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활동과 한국식 학벌주의 풍토에 대하여
한 마디로 예술은 학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완전히 생소한 비혈연관계다.
예술의 혈액형은 X이니 그에 매치될 수 있는 혈액형은 오직 X일 뿐이고
학력은 인위적인 휴지조각에 불과하여
우주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예술적으로도 무의미하다.
그것은 무의미의 미학과는 달리 비내포적이고 단순한 무의미다.
요즈음 매스컴에 나붙은 학력위조 운운하는 기사와 폭주하는 엉터리 댓글들도
역시나 예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예술과 무연한 문외한들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예술이 추구하는 인류의 심성과
있는 그대로의 대자연과
이 양자간의 관계성에 대한 아름다움의 기호화가
진실이나 선(좁은 의미의 사회적인 선 즉, 도덕)과 관련이 있다거나
혹은 배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키게 마련이다.
진정한 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한 미적 기호가 아니라
진선미가 합일된 하나의 덩어리이며
그 덩어리는 아련한 메아리를
우주의 전방향에서 수신하고
우주의 전방향으로 발신하고 있는
접시형이 아닌 공모양의 안테나이다.
'학력을 위조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40대 ~60대이며 거의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도 그들과 같은 동세대인이다.
그 당시에는 소위 세칭 명문대 출신들이
간판으로 먹고 살고 서로 밀어 주고 받고 하던 풍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만연했던 시대이다.
그 시대에는 아무리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나도 학력의 보도를 휘두르던 집단에 인정받기 힘들었다.
아마도 비뚤어진 유교사상인 양반의식이나 상층지배계급의식 같은 것들이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암운으로 사회 분위기를 짓누르고 있다.
예술사의 관점에서 19세기말의 개화기 이후로 지금까지도
한국은 '개척과 비평의 시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진정한 창조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여기에서 분명히 밝힌다.)
현재까지도 비평이 대세인 시대이며 그 비평은 학문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점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독창적인 예술적 능력을 지니고 그것을 발현하려해도
학문적 권위를 바탕으로 한 비평의 검에 베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설령 그 이후에 현실과 담을 쌓고
고독하고 불행한 삶을 담보로 자신의 예술을 추구한다 하여도
그것은 결국 자신의 현실적인 삶을 거의 포기한 이후에 얻어지는 참담하리만치 아름다운 댓가이다.
지금 혹독한 비난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학력을 짐짓 위조했으나 예술을 위조하지 않았으며
나름대로 자기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족적을 남겼다.
당시의 정황상 그들은 자의반 타의반 떠밀리듯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예술인에 대해 학력위조라는 죄를 씌우고
장시간에 걸쳐 입질을 하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이 지구상에서 유일하지 않나 싶다.
일반인들이 지금까지 간과했고 지금 이후로 재삼 인식해야 하는 요점은
원초적인 감성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서 비롯되는 예술이
타 전문영역처럼 인간활동의 한 분야에 불과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술은 예술로만 말하면 된다.
그것이 예술을 이해하고 작품들을 비교하고 비평하는 안목이자
예술에 대해 나름대로 확정적인 관점을 갖추는 마음의 토대이다.
그것이 예술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자 태도라 할 수 있다.
지금 이렇게 벌떼처럼 일어나 도덕이라는 예리한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비신사적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사람이 일반사람에다 대고 도덕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휘둘렀던 시대는
후대의 기억에 지울 수 없는 참극과 불행을 낳았다.)
지금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일반인들이
예술에 대한 소양을 쌓아
진정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된다면
그 이후에는, 회자되고 있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예술적으로 해결하도록 두어야 한다.
그토록 짓찧어대는 예술의 문외한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을 살아온 예술인들에게
한갓 학력이라는 허위의식의 도장이 찍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두루뭉실하게 학력을 추기하고 분칠을 했다고
멸시와 의분의 칼날을 들이댈 근거나 자격은 없다.
예술인을 가혹하게 비판하면 그 사람의 예술성은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어떤 시대현상에 구애됨이 없이
예술은 사회적인 관습과 법도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저만의 영토에 머무르고 있다.
학력은 예술인들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으며
본질적으로 그들이 학력을 허위기재하여
자신이 예술적으로 더 인정받고 출세하려 했다거나 한 의지적인 근거는 없다.
다만 그들의 사회지향성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비예술적인 마인드가 이러한 일들을 초래했고
그점이 사회적 덕성의 결여를 낳았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본인들이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예술은 묵묵한 구도행이지, 사회성의 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동의 와중에 연예인 및 연극인들의 일부가 연루되어 있다는 점은
되새겨볼만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연극은 관객과 호흡을 함께 하는 예술분야이다.
거기에서 사회성을 배제시키면
극중 배우가 스스로에게 '빨간 피터의 고백' 같은 독백을 하는 무관중의 연극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내가 한 번도 만났던 적이 없으며 더우기 매스컴을 통해 처음 보았던
이00 씨의 경우에는 평생 예술을 사랑하여 사재를 털어가면서 극예술을 활성화하려 하였다.
적어도 그가 돈벌이 사업을 하였던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각설하여, 금번의 학벌허위기재사태를 접하여 이 좁은 땅의 학연에 대해 한 마디 하겠다.
한국의 학벌학연은 반드시 사멸되어야 할 최후의 현대적인 족벌체제이며
한국사회의 지도층, 즉 상류층에 진입하는 신분증이자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이다.
그것은 지극히 단절적이며 배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행태이다.
