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킴 작품방/수상록·에쎄이

꽃들에게 부치는 발화[Utterances to Flowers]

imaginerNZ 2008. 3. 7. 15:39

 

 

 

민들레 -S. W. Byun님께 감사드립니다.

 

 

 

 

꽃들에게 부치는 발화[Utterances to Flowers]

                                                                        -엘리엇 킴

 

 

필자가 꽃들의 모습 아래에 두서 없이 늘어 놓은 말들은 매우 즉흥적입니다.

처음 보는 순간의 느낌에 치중하여 그리 되었습니다.

직관을 과신(?)하는 탓입니다.

우리가 실재의 궁극적인 대상인 별밤하늘을 바라보면,

그것이 사람이 지닌 직관을 절로 그리고 통째로 느끼는 유일무이한 경우입니다.

바꿔 말하면, 별밤하늘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직관의 거울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실존의 자영도구는 직관[Intuition]입니다.

(직관은 다른 말로 엇비슷이 정관[right-watching]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외에 여타 도구는 인위성이 개입되어 비자영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관에 익숙해지도록 태어났으나

점점 비대화되어 가는 조직체인 인간사회에 속한 동물이 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우리는 직관을 서서히 상실해 왔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그 직관상실의 속도는 무제한 가속의 페달을 밟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향해 어데로 날아가고 있습니까?

 

직관만이 우리를 원상으로 회복시켜 주고

우주자연을 전유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게 해 줍니다.

사람의 느낌이 뒤섞인 직정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성적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유심히 보십시오.

당신의 감성이나 지성으로는 떼어낼 것 하나 없이

지극히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아름다움'은 이와 같은 현상입니다.'아름다움은 인간의 감성이나, 인간감성의 '대자화'가 아닙니다.

아름다움은 대상이 스스로 우러나오면서

동시에 대상이 속한 실체가 뿜어내는 형용과 향기와

그 간섭무늬인 분위기가 주위에 고루 번져 나가는 현상입니다.

 

물질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요즈음 들어서

당신은 '아름답다'라고 부쩍이나 자주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위적인 것들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은

그 인공물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토대로 하고 있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인공의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빌린,

'차용'이나 '응용' 또는 '변용'의 아름다움입니다

세계는 이미 형성되어 있기에 사람이 제작하거나 조성한 것은

순전한 의미에서 창조라 할 수 없습니다.

'차용'이나 '응용'이나 또는 '변용'에 창조라는 말을 붙이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의미가 대척되는  말의 결합이 말의 특성 중의 하나이기에

자연에 관한 표현들, 예컨데, '창조적 변용'이라는 언어적 표현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구사하는 말의 특성을 고려한다 해도

자연을 바탕으로 한 적확한 표현은 '창조(創造)적 변용'이 아니라,

'창의(創意)적 변용'이라 해야 순리적인 언어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름다움은 매우 고귀한 말이면서 동시에 자연에 고루 편재하는 현상입니다.

'우주자연은 아름답다'라고 말할 때의 그 아름다움만이

아름다움의 정의를 순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궁극적인 실재를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순환적인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순환적인 정의란 '그것은 그것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은 모든 것이며 그 이외 어떤 것도 아니며

인류의 상상력 너머 님은 오로지 님입니다.

 

그래서 우주자연은 어느 것 하나 떼어내 버릴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하나- 속한 것들을 마주 대하지 않고 한데 잠길 ,

여러분은 직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비로소 보편적인 일체감으로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당신이 느끼게 되는 첫 단계는

아마도 사람과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 대한 측은지심일 것이며

이러한 측은지심에 진정성이 배어 있다면

당신은 사회적 봉사와 절로 더 나아가

자연보호에 실천적으로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이제 꽃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고 정녕 아름답지 않습니까?

[오후11 52, 11 24, 2006 ;대치동에서]