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4. 3절 추모시 -이 글을 희생된 분들과 유족 그리고 제주도민에게 바칩니다.
해마다 4월 3일이면 나는 피가 의분에 끓어 오른다.
그날이 오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나는 피가 끓어 오르는 심장을
어김없이 지켜야 할 약속으로 하나씩 토해 낸다.
진정한 정의가 무엇이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며
진정한 뉘우침이 무엇이며
진정한 용서가 무엇이며
진정한 화해가 무엇인지
아직도 채 밝혀지지 않아
만방만세에 명명백백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아무것도 몰랐던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 거짓으로 불러 모아
사람으로 태어나 차마 두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잔혹한 학살과 고문과 투옥을 서슴없이 지시하고 행한 자들과
불타버린 마을의 잔해를 떠나
혹한의 겨울하늘 아래
눈덮인 벌판과 이골 저골을 헤매다
갈 곳 없어 동굴 속에 피신하고 있던 양민들을
냉혹무감히 인간사냥한 자들아!
우리 탐라의 아이들과 어른들의 숱한 피 묻힌 너희의 손들은
다들 어디에서 활짝 편 채 살고 있는가?
숨겨지고 억압된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고,
과연 인간세상은 선하며 아름답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으랴?
죽은 원혼들의 마지막 절규가
어머니 한라산 백록담에 이는 안개울음으로 '우우-' 휩싸이다,
기어이,
기어이,
기어이-
탐라벌에 오름들에 사방팔방으로 고루 내려 뻗치며
어릴적 갯마리에 벌거숭이 친구들이며
정겹게 돕고 의지하고 나누며 지냈던 웃음 띤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살았던 마을들의 이 마당 저 지붕들 위에
정난 너머 돌담길 따라 여기저기 올래를 스쳐 지나며
죄다 남김없이 고루 어루만지며
모든 학살의 현장을 한 곳도 남김없이 지나 울부짖으며
마침내 탐라의 해바다에 메아리쳐 나려
바닷가 코지코지마다 한시도 쉬임없이
너울에 파도를 들어올리며 불멸의 현을 웅혼히 켜고 있으니,
억장 무너져 한 세상 둥둥 떠살이했던 태왁으로
가슴 속 속속들이 파여 내린 증인과 후손들에게
피묻은 손 남몰래 씻어버린 자들이 제 속울음으로 뉘우치고,
그에 참회하고 용서하며 화해하는 그날이 오기까지
언제나 제주도의 밤은 낮보다 더 휘황히 밝으리며,
고백과 용서의 눈물로 서로의 가슴 껴안아 한데 저릴 그날이 오기까지
해마다 4월 3일이 오면
나는 끓어오르는 피물결의 혈장을 타고
갓 태어나 선연히 붉은 심장을 하나씩 토해 내리라
진심으로 뉘우치고
진정으로 용서하고
진실로 화해하여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들 되어
모두 함께 이웃사촌으로 사는 그날이 오기까지
탐라의 모든 나는
일만 번 고쳐 죽고 또 죽어도
망자들에 대한 변함없는 맹약에 터질 듯 뛰는 검붉은 심장을
통한(痛恨)의 입으로 붉디 붉은 애를 낳듯
해마다 하나씩 약속으로 토해 내리라.
(200709100723 대치동에서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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