서일까.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 없이 걸걸했다. 그는 "이 늙은이가 죽어야 하는데 근태가 먼저 죽어 내가 부끄럽다"며 "신자유주의의 폐기를 위해 싸우다가 나도 쓰러지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근태 상임고문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돌아온 직후를 회상하며 "근태가 매 맞고 나왔는데, 나는 그 전에 매를 맞았거든. 내가 그 때 '매를 맞아보니, 매 맞아서 크는 키가 따로 있더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때 근태가 내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던 일이 생각난다"고 했다.
백 선생은 다시 '매맞아 크는 키'에 대해 "연륜의 키가 아니라 역사의 키"라며 "역사적 진보의 축적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화운동의 투사들이 당한 고초가 결국 한 사회의 진보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박희태 국회의장과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빈소를 조문했고, 퇴근시간이 되면서 시민들의 조문이 늘어나 빈소 앞 행렬은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6신: 30일 오후 5시 48분]
말문 떼지 못한 손학규... 조정래 "우린 빨리 철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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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가장 친한 벗을 잃은 슬픔에 쉬이 말문을 떼지 못했다. 기자들 앞에 섰지만 말을 내지 못한 채 뒤돌아 이마만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꺼낸 첫 마디는 "김근태라는 친구를 가진 것이 참 자랑스러웠다, 친구였지만 그는 마음의 스승이었다"였다.
손 전 대표는 "그 올곧은 마음,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정, 항상 어려운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남북이 하나 되는 것을 제일 먼저 생각한 김근태 의장, 우리는 너무 큰 사람을 잃었다"며 "(먼저 간 것이) 야속하다, 김 의장이 못다한 삶을 우리가 지고 이 나라 민주주의·남북평화·통일·함께 잘사는 나라를 이루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어 그는 마지막 길을 가는 김 상임고문을 향해 "고문이 없고 억압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영면하길 빈다"는 말을 남겼다.
근거리에서 김 상임고문과 세월을 함께 한 이들은 "안타까움과 아까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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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과 함께 빈소를 찾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김근태 선배에게 크게 빚졌다"며 "2주 전 문병 갔을 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여사가 통역해준 데 따르면 '야권 통합이 잘되길 바란다'는 뜻이었다, 쾌유를 기대했는데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권 여사와 인 여사가) 금년 3월 권 여사가 봉하에서 혼자 외로우시다는 말씀을 듣고 김근태 선배 내외가 봉하를 방문했다. 노 전 대통령이 종로에서 당선될 때 김 선배가 자신 선거처럼 도왔었는데 그 추억을 회상하며 추모의 마음을 나눴다"고 전했다. 그는 "권 여사는 '김 상임고문이 하실 일이 많이 남았는데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는 마음으로 승용차를 타고 봉하에서부터 먼 길을 오셨다"고 말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2007년 대선 때 김 전 의장은 어렵게 대선 불출마 결정을 했고, 이를 통해 통합의 길이 열렸다"며 "그는 항상 대의를 위해 몸을 던졌다, (김 전 의장이) 힘들 때 봬서 마음에 맺힌다"며 비통해 했다. 김 상임고문과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도 "정치인 중 처신이 가벼운 분이 많은데 그는 무겁고 조심스럽고 신중한 정치인으로 국민 뇌리에 남을 것이다, 참 아깝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 밖에 임채정 전 국회의장과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한화갑 평화민주당 대표도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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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예술계, 정계 인사들 조문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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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밖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고인은 우리를 대신해 오늘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고초를 겪었는데 우리가 그분에게 한 짓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트린 것"이라며 "이런 배신 때문에 빨리 가신 게 아닌가 한다, 우리는 빨리 철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자승 스님은 김 고문의 부인 인재근씨에게 "이 시대의 자유·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크게 노력하신 분인데 안타깝다"며 "조계종단도 슬픔을 같이 하겠다"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빈소를 찾았다. 