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한국 비구니와 수녀를 만나다
“베리 굿(Very good). 종교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해 순례하시는 여러분을 만나게 돼 너무 너무 행복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감동과 흥분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9일 오후(현지시각) 인도 북부도시 바라나시의 티베트불교대학 교정. 달라이 라마는 한국의 비구니 스님, 원불교 여성교무, 천주교·성공회 수녀 등으로 구성된 ‘삼소회’ 일행 16명을 접견했다.
불교, 원불교, 천주교, 성공회 여성 수도자들로 구성된 삼소회는 지난 5일 전남 영광의 원불교 성지를 시작으로 18일간 인도(불교) 영국(성공회) 이스라엘·이탈리아(천주교·성공회)의 성지를 순례하며 세계평화와 종교간 화합을 기도하고 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첫 법문을 한 녹야원(鹿野園)의 도시, 바라나시는 삼소회의 첫 성지순례 장소였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칠순의 세계적 종교 지도자와 세계평화·종교간 화합을 기원하는 여성 수도자들은 민감한 정치적 주제 없이도 약 30분간의 행복한 대화를 가졌다.
대중법회를 위해 사흘 전 거처인 다람살라에서 바라나시로 나들이 한 달라이 라마의 일정은 빡빡했다. 이날 오전에도 법회에서 1시간여에 걸쳐 열정적으로 법문 했으며 순례객들을 친견하느라 쉴 틈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삼소회 회원들이 순례 취지를 설명하자 반색하며 “베리 굿”과
“아이 엠 베리 베리 해피”를 연발하며 환한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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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는 “저도 1975년경 종교간 화합운동을 추진했는데, 바로 여러분들이 그 아이디어를 실천, 적용하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당시 자신의 계획은 전체 5단계로, 학문적 교류, 영적 체험 공유, 단체로 타종교 성지 순례, 종교 지도자간 교류, 종교적 신념과 존경 확산의 순서로 심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종교는 갈등과 피비린내의 원인이 되곤 했다”며 “종교인들의 화합은 세계 평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반겼다. 그는 “여러 번 예루살렘이나 파티마 등 기독교 성지를 순수한 기독교인의 자세로 방문했다”며 종교 화합을 위한 자신의 체험을 생생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파티마에서는 작은 마리아상(像) 앞에서 잠시 명상하다가 떠나며 뒤돌아보니 마리아상이 저를 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내 눈이 잘못됐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서 그는 종교간 하모니를 위해서는 ‘신념과 존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념은 자신의 전통(종교)을 지키는 것이고, 존경은 그 밖의 모든 다른 것에 대한 것입니다. 한 개인으로선 신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로서는 존경이 필수적입니다.” 그는 “부처님도 제자들이 성향이 각기 다른 것을 아시고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셨다”며 “넓게 보아야 실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성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음식과 미각에 비유했다. “한국에는 무슨 음식이 있지요? 아, 김치. 마찬가지로 중국인, 일본인, 티베트인, 인도인들은 각기 고유한 음식이 있습니다. 똑같은 혀와 입, 치아를 가지고 있지만 각기 다른 맛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여성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포유류를 보십시오. 수컷은 즐기기만 하지만 암컷은 늘 챙기고 보살피지 않습니까? 자연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성이 영적 양육능력과 자비심이 훨씬 높습니다.” 그는 여성 종교인이 차별 받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처음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측근이 티베트어로 통역해주자 “아니야, 그건 잘못됐어(No, it’s wrong)”라고 말을 잘랐다. “육체적 힘이 중요했던 것은 과거입니다. 현대는 지적 능력이 리더를 만듭니다. 지적 능력으로 리더가 된다는 것, 그것이 문명화, 현대화입니다.”
그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며 같은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합법적으로 합하면 된다”며 “동서독도 통일됐고 베트남도 통일됐지만, 남북한은 독일처럼 전쟁없이 합쳐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에서 달라이 라마는 농담으로 삼소회원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기념사진은 야외에서 찍는 게 좋겠죠?”라며 어깨를 감싸 안고 인도하는 등 특유의 친화력을 보여줬다. 물리적 시간으로는 예정보다 늦게 시작해 짧게 끝난 만남이었다. 그러나 삼소회원들은 깊은 영적 울림과 감동을 얻은 듯했다. 몇몇 회원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진명 스님은 “우리가 느끼기엔 ‘짧은 기다림, 긴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바라나시(인도)=김한수기자hansu@chosun.com
◆ 달라이라마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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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1935~)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1935년 티베트 산골마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세살 때 선대(先代) 달라이 라마의 화신임을 인정 받고 14대 달라이 라마로서 지도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 위기가 시작된 것은 1950년 중국군이 티베트를 침공하면서부터. 1954년 마오쩌둥은 열아홉 살 된 달라이 라마를 베이징으로 불러 ‘해방된 중국’을 보여주며 ‘티베트 해방’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티베트인의 저항과 중국군의 무자비한 탄압이 계속되자 달라이 라마는 1959년 3월 100여명의 망명단을 이끌고 라사를 떠나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그는 망명 이후 인도 북부 다람살라를 중심으로 티베트 독립운동을 벌여왔다. 중국의 티베트 침략 이후 1990년까지 130만명의 티베트인 굶주림과 사형, 고문, 자살로 희생된 것으로 달라이 라마측은 추정한다. 그러나 그의 투쟁방식은 ‘비폭력’이었으며 그는 공개적으로 중국인들도 용서한다고 말한다. 그는 전세계를 방문하며 특유의 간결하고 쉬우면서도 핵심을 짚는 법문으로 비폭력과 용서를 강조함으로써 정신적 지도자, 생불(生佛)로 추앙 받고 있다.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