한국식 학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연적 파벌집단에 속한 사람의 지도적인 능력과 위민사상을 검증 불가능하게 하고
비파벌에 속하는 국민대다수를 무력화, 순응화하도록
때로 명시적이고 대부분의 경우 암시적으로 주입하고 강요한다.
그것은 참다운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 에 파고드는 암(CANCER)과 같으며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에 바이러스처럼 속속들이 침투하여
삼부의 고유한 기능과 역할과 임무와 책임에 보이지 않는 큰손으로 작용하여
불치의 병을 조장할 가능성을 확장시키며
암암리에 법과 법치의식을 무력화하는 밀실의 야합을 지속적으로 낳게 되어 있다.
(정치는 인치가 아니라 법치가 이루어질 때 사회가 반듯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류사에서 벗어버릴 수 없는 그늘 중에 하나다.
허나,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력사냥은 어딘지 모르게 집요하게 파고드는 위력과
반면교사적인 위압감을 대중에게 뿌리깊게 심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현대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분야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계의 지도층이 보기에
예술인들의 학력오기재현상은 묵과할 수 없는 사회적인 범죄로 여겨진다.
철퇴를 든 그들 자신이 짓는 죄는 법의 테두리에서 맴돌거나 슬쩍 슬쩍 넘나들이 하면서
일반국민이 보기에 하나의 시야에 명확히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규모이면서 동시에
비도덕적이긴하나 합법을 가장하고 주장하는 애매모호함 때문에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그들의 암의가 법망에 걸려들어도 실타래처럼 얽힌 학연과 지연에 의한 의리나 온정주의
또는 궁극적으로 나아가서 정치적 동지들의 우두머리인 통치권자의 사면과 복권이라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the last hidden card)가 준비되어 있다.
그런 비장의 카드는 아기의 우유값이 없어서 몇 만원을 훔친 현대판 장발장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인들은 천성이 현실에 비타협적이며 야합의 분위기에 예방주사와 같다.
그들은 사회적 관계에 대해 비면역적이어 합리적으로 타협하지 못한다.
그들은 쉽사리 권력과 일반인의 십자포화에 걸려들 수 있으며
스스로 열어 놓은 개활지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다.
한편으로, 정치계와 경제계의 지도자들은 누구보다도 능숙한 말의 연금술사들이며
그들은 말의 진실인 '금(gold)'을 만들기 위해
연금술을 익히고 지속적으로 실험을 하나
연금술은 원천적으로 '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사실 알고보면 인생에는 '금'과 같은 최상의 가치나
인생을 일거에 완성시켜주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없다.
한국에서 정치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정치인들은 승화의 미학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절대 극소수의 양심적인 정치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민의를 승화시키고 정경사문을 승화시키려는 의지는 실종되었고
단지 유교의 근본이념을 타락시키는 현장주의자들이며 공명심과 출세의식에 절어 있는 자들이다.
더욱 심각한 정치판의 문제점은 정의감이 있고 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도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정치판의 권모술수에 휘말려 본연의 자세를 상실하고 변질하며
스스로를 왜곡시키고 기만하게 된다는 점이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정치인의 자기기만과 자기왜곡이 가면을 쓴 채
일반국민에게 전파되어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하고 기만한다는 사실성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정치꾼들은 형식적 민주주의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청소년기에 마음의 양식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출세를 위한 공부에만 골몰했던 인간형들이 사회지배층이 되면
지금의 한국적 현실이 펼쳐지는 게 당연지사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결코 출세의 과정이 아니다.
그들의 입에 이제 예술까지 오르내리는 현상은
두고 보기에 솔직히 인간적으로 가엾고 어설퍼 보인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정치부터 하고나서 예술이 어쩌고 저쩌고 했으면 한다.
세계 대학순위 100위권 안에도 들지 못하는 세칭 S대 출신들이자 권력의지자들이 모인 집단에 해당하는 모 정당이 거품을 물 정도로 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어디 감히...'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한국정치의 현주소에 들어앉아 있는 학력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는 일말에 불과하다.
내친 김에 한국정치에 대해 한 줄, 아니 딱 두 줄만 말하고 싶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 명리에 어두운 나머지 혼이 빠졌다.'
'자네들이 말하는 국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누구인가?'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예술인들은 알아서 반성하게 되어 있고
정치인들처럼 영웅본색을 드러내 놓고 위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그냥 놔두는 자연정화 방식에 맡겨두는 게 좋겠다.
아울러, 네티즌들은 언어의 저가공세를 그만두고
가학과 피학이 뒤섞인 듯한 악성댓글을 달 시간을
자아발전을 위해서 여가를 선용하거나 가정의 화목을 위해 투여하기 바란다.
아니면 非패키지식 해외여행을 떠나 견문을 넓히면서 마음의 통이라도 '확' 넓히고 돌아왔으면 한다.
불만에 찬 마음은 비생산적인 결과를 낳으며 그것이 일파만파의 악순환으로 맴돈다.
게다가 그러한 심사가 인터넷에 진입하면
불만을 심화확산시키는 어지러운 메아리로 이 좁작한 땅 위의 인간세상은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나같은 사회 문외한이자 일개 무명인에게도
반도인들에게 서로를 탓함이 없이 각자 모두가 처신 잘 했으면 하고 바라는 심경이 드는가 보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제 그만들 하시게나." 라고 말하며
이 비판적이면서 비생산적일 수도 있는 글을 맺는다.
(20080350150수정 엘리엇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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