인씨와 막역한 사이인 현 회장은 인씨에게 "사모님께서 힘 내시고 우뚝 일어나셔야 한다"고 말했고, 인씨는 "북쪽 조문 다녀온 것을 잘 봤다, 수고하셨다"고 답했다. 평소 김 상임고문은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이에 큰 역할을 하는 현 회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의미 깊게 생각해 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큰 별이 진 데 대해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먼저 마음을 내기도 했다. 직접 관을 덮을 '명정표'에 적을 글귀를 쓰겠다고 나선 것. 신 교수는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구'라는 글을 남겼다. 묘비명도 신 교수가 쓸 예정이다. 지역에서도 자발적인 분향소를 열겠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광주민주동지회는 YMCA 무진관에 분향소를 따로 차렸고, 전남대 총학생회도 캠퍼스 내에 분향소를 차렸다. 온라인에도 공식 조문 사이트( www.facebook.com/forevergt )가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이어진 조문은 오후 3시까지 1200명의 조문객이 다녀가는 등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을 폭행했던 한 중년여성이 김 상임고문의 빈소에 찾아와 "김대중·노무현 빨갱이는 물러가라"며 난동을 피우는 일이 발생했다. 그 여성은 관계자들에 의해 곧장 쫓겨났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FTA를 왜 반대하냐, 북한으로 가라"며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
[5신: 30일 오후 3시 47분]
이재오·김성식·원희룡 등 여권 인사들도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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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전 열린우리당 의장) 빈소에는 많은 여권 인사들도 방문해 애도를 표하고 있다. 특히 과거 민주화운동에 몸 담았던 여권 인사들의 회한은 깊었다.
김 상임고문이 위독했던 하루 전날 밤 병원을 방문한데 이어 30일 오후 조문을 위해 빈소를 찾은 이재오 전 특임장관은 "어젯 밤 병상에 있는 김 선생이 생전에 본 마지막이었는데, 그때 가뿐 숨을 몰아쉬며 놓지 않으려 하시는 걸 보고, 지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당시의 의지를 느꼈다"며 "우리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고 통일도 아직 감도 못 잡고 있어서 김 선생이 살아서 할 일이 많은데 먼저 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과 김 상임고문은 80년대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등의 활동을 함께한 민주화운동 동지다. 이 전 장관은 "김 선생과는 개인적으로 남다른 동지애를 갖고 있다. 우리 집 골방에서 며칠 밤을 지내기도 하면서 많은 사연들이 있는데 먼저 보내고 나니 가슴이 아프다"며 "살아남은 사람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게 김 선생의 뜻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김 상임고문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뒤에도 고문 경관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을 때 자신이 도움을 준 일을 기억했다. 김 상임고문이 고문을 당하기 몇 년 전 자신도 고문경관 이근안으로부터 고문을 당한 바 있어 김 상임고문에게 인상착의를 설명받고 고문경관의 이름이 이근안이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는 것.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28 은평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를 언급하면서 "야권에서 김 선생을 향해 은평을에 출마하라는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 선생이 '이재오 동지가 있는 곳인데 내가 거기 어떻게 나가겠느냐'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이 전 장관은 "그 얘길 듣고 참 많이 가슴 아팠다"고 했다.
김성식 "이소선 어머니와 만나 옛일 도란도란 얘기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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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성식 의원은 김 상임고문과는 함께 전민련 활동을 했다. 김 의원은 이날 조문 뒤에도 한동안 빈소를 떠나지 못했다. 그는 "형수(김 상임고문 부인 인재근씨)가 조문을 받지 못할 정도라니 참 걱정"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김 전 고문이) 내게는 형님이고, 형수님과 내 아내가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활동을 같이 했다"며 "올해는 이소선(전태일 열사 모친) 어머니도 떠나고…, 옛 생각이 많이 난다. 두 분(김 상임고문과 이 여사)가 하늘에서 만나 옛 일을 도란도란 얘기하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87년 6월항쟁 당시 김천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던 김 의원은, 거기서 김 상임고문과 같이 지내기도 했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업적은 물론이고 그의 사람됨과 인격이 후배들에게 늘 귀감이 되는 큰 형님이자 동지다. 오랫동안 그의 빈자리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김 상임고문을 평가했다.
학생시절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던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도 빈소를 찾았다. 원 의원은 "한때 민주화운동에 참여할 때 내게 많은 애정을 표현하셨고,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면서 채찍과 격려를 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셨다"고 고인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원 의원은 "2001년 내가 한나라당에 입당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김 상임고문이) 직접 전화를 주셔서 '한 번 더 생각하라' '한나라당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리시던 생각이 난다"고 회상했다.
이날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도 조문했다. 이 의원은 "고인과 국회에 같이 있었고 서로 잘 지냈다"며 "아끼는 분이 돌아가셨다"라고만 했다.
이외의 여권 인사들은 조문 대신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황식 국무총리가 보낸 조화가 빈소에 놓였고,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조화를 보냈다. 박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 뒤 한나라당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깊은 조의를 표하고 명복을 빌겠습니다"라고는 했지만 '조문을 가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4신 : 30일 오후 1시 10분]
김근태 상임고문, 마석모란공원에 묻힌다
김근태 상임고문의 장례는 '민주주의자 김근태 사회장' 이름으로 치르기로 했다. 공동장례위원장에는 김상근 목사와 지선스님, 함세웅 신부가 위촉됐고 장영달·이인영 전 의원과 박선숙 의원이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장례위는 다음 달 2일 추모 문화제를 열기로 했고 조문객들 모두를 장례위원으로 위촉할 계획이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고 장지는 마석 모란 공원으로 결정했다.
장례위원회에서 홍보를 맡은 유은혜 전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은 "모란공원은 조영래 변호사, 전태일 열사, 문익환 목사 등 우리나라 열사들이 계신 곳으로 김근태 의장도 생전에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며 장지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공식 조문이 시작된 이래 조문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상임고문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 받을 때 맞은 편 방에서 고문을 받은 문용식 민주통합당 인터넷소통위원장은 "김근태 고문의 절규를 맞은편에서 들었다,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이겨낸 과정은 초인적 의지였다"고 회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김 상임고문을 고문한) 이근안이 그 때로 가도 그 짓을 하겠다고 하는데 마음이 정말 참담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도 조문을 와 "길은 다르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이였다"며 "따뜻하고 품격있고 의지 강한 분이셨다"며 고인을 평가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독재 치하 고문을 이겨내고 민주주의를 온 몸으로 만들어내신 분이다, 생전에 그렇게나 바랐던 민주주의를 되찾고 국민들이 함께 살아갈 사회 만드는데 통합진보당이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은 "김 상임고문은 민주주의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살아온 분이셨다, 김 고문 가시는 길에 민주주의를 찾아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다짐을 바친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에 출마한 박용진 전 진보신당 부대표는 "김 고문에게 시대의 짐을 너무 많이 짊어지게 해서 죄송하다, 편하셨으면 좋겠고 남은 짐은 후배들이 나눠지고 갈테니 김 고문은 영원한 청년으로 후배 지켜봐주고 격려해 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도 함께했다. 원혜영 공동대표는 "김근태 상임고문은 독재에 맞서 싸우다가 모진 고문에 큰 고통 받고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김 상임고문이 씨 뿌린 민주주의, 인권, 평화 위해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민주양심세력은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김근태 선배가 온 몸을 던져서 투쟁해 온 민주주의가 지난 4년간 현 정부에 의해서 많이 후퇴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총선·대선에서 국민과 함께 승리해 민주 정부를 회복시키고 대한민국을 민주진보개혁 정치로 복원시켜 선배의 뜻을 받들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전혜숙·최규성·최영희·최인기·김유정 의원이 조문에 동행했다.
이 대통령 조화 결국 받기로 결정 | ||||||
김근태 상임고문의 장례식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가 배달됐다. 오전 11시께 청와대로부터 특별한 통보도 없이 덩그러니 조화만 온 것이다. 장례위원회는 당초 "조화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의전을 담당하는 우원식 전 의원은 "장례위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에 대해 상의했는데 생전의 김근태 선생께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독재로 규정하고 2012년 총·대선 심판 의지를 갖고 계셨으니 조화는 정중하게 거절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조화를 놓고 간 모양인데 그 마음은 알겠으나 고인의 뜻이 있으니 가져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결국 배달된 조화는 빈소 앞에 뒤돌려진 채 놓였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그래도 보내온 조화는 받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장례위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유은혜 전 수석부대변인은 추후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받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이 보내온 조화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조화와 함께 영정 오른편에 놓이게 됐다. |
[3신: 30일 오전 11시 53분]
이해찬·노회찬·정세균 등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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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평생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살아오셨고 고문을 이겨내고 해맑은 미소로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대해주시던 분"이라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매년 찬바람이 불어올 때면 고생을 하셨는데, 이번에는 끝내 이겨내지 못하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전 총리는 "내 삶의 큰 기둥을 잃은 슬픔"이라며 "이 땅에 비인간적인 고문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비통해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김 전 고문과 서울구치소 생활을 함께 한 바 있는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충혈된 눈으로 "20여 년전 서울 구치소에서 팬티 차림으로 서로 위로하던 일이 엊그제 같다"며 "아직 민주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고 하실 일이 많은 선배님이 이렇게 가셔셔 황망하다"고 말했다.
노 대변인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민주와 진보의 유일한 가교 역할을 해오신 분을 오늘 잃었다"며 "선배님이 가시다가 멈춘 그곳에서 후배들이 그 뜻을 한길로 받들어 민주와 진보가 만나도록 하는 일에 선배님의 뜻이 더욱 절실히다. 이제는 함께 열심히 나아가는 것이 이 슬픔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는 고인을 "바른 길을 걸어오셨고 후배들에게 언제나 정도를 걷는 모습을 보여주셨다"며 "선배님의 인격이나 그릇 크기에 비해 당에서 제대로 대우를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정 전 대표는 "민주진보진영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지도자를 잃은 슬픔이 너무 크다"며 "남은 우리들이 지도자의 뜻을 받들어 정치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경제·사회·문화 영역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2신 : 30일 오전 10시 50분]
조문 시작... 유가족들, 한명숙 전 총리 품에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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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공식 조문이 시작됐다.
한명숙·이해찬 전 국무총리,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 정동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 김해진 특임 차관,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 박선숙·김성곤 민주통합당 의원, 신중식·안명옥·이계안·장영달·신계륜 전 의원,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성준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빈소를 찾았다.
10시 15분께 영정사진을 든 유가족들이 빈소에 들어갔다. 유족들 곁은 한 전 총리와 이인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켰다. 김 상임고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 유가족들은 한 전 총리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한 전 총리는 "고문 후유증을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고 너무 빨리 가서 안타깝다"며 "어제 마지막 면회를 했는데 편하게 잠들었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그는 "김근태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민주화 그리고 인권을 오늘같이 우리가 누리고 살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 공권력의 폭력이 이 땅에서 없어질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김근태 뒤를 쫓아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힘을 다해야 한다"며 "김근태도 일하는 우리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김 상임고문에 대해 "대학교 1학년부터 같이 수십 년동안 민주화 동지로서 항상 바르게 살려고 한 훌륭한 후배였다"며 "우리 역사의 인권을 위해서 자기 생을 바친 역사적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1신 : 30일 오전 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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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오전 별세한 후 오전 9시 30분 현재 조문객이 하나둘 이어지고 있다. 밤새 김 상임고문 곁을 지킨 이인영 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담담하게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오전 8시께 장례식장을 찾은 문용식 민주통합당 인터넷 소통위원장은 "민주화 운동하던 젊은 시절부터 김 상임고문과 인연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상임고문의 영정사진을 보며 "재단에 걸려있던 사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된 빈소 조문은 오전 10시부터 가능한 상황이고, 오전 11시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장례식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장지는 문익환 목사 등 민주화 열사들이 모셔진 마석모란공원으로, 장례 형식은 민주사회장으로 치르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민주당 상임고문 등 민주계 어른들이 모여 회의한 후 장례 형식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